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여행자
윤대녕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완도에는 구계등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삼년전인가 사년전인가 저는 친구와 함께 그곳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친구는 단순히 저와 함께 하는 여행인가보다 하고 생각했겠지만, 저는 일종의 문학기행을 염두에 두고 길을 나선 것이었답니다. 굳이 기차로 광주까지 가서 완도행 고속버스를 잡아탔던 것도, 구계등에서 걸어나왔던 것도 모두 '천지간'이라는 윤대녕의 소설 때문이었습니다.

윤대녕은 소설가입니다. 그러니 너무나 당연하게도 소설을 씁니다. 하지만, 그는 소설가이기 이전에 유목민입니다. 한곳에서 정착을 해서 사는 정착민이 아니라, 이곳과 저곳을 향해 항상 걸음을 옮기는 것이 숙명인 유목민이기에 그는 지난 세월동안 무수히 많은 길을 걸어왔으며, 또한 지금도 걸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다만 그가 걸었던 길을 잠시나마 맛보기 위해 그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유목민 윤대녕은 걸음을 한 발자국 움직일 때마다 지나치는 모든 것을 펜으로 그림을 그려놓고 지나갑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읽은 자는 그 풍경이 너무나 생생하기에 차마 잊지 못하고 내처 그 풍경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것입니다.

그가 이번에는 눈길을 걸어온 풍경을 우리 앞에 내놓았습니다. 사막의 이미지를 남겨 놓은 지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는 이미 눈의 이미지를 가지고 찾아온 것입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도 여전히 길을 나섭니다. 그의 소설 속의 주인공은 작가와 마찬가지로 무엇인가를 찾아 그렇게 길을 걷고 또 걷습니다.

그가, 그 주인공들이 그렇게 걷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예전에는 그저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그가 걸었던 길들을 - 완도, 구례, 홍대 등 - 걸어본 후에는 조금씩 느낌이 와 닿았습니다. 그가 길들을 걸었던 이유는, 제가 인생을 걸어가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마 당신이 인생을 걸어가면서 찾고자 하는 것과 그가 그토록 정착하지 못하고 걷는 이유는 아마도 같을 것입니다.

이번 소설 속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나 아저씨가 누군지 알 것 같아'. 이 말을 저도 당신에게 돌려주고 싶습니다. '이제 나 윤대녕이 누군지 알 것 같아'라고 말입니다. 아마 당신도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저처럼 일본이라는 곳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며, 또한 그동안 걸어왔던 길들이 다르게 느껴질 것입니다.

당신도 <눈의 여행자>가 되어 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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