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에세이&
김현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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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 빛과 그림자 그리고 우리의 일
김현 에세이집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정말 먼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버려야 한다.
_p.31 간절한 마음

'일상과 세계 사이에서 빛나는 이야기' 에세이& 시리즈 두 번째 책은 김현 시인의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창비의 독서 체험 플랫폼 '스위치'에 연재했던 '시인 김현만이 할 수 있는 아름답고, 진실한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다.

이 책은 어떤 기억과 사건, 사람에게서 떠오른 단상을 적은 메모로 가득하다. "어른거리고 일렁이고 흘러가 속삭이는 마음의 사계절"이 곳곳에 스며있다. "목숨줄을 끊으면 일어날 수 있는 경이로운 일들에 대해" 아무도 없는데 누구라도 들으라는 듯이 하는 말, 인생이 잘 흘러가고 있는지 돌아보며 중얼중얼 쓰게 되는 글. 이 모든 게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다.

☆아, 산다는 건 분명히 죽음보다는 작고 가벼운 행복.
_p.96 행복한 사람

김현 시인은 누군가 발견하기를 바라며 견딘 밤을 알아보는 "껍데기를 껍데기로 여기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다. 수록된 스물다섯 편의 글은 시인님을 거쳐 간 시와 노래, 책과 영화 이야기, 가족과 사랑, 삶과 죽음 등 삶의 다양한 얼굴과 목소리를 들려준다.

종이 위에 남긴 발자국을 따라 걷다 보면 다채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어느새 차곡차곡 쌓인 속삭임에 마음이 푹푹 빠진다. 퇴근길 마을버스에서 통닭을 손에 든 행복한 사람의 얼굴을 마주친 것처럼. 갓 튀긴 통닭 냄새에 저절로 미소가 번지듯 조용히 온기가 스며든다.

☆모든 사랑은 자기에서 출발해 타인을 경유하고
마침내 우리에게 도착한다는 것을 깨치는 연쇄작용이었다.
_p.127 한 사람을 위한 마음

한 계절을 무사히 건너온 이가 진심으로 쓴 마음의 일렁임이 잔물결을 일으킨다. "내면에 상처가 없는 사람도 없고 내면에 사랑이 없는 사람도 없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다. 흘러가는 계절 따라 "다정할 수만 없는 세상을 쓰다듬는 다정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쓰는 저자를 응원하게 된다.

☆어른은 타인의 얼굴에서 시간을, 시간에 힘입어온
기쁨과 슬픔을 읽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일 것이다.
_p.149 누군가 창문에 입김을 불어 쓴 글씨

"무사히 어른이 되었을까." 잃어버린 물건을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생각지 못한 곳에서 감정을 돌아보게 하는 문장과 마주쳤다. 잊히지 않는 어둠과 내 안에 자리 잡은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한 문장이었다.

☆나란히 숨을 고르는 일. 사랑은 모쪼록 그런 일.
_p.227 봄에는 뭐 하세요?

책에 나온 마음이 순해지는 강아솔의 <사랑을 하고 있어>의 노래를 들으며. 김현 시인과 짝꿍 호의 이야기를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두 사람, 그밖의 사람들을 목격하는 일"을 쓰기 위해 애쓰는 삶이 "살짝 닿거나 닿을 듯이 가깝게" 스쳐 갔다. "살아있는가" 묻고 답하게 하는 글은 사랑으로 흘러간다.

저자는 당신이 원하는 세상을 꿈꾸고 이제 나아가자고 먼저 손을 내민다. 당신을 설명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이름을 부르고 얼굴을 적어 내려"간다. 내 집 마련의 어려움과 층간소음, 성소수자의 주거권과 가족구성권을 이야기하며 우리에 관해 쓴다. 진심으로 쓰며 나와 당신 곁에 살고 있다.

