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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만감일기 - 나, 너, 우리, 그리고 경계를 넘어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1월
평점 :
현재 20, 30대 중 미수다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미수다는 KBS에서 방영하는 <미녀들의 수다>를 일컫는 말이다. 한국 내 외국인 여성들이 본 한국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토크쇼로, 한번 정도는 봤을 것이다. 토크쇼다 보니 흥미위주로 흘러가지만, 그래도 간혹 생각하게 할 만한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다. 일본인 준코의 '성희롱 발언'과 미국인 윈터의 '성폭행 사건'이 그것이다. 특히 윈터의 경우 괴한에게 폭행을 당해 머리에 피를 흘리며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 그녀를 매춘부로 취급해 입원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런 얘기는 우리들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편견'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박노자를 아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박노자는 러시아 출생으로 2001년 한국인으로 귀화해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학자다. 학자다 보니 조금 딱딱하게 얘기하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발언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준코나 윈터의 앞서 소개한 예기처럼 생각하게 할 만한 것들로 이루어져있다. 이번에 나온 책은 그나마 딱딱한 느낌은 덜하다. 자신의 불로그에 그가 느낀 여러 가지들(‘만감’)을 엮어서 낸 책이기 때문이다.
2001 년 출간한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부터 박노자는 '우리'라는 말에 들어가지 않는 '그들', 곧 '당신들'의 한국에 대해서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그 한 권의 책에는 '당신들'이 느끼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가 수두룩하게 쓰여있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여전한 사대주의, 러시아보다 더 심한 군사주의 문화, 한국교회의 철저한 배타주의, 조교와 대학교수라는 현대판 노비와 주인 사이의 관계, 백인인 자신을 바라보는 한국사람들의 반응 등등. 홍세화의 말처럼 그는 이방인의 눈을 가졌으나 한국인의 가슴을 지닌 채, 차가운 이성과 따뜻한 정서를 아울러서 보여준다. 마치 홍세화 자신이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지내던 시절 한국을 바라본 것처럼.
김규항의 말을 빌리면, 박노자는 처음에는 관료주의, 집단주의 문화에 대한 비판을 주로 썼는데, 언젠가부터 반자본주의, 사회주의에 대한 열망이 가득해졌다고 한다. 이번 책이 그 결과물이라 할 것이다. 박노자 스스로도 말하기를 그는 '반대편'보다는 '우리편' 사람들을 훨씬 까다롭게 봤었다. 그런데 이번 책에서는 '나와 같은 사회주의자 입장에서 보면'과 같은 단어를 가감없이 쓰면서 자본주의의 폐해, 사회주의자로서 바라본 한국, 노르웨이, 러시아 등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고 있다.
여직원은 상냥해야한다면서 '미소'까지 팔기를 강요하는 한국사회,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KTX여승무원 해고사건, 승리한 자만 기억하는 프로스포츠에 담긴 경쟁논리, 노르웨이에서조차 더 이상 자본주의 그 자체를 문제삼지 않는 태도가 불러온 사회현상, 정치가 급격하게 우향우 하는 바람에 생겨난 러시아의 스킨헤드들의 얘기까지. 이 중 어느 하나도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박노자는 과거보다 좀더 진일보한 얘기를 일기처럼 풀어놓고 있다.
1990년대 말 강준만, 진중권, 김규항, 홍세화 등 일명 '전투적 지식인'이라 불리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주로 지역차별, 극우주의, 진보진영의 문제점 등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박노자 역시 그 흐름 속에서 나타난 지식인이다
하지만 그들의 책과 함께 박노자의 책도 결국엔 자본주의 속 하나의 상품이다. 그 상품을 구매하는 이는 아직까지는 그의 '반대편'보다는 '우리편'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어쩌면 한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김규항의 말처럼 그들의 문제점을 우린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처럼 '소비'한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볼 문제다. 미수다 속의 이야기도 그저 오락프로그램으로 ‘소비’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어쩌면 박노자를 '반자본주의'로 이끈 원동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