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17일간의 여행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3
조연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2003년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인구 절반은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굳이 이런 통계를 들지 않아도 도시에서는 고개만 돌리면 교회 십자가를 볼 수 있고, 산 속에서는 발걸음만 돌리면 아무 절에나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종교인구가 전체인구의 절반이 넘고 있음에도 뉴스에서는 언제나 흉악하고 듣기 싫은 소식들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과연 종교는 뭘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을 지경이다.

 

개인적으로 불교를 믿고 있다고 말하지만 내가 불교의 교리를 따르고 있는가 하면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다. 직접 살생은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내가 살생을 안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내 몸은 이미 수많은 동물들의 살코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상에서는 종교를 마음 속 한 구석에 처박아두고 있다가 정말 위급하고 곤란한 일이 생기면, 그때가 돼서야 하느님, 예수님, 부처님을 찾는 건 나만의 일일까?

 

사람들은 이러한 고민들을 풀기 위해 일상적 종교행사와는 달리 좀더 다른 걸 찾게 된다. 그게 바로 수행이다. 이 책은 17군데의 수행처에 필자가 참석하여 느끼고 본 것들을 글로 옮긴 것이다. 우리가 흔히 들어봤던 참선, 위빠사나 같은 불교수행법 외에도 천주교․기독교․천도교에서 행해지는 마음공부․죽음명상 등의 수행들이 차분하게 기록되어 있다.

사실 이 책의 제목은 역설적이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곧 ‘나를 버리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은 “나”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모두 버릴 것, 그러면 진정한 “나”라는 건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불과 5킬로도 안되는 무게로 태어나서 적어도 그 열 배에 해당하는 무게를 가지고 땅으로 돌아간다. 그러면 그 열 배의 무게는 어디서 온 것인가? 모두 외부에서 온 것이다. 마치 내 몸이 수많은 살코기들로 이루어졌듯이, 우리의 몸은 모두 외부에서 빌려온 것이다. 그러니 어찌 ‘나’라고 하는 게 있을 수 있겠는가? 정말 우리는 잠깐 몸을 빌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따라서 ‘나’에 집착한다는 건 ‘본래의 나로 건너는데 필요한 나룻배 자체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만큼 사람들은 ‘나’라는 생각이 굳건하다. 아무리 전셋집이라도 오래 살수록 그 집에 애착을 가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책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나’라는 생각을 버리는 게 어려운 지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그들은 모두 한참을 고민하고 수행하면서 서서히 ‘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이러한 에피소드를 보고 있으면 바로 달려가서 그곳에서 수행을 받고 싶은 욕구가 생겨난다. 여기에 이 책의 매력이 있다. 이 책은 ‘수박맛’이 어떤지 알려주는 게 아니라, ‘수박맛’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언제나 ‘수행’, 즉 실천이다. 저자의 말처럼 천 번 생각보다 한 번의 실천이 중요하고, 만권의 책보다 한번이라도 진실하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 책도 내 마음의 위안을 삼는 또 다른 종교에 그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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