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여행 전에 읽었던 세 권. 가기 전에 정리하려고 했었는 데, 이제서야 메모한다. 



   "가기 전에 미리 읽는 인문여행 책" 이라는 카피가 달린 '세계를 읽다' 시리즈의 터키편.  

    여행자를 위한 책이라기 보다는, "살러 가는 사람을 위한 책이랄까.

    다루는 내용은 피상적인데,너무 확신에 찬 어조로 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방인으로서 다른 사회나 다른 국가에 대해 관찰하고 평가한다는 것은 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 있기에... 그래도 터키에 대한 책이 많지 않은 편이라.. 도움이 된 책.

    이 시리즈에 한국편이 있다면 어떻게 썼을 지 궁금하고.. 

    그래도 꽤 오래(?) 살아본 (여행자로서가 아니라) 프랑스나 영국편을 읽어보면 이 책이 달리 평가가 될 수 도. 

     









 신학자이자 그리스어 교수인 저자가 AD 89년 9월 마지막 주간, 에베소를 배경으로 초기 기독교인들의 삶을 재구해 낸 소설. 아르테미스 여신숭배와 황제 숭배가 도시의 구심점이자 핵심이었던 로마의 속주 에베소에서 기독교 인들이 어떻게 믿음을 지키고 살아갔을지를 상상해 보게 하는 소설. 특히 (현대에 와서 오독되고, 잘 못이용되는-이것은 나의 말) 요한계시록이 당시의 신자들에게 어떤 의미였을지를 보여주는 것이 저자의 의도라고 한다. 여행과 연결하여,  Bill Creasy 교수의 사도행전 강의를 열심히 아주 재밌게 듣고 있는데, 요한계시록은 오더블에 올라와 있지 않은 듯. 혼자서라도 요한계시록을 찬찬히 읽어볼것. 


이번 여행을 계기로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예수의 가르침이 어떻게 세계 종교가 되었는지 (무엇보다도 21세기 한국의 나에게까지 중요한 삶의 이정표가 되었는지) 에 대한 생각을 많이하였다. 에베소나 파묵칼레(히에라폴리스), 이즈미르(서머나) 등 성경에 나오는 곳을 가긴 했는데, 시간이 많지 않아 찬찬히 돌아보지 못하였다는 아쉬움이 있다. 언젠가 바울과 사도들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말씀을 깊게 묵상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래본다. 빌 클리시 교수가 리비에라 보다 낫다고 한  안탈리야 해변에서의 편안한 휴식과 함께. 


어쨋건간에, 이 책 덕분에 주마간산 격이기는 했으나 에베소의 잘 가꾸어진 유적지 (공원?)을 돌아보면서 죽은 차가운 대리석폐허가 아니라 사람들이 살던 도시로서의 모습을 을 한 번더 상상해 보게 되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PS. 터키 와인은 생각보다 별로였는데, 맥주가 괜찮았다. ㅎㅎ 기독교 성지 얘기하다 옆길로 새는데... 터키의 가장 대표적인 맥주가 에베소 브랜드이다. 에페스.

 efes beer(출처: en.wikipedia.org)



 2008년에 나온 책이고 파묵을 한참 읽던 시절에 샀을 테니 10년 아니 15년은 족히 넘게 서가에 꽂혀만 있던 책이다. 읽기 시작하면서 "공명", 혹은 내적친밀감... 오랫만에 드는 느낌이라 Culture를 누르고 올해의 책으로 해야 할까 잠시 생각했다. 내 이름은 빨강, 검은 책, 순수박물관...파묵은 읽을 때마다 좋았다. 그러고보니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순수박물관이니 근래에는 파묵을 읽은 적이 없구나... 


이 책은 이스탄불의 부유한 가정에서 나고 자란 파묵의 도시에 대한 회고와 상념을 쓴 에세이집이다.  작가들의 기억력이나 묘사력은 늘 놀랍다. 내 유년시절의 서울과 얽인 기억들을 이리 세밀히 펼칠 수 있을까? 이 책을 관통하는 감정은 "비애Hüzün" 몰락한 제국의 도시로서의 영락과 쇄락. 제국이 었던 적이 없던 작은 나라에서 태어나 끊임없이 성장하는 도시에서 자라 온 나로서는 '서울'에 대해 갖기 힘든 감정이리라. 


내게도 이스탄불은 참으로 매력적인 도시다. 동로마제국의 수도이자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교차하는 곳. 여기 저기 보이는 이슬람사원의 첨탑과 시끌시끌한 시장. 그러면서도 현대적인 호텔들과 식당들. 해협을 가로지르는 다리들과 여기 저기 누워있는 개떼들... 


이번에는 짧은 일정탓,골목골목을 돌아보지 못해 비교가 어려웠지만 이십 년 전 처음 방문했던 이스탄불과 오늘의 이스탄불은 외견상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방문했던 2004년과 비슷한 시기에 이 책이 씌여졌다) 이방인인 나는 이스탄불에서 이국적인 매력, 과거 제국의 수도로서의 화려함에 감탄했을 뿐 비애의 감정을 떠올리진 못했다. 