☆얹혀 간다.
문학 하는 삶도, 문학 하지 않는 삶도.
_p.232 작가의 말

저자가 들려주는 일상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순간과 사람을 돌아보게 한다. 생이라는 기차를 타고, 달리는 기차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은 덧없이 흔들리고 날아오르고 반짝인다. 때론 낯선 역에 내려 덧없이 거닐다가 주저앉아 울기도 하고. 그저 울고 웃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애쓰며 사는 삶을 이야기한다.

'살아 있기에 가능한 것'들이 있다. 순환하는 계절처럼 "나에게서 시작해 너에게로, 가까이에서 먼 곳으로 흘러가는" 애씀의 기록이 삶의 미로를 사랑의 미로로 만들기도 한다. "언젠가 어디선가 보았던 얼굴(들)"이 떠올랐다. '이제 그게 누구인지, 자신과 어떤 관계인지를 기억해내는 일'은 우리의 일이다.

12월, 김현 시인은 '연말 우울'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며, 막걸리와 함께 그리운 사람 몇을 떠올리고 계실지 궁금하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다정하기싫어서다정하게 #김현 #창비 #에세이&
#에세이추천 #다정한마음 #김현에세이 #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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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지도 - 위대한 정신을 길러낸 도시들에서 배우다
에릭 와이너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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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지도 #에릭와이너 #문학동네

☆내가 말하는 천재는 창조적 의미에서의 천재,
즉 최고 수준의 창조성을 가진 사람이다. _p.13

왜 특정 시기, 특정 장소에서 인류의 도약을 이뤄낸 천재들이 등장했을까. 위대한 천재를 배출한 도시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 골턴의 상자에서 시작된 생각은 자석처럼 우리를 천재의 도시로 끌어당긴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저자 에릭 와이너는 『천재의 지도』에서 아홉 살 딸을 위해 무모한 모험에 나선다. 천재와 관련된 역사적 장소 여섯 곳과 현대의 장소 한 곳을 선정해 천재의 지도를 탐사하는 돈키호테식 세계여행을 떠난다.

이 유쾌한 철학자는 천재의 장소에서 창조성과 연관된 흥미로운 실험과 다양한 요소들을 탐구한다. 창조적 천재의 탄생 비밀을 밝히기 위해 진행된 다양한 연구 자료에 역사와 심리학을 더해 매혹적인 통찰을 제시한다.

☆나라에서 존경받는 것이 그곳에서 양성될 것이다.
_p.159 플라톤

1장 천재는 단순하다 - 아테네
2장 천재는 새롭지 않다 - 항저우
3장 천재는 값비싸다 - 피렌체
4장 천재는 실용적이다 - 에든버러
5장 천재는 뒤죽박죽이다 - 콜카타
6장 천재는 의도의 산물이 아니다 - 음악도시 빈
7장 천재는 전염된다 - 소파 위의 빈
8장 천재는 약하다 - 실리콘밸리

저자는 그리스 아테네, 중국 항저우, 이탈리아 피렌체,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인도 콜카타, 오스트리아 빈, 현재의 실리콘밸리에 차례로 머문다. 아테네의 아고라, 항저우의 호숫가, 피렌체의 광장, 올드 에든버러의 길거리, 콜카타의 장터인 뉴마켓에서 과거의 황금기를 현재로 불러온다. 각 도시의 황금기에 등장한 천재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

고대 그리스인은 위대한 산책자인 동시에 위대한 사색가였으며 걸으면서 철학하기를 즐겼다. 저자는 창조적 장소에 숨겨진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고대 그리스인처럼 걷기와 사색, 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창조성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문화와 창조성에 다가간다. 알코올과 카페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창조성과의 연관성을 찾아간다.

☆천재에게 비범한 환경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평범 속에서 비범을 보기 때문이다. _p.473

천재의 장소는 자석이다. 창조적인 장소는 창조적인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이렇게 모인 천재들은 새로운 질문을 발견한다. 명석한 정신과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진 이들은 스스로 찾아낸 문제에 새롭고 기발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답을 끌어낸다. 천재들은 질문하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저마다 가진 재능을 꽃피운다.

