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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강보라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평점 :
개인적으로 2025년 상반기에 읽은 국내 문학 중에 세 손가락 안에 들만큼 마음에 든 책이다.
제일 좋은 단편을 꼽으라면 <바우어의 정원>과 <신시어리 유어스>.
책 곳곳에 농담, 유머가 은은하게 흐른다. (그렇다고 해서 가벼운 글은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인물들이 상대방의 의견을 맞받아치는 대화 핑퐁은 마치 토론을 보는 것 같아 즐거웠다.
인간관계에서 겪는 미묘하고도 불편한 감정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데, 그 솔직한 표현들의 향연에 공감도 되었다가 어딘가 시원한 마음이었다가 쿡 찔리는가 하면 가만히 들여다보게 되는 문장이 많았다.
가까운 사람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소명대로 행동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기적인 이타심.
문규씨의 그 이타심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 97p
새틴 바우어가 파랗고 쓸모없는 물건들로 공들여 정원을 장식하듯,
사람들 앞에서 고통의 파편을 훈장처럼 늘어놓던 내담자들.
그들은 오직 그 순간에만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삶에서 상처를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사람들처럼.
- 149p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봉지’
‘추위에 굳어버린 길고양이’
‘눈발 속에서 길을 잃은 발자국’
‘영원히 멈춰버린 분수대’
‘아무도 없는 골목에 켜진 가로등’
‘물속에 가라앉은 못생긴 가오리’
페이지에 나열된 저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아서 아무도 찾지 않는 고독한 무언가가 된 기분에 울었다가 ‘선배랑 가오리찜에 소주 한잔 하고 싶다’는 이어진 말에 소설 속 두 사람에 나까지 더해 세 사람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쏟아냈다.
나와 타인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꼭 나인 것처럼 나와 닮은 타인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 흐릿한 것이 도통 알 수가 없다.
우리는 나와 다른 타자들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공감하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뱀과 양배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그 풍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 제공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