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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몰락 - 미국의 패권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가브리엘 콜코 지음, 지소철 옮김 / 비아북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제국의 몰락’을 읽고
뼛속부터 반미주의자인가보다. 또 틈나니깐 이런 책을 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즈음에 쓰인 이 책은 미국의 패권이 왜 무너지는지 혹은 왜 무너질 수밖에 없는지 보여준다. 오늘날 보이는 미국의 후퇴는 단지 당대 정치인(부시, 체니, 럼스펠드 등)의 문제가 아니다. 제국 내 엘리트들의 욕망과 근시안은 언제나 문제를 그르쳤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그리고 이라크전쟁이 대표적이다. 엘리트의 욕망과 최첨단 무기에 대한 맹신은 이성을 마비시켰고 미국의 대외정책은 점점 현실과 괴리되었다.
“미국의 이해관계는 세계 전역에 걸쳐 있다는 믿음에서 미국의 문제가 기인한다.”
“세계가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의 야망이다. 그 야망은 미국이 막강한 군사력을 토대로 어디서든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 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자신의 이해관계가 세계전역에 걸쳐있고, 이것을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대외정책을 결정했다. 욕망은 현실적 조건(제약)을 보지 못하게 했다. 미국의 힘은 결코 무한하지 않다. 당장은 경제적 제약이 있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달러가치 하락은 달러-금 태환 정지 선언으로 이어졌다. 이라크 전쟁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속전속결로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은 2차 대전 이후 가장 비용이 많이 든 전쟁이 되었다.
정치와 사회적 상황이 아닌 최첨단 무기에서 힘이 결정된다는 믿음은 여기에 부채질을 했다. 그러나 미국은 최첨단 무기로 한 번도 제대로 된 승리를 거둬본 적이 없다. 한국전쟁은 잘 쳐봐야 무승부였고, 베트남 전쟁은 패배했다. 이라크는 승리를 선언하고 서서히 패배하는 전쟁이 되었다. “미국의 군대와 무기는 소련, 집중 배치된 군대, 도시에 있는 목표물들을 겨냥한 것”으로 분산된 적을 상대로는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럼에도 정책결정자들은 소위 최첨단 무기에 기초한 ‘미국의 힘’을 맹신했고 정치나 외교는 전쟁이 끝난 뒤 뒷수습으로만 취급했다.
미국은 악순환에 빠졌다. 더 많은 무기, 더 많은 비용, 더 많은 실패 다시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더 많은 무기. 동맹마저 이탈하기 시작했다. 전후 공산주의를 적으로 상정한 동맹체제는 소련이 무너지고 존재의의를 잃었다. 힘이 약하진 미국은 더욱 동맹이 필요하지만 동맹국들은 그렇지 않다. 미국의 개입정책을 뒷받침하는 동맹은 전쟁을 막는다는 명목 하에 오히려 더 많은 전쟁을 세계에 가져다줬다.
전후 일어난 수많은 세계의 혼란은 세계를 이끌겠다는 그릇된 욕망과 현실을 외면하는 힘에 대한 맹신에서 비롯되었다. 즉 제국의 몰락은 공산주의 때문에도, 테러리스트 때문도 아닌, 현실을 바로 직시하지 못하는데서 시작했다. 그리고 이건 이전의 모든 제국에서도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미국 중심의 체제는 현실과 점점 괴리되고 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우린 냉소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념의 붕괴는 곧 대안세계에 대한 염원, 지향의 상실로 이어졌다. 지향을 잃은 인간은 상황에 종속된다. 냉소는 인간이 상황에 종속된 한쪽면만 본다는 점에서 기만적이다. 제국이 잘못된 믿음으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면 우린 냉소에 막혀있다. 역설적이지만 우리가 세계를 직시하기 위해선 지향을 다시 세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