☆재능이 뛰어난 자는 아무도 맞히지 못하는 표적을 맞히지만
천재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표적을 맞힌다.
_p.259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창의성이 강조되는 시대에는 인간의 지성과 창조성이 언제 어떻게 왜 발현되는지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진다. 천재 연구에서 '천재는 타고나는 것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라는 속설에 관한 다양한 연구가 있었다. 저자는 창의성에 관한 허구적인 신화에 의문을 제기하고 질문을 던진다. 천재는 단순히 유전이나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독창성을 북돋우는 문화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천재의 신화에 갇힌 생각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는다.

☆"앞서 온 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앞으로 올 것을 이해할 수 없다."
_p.477 스티브 잡스

유쾌한 여행에 종착지는 천재성이 궁극적으로 발현된 실리콘밸리다. 저자는 천재들에 대해 "그들은 서퍼였다. 서퍼는 파도를 만들지 않는다. 파도를 관찰하고, 파도와 함께 춤춘다."라고 말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이들에게 창조성에 관한 비법을 공유한다.
"우리의 임무는 두 가지다. 서핑 기술을 향상시키기,
그리고 좋은 파도의 가능성을 높이기."

에릭 와이너의 여정은 깊이 있는 질문으로 가득하다. 현지 조사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더 나은 질문을 발견한다. 질문하고 탐구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책은 저자 특유의 유머와 통찰로 빛난다.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우아한 해결책을 모색하며 힘겹게 배운 교훈을 재미있게 풀어냈다. 저자는 각 재료를 절묘한 비율로 섞고 비법 소스를 추가해 맛깔나게 한 권에 담았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The_geography_of_genius #Eric_Weiner
#노승영 옮김 #소크라테스익스프레스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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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 SALAD - 비밀 드레싱을 곁들인 83가지 요리법 cooking at home 3
김유림 지음 / 테이스트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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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AD #cooking_at_home #tastebooks

☆비밀 드레싱을 곁들인 83가지 요리법

누구나 집에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샐러드. 친절하게 단계별로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샐러드 안내서 덕분에 메뉴 선택의 폭이 확 넓어졌다. 신선한 채소와 제철 과일에 비밀 드레싱을 곁들이면 홈파티에 어울리는 근사한 샐러드를 순식간에 만들 수 있다.

테이스트북스『샐러드』는 푸드스타일리스트 김유림의 샐러드 레시피 모음집이다.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한 메뉴는 식재료의 조합이 인상적이다. 요리가 서툰 사람도 쉽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도록 친절하고 상세하게 알려준다. 건강하고 신선한 샐러드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하는 즐거움에 책장을 넘길수록 설렜다.

책은 크게 네 파트로 이뤄졌다. 먼저 요리하기 전에? 샐러드의 종류와 사용하는 도구, 재료의 손질법 등이 상세하게 나온다. 샐러드를 한 끼 식사로 먹을 때와 메인 요리에 곁들일 때 적당한 양을 구분해서 설명한 저자의 섬세함에 한층 더 믿음이 갔다.

샐러드를 맛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 재료를 이해하고 보관 방법과 손질법을 알아야 한다. 기본 재료를 잎채소와 허브, 단단한 채소, 부재료, 토핑으로 나눠서 설명하고, 샐러드를 만들기 전에 알아야 할 내용이 보기 편하게 정리되어 있다. 샐러드를 빨리 만들기 위한 팁과 저자의 경험에서 나온 채소 보관법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저자는 샐러드의 맛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키는 드레싱을 다양하게 소개한다. 드레싱에 쓰이는 재료와 드레싱 만드는 순서, 종류를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정리했다. 참고 사진 아래 드레싱 이름과 그 드레싱을 활용한 샐러드가 나오는 페이지를 함께 적어두었다. 70종의 드레싱마다 참고 페이지를 써놓은 정성에 저자의 요리를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책에는 푸드스타일링을 공부하고 다양한 현장 경험을 쌓은 저자의 비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샐러드를 보다 완성도 있게 만들어줄 도구, 그릇에 예쁘게 담는 법, 채소를 자르는 방법 등 유용한 정보가 많다. 요리하고 남는 음식이나 재료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할 때, 책에 나오는 남은 샐러드 활용법을 참고하면 좋겠다.