비애, 파묵이 알려주고 싶어하는 비애는 이스탄불 사람들의 감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십년후 이스탄불 사람들은 여전히 그 비애의 감정을 안고 살아갈른지..

대답에 대한 예상 대신, 관공서, 공항이나 터미널, 상점에 조차도 여기 저기에 붙어있는 아타튀르크의 사진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책에 밑줄을 꽤 많이 그었다. 이런 곳에 띠지를 붙이고 줄을 그었다.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평생 최소한 한 번은 자신이 태어난 상황과 시기의 의미를 묻는다. 우리가 새상의 이곳에서, 이 시기에 태어난 의미는 무엇인가? 복권에서 나온 것처럼, 우리에게 부여된 사랑하기를 기대하고 결국은 진심으로 사랑하는 데 성공한 이 가족, 이나라 이 도시는 공정한 선택이란 말인가?  몰락하여 붕괴된 제국의 잔재, 잿더미 아래서 무기력, 빈곤, 그리고 우울과 함께 퇴색되며 낡아가는 이스탄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때로 나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곤 했다.(하지만 내 마음속 어떤 소리는 실은 이것이 행운이었다고 내게 말한다)... 이스탄불은 내게 논쟁의 여지가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이 운명에 관한 것이다. (p21)


이 죽은 문화, 몰락한 제국의 비애는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이는 내게 서구화와 현대화바람보다는 몰락한 제국이 남긴 슬품을 안겨 주었고, 가슴 아픈 기억들로 가득한 물건들로부터 벗어나려고 허둥거리는 느낌을 주었다. 갑자기 죽은 애인이 남겨 놓은 파멸적인 추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옷, 장신구, 물건, 사진들을 다급하게 버리는 것처럼.그 자리에 강하고 새로운 것, 서구적 혹은  토착적인 현대적 세계를 건설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모든 노력은 더더욱 과거를 지우는 셈이 되었다.(p21)


라마르틴에서 네르발 혹은 마크 트웨인까지 19세기에 이 도시에 왔던 서양 여행가들 모두가 흥분하여 썼던 길거리 개떼도(나도 20년전에 개때를 보면 흥분 아니 너무 즐거워 했다)...(p70)


도시가 패배, 파괴, 좌절, 침울, 빈곤으로 은밀히 썩고 있느 반면, 보스포루스는 삶에 대한 애착, 흥분 행복감으로 내 머릿속에서 깊이 합치되었다. (p75)


서양의 대도시들에서와는 달리, 몰락한 대제국이 남긴 이스탄불의 역사적인 기념물은 박물관에 있는 것처럼 보호받고 자랑스럽게 칭찬받고 전지되는 것들이 아니다. 이스탄불 사람들은 이것들 사이에 살고 있다. 서양인 여행기 작가들, 여행가들은 이것을 아주좋아한다. 하지막 감각이 예민한 도시의 사람들은 과거의 힘과 부유함이 그 문화와 함께 사라졌고, 오늘날은 과거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고 혼란스럽다는 것을 떠올린다. (p142)


비애는 외부에서 보는 사람이 아니라 이스탄불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에서 발전시킨 반응이다. 고전 오스만 시대 음악, 터키 대중음악, 그리고 1980년대 발전한 아라베스크라고 하는 음악은 자신에 대한 연민과 슬품사에 다양한 강도의 섬세함으로 왕래하며 항상 이 감정을 드러낸다. 외국에서 이스탄불로 온 서양인은 대부분 이 비애도 멜랑콜리도 느끼지 않는다. 결국 자살에 성공할 정도로 멜랑콜리했던 제라르 드 네르발조차 이스탄불의 색채, 삶, 가혹함, 의식을 보고 흥분하며 즐겼다. 그는 묘지에서 조차 여자들의 웃음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p145)


다른 사람들에게서 이스탄불이 비애의 도시라고 듣것이 왜 나를 이렇게 행복하게 하는 걸까? 왜 나는 나의 모든 삶을 보냈던 나의 도시가 내게 준 감정이 비애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 이렇게 애를 쓰는 걸까? (p321)


라마르틴에서 르 코르뷔지에까지 모든 외국인 관찰자들이 주목했던 실루엣은 (아야 소피아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터키 이스탄불을 중심으로하는 '민족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세계주의적 아름다움이었다. 야흐먀 케말과 탄프나르 같은 민족주의적인 이스탄불 사람들은 패배하고 억눌린 가난한 이스탄불의 무슬림들을 강조하며, 그들이 자신들의 존재와 정체성을 잃징낳고 사는 것을 증명하고 상실감과 패배감을 표현할 슬픈 아름다움이 필요했다. (p345)


폐허와 비애, 그리고 한때 소유했던 것을 잃었기 때문에 내가 이스탄불을 사랑한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다른 물건들을 얻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폐허를 보기 위해 나는 그곳에서 멀어져 다른 곳을 향해 걸어갔다. (p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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