저자는 색다르게 즐길 수 있는 샐러드 레시피를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눠서 소개한다. 샐러드 사진의 배경색을 다르게 촬영해 각 단계를 색상으로 찾기 쉽게 구분했다. 초급에는 간단한 재료로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기본 샐러드 레시피를 알려준다. 중급은 과정과 재료가 초급보다 복잡하지만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한 끼 식사로 든든한 샐러드를 소개한다. 고급에는 조리법이 복잡하고 재료도 다양해졌지만 특별한 날이나 색다른 메뉴를 만들고 싶을 때 추천하는 근사한 레시피를 담았다.

색감과 모양, 맛을 고려해 먹음직스럽게 플레이팅 된 사진을 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책에 나오는 샐러드 레시피를 하나씩 도전해보고 싶게 만든다. 특히 새콤하면서도 매콤한 맛이 있는 드레싱에 오징어와 수박, 멜론을 곁들이는 수박오징어샐러드의 맛이 제일 궁금했다. 아는 맛이라 더 눈길이 가는 삼겹살묵은지샐러드는 귤이 제철이니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

저자는 보너스로 냉장고에 보관하면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저장 샐러드 만드는 법과 재료, 팁도 알려준다. 메뉴마다 며칠 정도 냉장 보관하면 좋은지 상세한 설명도 잊지 않았다. 바질과 발사믹 식초에 토마토를 넣어 토마토마리네이드를 만들어 두고 먹는데 드레싱으로 활용할 수도 있는 과일마리네이드 만드는 법이 나와서 반가웠다.

샐러드에 관심 있는 사람이 보기 좋은 책이다. 과정은 간단하지만, 맛은 평범하지 않은 색다른 레시피로 가득하다. 책에 나온 드레싱을 응용하면 나만의 샐러드 메뉴도 만들 수 있다. 한식에서 양념장을 만드는 법을 알면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듯이 샐러드도 재료와 드레싱에 관해 배우면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

식감과 색감이 살아있어 신선한 샐러드를 때론 가볍게 브런치로 즐기고, 어떤 날은 든든하게 근사한 식사로 차려 먹을 수 있다. 신선한 식재료에 풍미를 더해줄 드레싱을 곁들이면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다. 항상 먹는 방법이 지루할 때는 흔한 재료가 조금 더 특별해지는 새로운 샐러드에 한번 도전해봐야겠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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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법 - 제5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동시집 57
김준현 지음, 차상미 그림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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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법 #김준현 시 #차상미 그림 #문학동네

책 표지 속 멈춰 선 아이의 뒷모습에서 떠오르는 시를 소리 내어 읽고 싶은 계절이다. 구름 위로 날아가는 고래의 꼬리를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 색색의 지붕은 저 멀리 옹기종기 모여 있고, 아이는 고래를 따라 먼 하늘로 날아가기 직전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점점 아이의 눈빛을 닮아간다.

김준현 시인의 말처럼 '눈사람 머리를 굴리듯' 동심을 굴려 만들어진 동시들에 아름다운 집이 생겼다. 눈길이 오래 머물 집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김준현 시인이 쓴 동시와 차상미 작가의 그림은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짝꿍 같다. 차례를 읽었을 뿐인데 마음에 이름 모를 싹이 돋아난다.

제1부 바다로 가고 싶은 자전거를 타고
제2부 흰 크레파스로 점 하나를 찍었다
제3부 말에도 뼈가 있을까?
제4부 단단하고 차가운 자물쇠를 간질이면
제5부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새가 되었다

동시를 눈으로만 읽기에는 아쉬워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었다. "연을 띄우려면/내게는 긴 활주로가 필요해요"라는 구절에서부터 서서히 날아오르는 '나는 법'. 바람을 안고 하늘로 떠오른 가오리연, 어느새 실이 팽팽해진다.

☆구름으로 연결된 전화선을 타고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엄마

    가오리가
    지느러미를 파닥파닥 떠는 걸 보니
    추운가 봐요, 그곳은

    새가 없는데 새장이 있듯이
    엄마가 없어도 엄마 눈빛이 남아 있듯이
    가오리가 없어도
    가오리 그림자가 남아 있는 이곳에서
    몽골까지
    페루까지
    우리 함께 여행을 가요

    새들이 지나는 길목에
    물고기 한 마리를 놓아주면
    언젠가 바람이 될까요?

    활주로의 끝에서
    나는 눈이 먼 하늘로 날아가기 직전이에요

    _'나는 법' 부분

한 소녀가 언덕 위에 서 있다. 소녀의 시선은 두둥실 떠 있는 구름과 연결된 실에 걸려 있다. 바람을 타고 너울거리는 소녀의 치맛자락을 따라 시가 출렁인다.

☆사람은 어른한테만 씨를 붙이는데
    열매랑 꽃은 어릴 때만 씨를 붙여 줘요

    이불을 덮어 주는 것처럼 흙을 덮어 주고는
    그만 까먹어 버린

    장미씨
    봉숭아씨
    수박씨
    자두씨

    _'씨' 부분

아무도 봐주지 않아도 조금씩 자라 어른이 되고 있다는 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 바다로 가고 싶은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바다, 소리'를 하나씩 시에 담아낸 시인의 목소리에 눈앞이 환해진다. 동시를 읽으며 다 똑같이 생겼지만 떨어지고 싶은 곳은 다른 빗방울이 되었다가 흰 크레파스로 점 하나를 찍어 별 그리는 법을 배웠다.

☆국어책에 있는 글자를 다 주워 모아
    흰 눈 위에 수북한 나뭇가지처럼 주워 모아
    모닥불을 피우자

    그러면 빈 국어책은 함박눈 내린 초원처럼 넓겠지
    나는 페이지를 넘어 다니며
    순록처럼 뛰어놀겠지

    국어가 없는 사람처럼

    _'인디언 아이처럼' 부분

"모닥불에 둘러앉아/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사냥 이야기를 들으면서/잠이 드는 인디언 아이처럼" 동글동글 굴러가는 동시는 "어린이들을 태우고/어린이들이 있는 곳으로" 눈사람 머리를 굴리듯 굴러간다. 만나고 싶은 너, 어린이를 향해. 서로를 껴안고 와글와글 튀어나온 말들이 마구 달려간다. 톡톡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처럼 가슴을 두드린다.

넓은 종이 위에서 마음대로 나아간 말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세상을 보여준다. 동시를 통해 잊고 있었던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질문하는 법을 다시 배운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간질간질 마음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간지럼


     단단하고 차가운
     자물쇠에도 배꼽이 있어요

     열쇠를 넣고 이리저리 간질이면

     저도 모르게
     꾹 닫고 있던 입을 벌리고
     키득키득
     마음이 열리는 소리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소중한 책을 선물해주신 @munhakdongne 감사합니다.

#문학동네동시집 #제5회문학동네동시문학상대상
#동시 #좋은시추천 #책 #도서추천 #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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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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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우사미린 #미디어창비

사랑하는 만큼 잃을 것이 두렵고,
사랑하는 만큼 증오할 수밖에 없는,
엄마를 향한 슬픈 참회 섞인 사랑 『엄마』

☆엄마를 낳아주고 싶어, 낳아서 처음부터 키워주고 싶어요.
    그러면 분명히 구해줄 수 있습니다.    _p.99~100

우사미 린의 『최애, 타오르다』 가제본 서평단으로 참여하고 최애를 향한 아카리의 목소리가 짙은 여운을 남겼다. 작가의 데뷔작 『엄마』를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다니 서둘러 참여 신청을 했다.

열아홉 재수생인 우짱은 엄마를 사랑하는 만큼 마음이 망가져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엄마 때문에 괴롭다. 가족에게 폭력적이던 아빠의 외도로 헤어지고 우짱의 엄마는 서서히 미쳐간다.

☆애정을 가지고 있으면 그만큼 증오로 바뀌니까
    가엽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_p.74

아빠가 바람피웠을 때 일을 내면에 수없이 반복해 덧그려진 상처는 엄마를 자꾸만 파괴한다. 상처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은 섬뜩한 비명이 되고 엄마의 마음은 점차 병들어간다. 엄마는 술에 취하면 자신에게 화풀이하고 가족을 상처 입히고 난동을 부린다. 엄마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부풀어 우짱의 일상생활을 침식한다.

☆우짱의 신은, 신이었던 엄마는 우짱을 낳아 신이 아니게 됐어요.   
    애초에 신이 아니었던 겁니다.
    _p.85~86

우짱은 엄마를 이상하게 만든 것은 제일 먼저 태어난 딸인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자신만의 절실한 기원을 품은 우짱은 자궁 적출 수술을 앞둔 엄마를 두고 구마노로 순례 여행을 떠난다.
세상과 연결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막상 통화권 이탈 지역에 머물게 되니 달려드는 불안과 공포에 우짱은 혼란스럽다. 스무 명 내외의 계정만 팔로우한 좁은 커뮤니티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지만, SNS 타임라인 글에 상처받는 것처럼.

☆발버둥 치는 엄마를 정신없이 끌어안고
   엄마의 몸에서 엄마의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했어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어요.      _p.96

계속 비명을 지르는 엄마를 우짱은 있는 힘을 다해 끌어안았다. 우짱이 엄마의 상처를 치료할 수는 없지만, 함께 아파해줄 수는 있다. 가엾어서 미칠 것 같은 엄마를 끌어안은 우짱의 몸과 마음으로 엄마의 고통이 온전히 옮겨온다. 엄마를 자신으로 받아들여 엄마의 고통을 그대로 수용하는 우짱의 모습은 한 명의 고행자처럼 그려진다.

☆엄마를 가장 증오하는 사람도 우짱이지만, 자기를 낳은 엄마라는 생물을 쫓아다니는 아기보다도, 유코 이모를 잃어 불행에 잠긴 아키코보다도 훨씬 더 우짱은 엄마를 사랑했습니다. 엄마가 계속 아름답기를 바랐습니다.     _p.97

"우짱은 엄마를 쓸쓸함으로? 죽이고 말 거야."라는 생각만큼 엄마가 계속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엄마를 사랑한다. 할머니의 사랑을 갈망하는 엄마, 엄마를 향한 우짱의 사랑이 서로 엇갈려 안타깝게 느껴졌다. 치매가 온 할머니는 딸을 잊어버리고, 미쳐버린 엄마는 우짱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함께 쓸쓸함을 느껴줄 신이 없다면,
    우짱 스스로가 우짱과 엄마의 신이 되는 것 말고
    다른 길은 없어요.    _p.101

엄마가 병실에서 한 말처럼 "부모 자식은 좀 신기하"다. 우짱이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은 사랑받고 싶은 마음의 다른 표현으로 보인다. 엄마의 죽음에 대한 공포는 우짱을 흥분 상태로 끌고 간다. 점점 어긋나는 가정 안에서 우짱은 자신이 신이 되길 바란다. 순례길 수행을 통해 한때 우짱의 세상에서 신이었던 엄마를 되찾는 일이 가능할까.

열아홉 살의 우사미 린이 쓴 『엄마』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많은 얼굴을 가졌는지 알려준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표현하는 진실은 절대적이고 아름답기만 한 모습은 아니라고 말한다. 과거와 현재를 정신없이 오가며 이리저리 튀어 오르는 생각의 조각 모음이라고. 아무리 날카롭고 예리한 조각이라도 품어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외친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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