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런 가족
전아리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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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볼일 없는 세상이긴 하지만 혼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p, 166










 

9월의 첫 날, 해병대에 입대했던 동생의 수료식이 있었다. 일주일 전부터 엄마는 마치 장거리 연애를 하는 남자친구를 보러가는 것처럼 이것저것 준비하고, 설레하며 잠 못 이루는 날들을 보내고 있었고, 아빠는 겉으론 무심한 척 했지만 그 날 장거리 운전을 위해 컨디션을 좋은 상태로 유지해야한다며 일주일간 금주를 선언했다. 나야 뭐, "왜들 그렇게 난리야! 나 좀 챙겨줘!" 투덜거리면서 7주만에 보는 동생한테 예쁘게 보이려고 샐러드를 주문해서 일주일간 풀때기만 먹는 다이어트에 돌입. 남들이 들으면 '유난떤다' 싶을 정도로 난리법석인 우리 가족이었다.


다른 군대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해병대는 수료식 때 부모님께 수료 신고(?)를 해야하는 시간이 있다. 가족들이 아들을 찾아서 아들 앞에 자리하기 전까지 해병들은 부동자세로 가족을 기다려야 했는데,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혹여나 우리 아들이 조금이라도 혼자 가족들을 애타게 기다리며 서있게 만들까봐 마음이 많이 조급해져 있었다. 


전주에서 포항까지 4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새벽 3시 반부터 출발을 해서 '나는 누구, 여긴 어디'의 상태로 혹여라도 아빠가 졸음운전을 할까봐 옆에서 재잘재잘 떠들며 무사히 포항에 도착해서 동행을 만나고, 반갑고도 괜히 울컥하는 마음에 펑펑 울고, 또 다시 아쉬움을 가득 안고 동생을 들여보내고 전주엔 그날 밤 10시가 넘어서야 도착해서 꼬박 이틀을 앓아누웠다는 이상한 마무리지만, 기분좋고 행복했던 날이었다.


그 이후로 이틀간 앓아누워있으면서 '이런게 가족인건가'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지금까지 가족에 대해서는 힘이 되는 존재보다는 그저 내 마음을 더 무겁게하고 때론 내 앞길을 막는 짐같다고 느낄 때가 많았는데 이렇게 우리집 아들 얼굴을 잠깐 보겠다고 온 식구가 자신의 시간을 두없이 내어주는걸 보고 '이런게 가족이구나. 어떤 상황에서든 혼자가 되게 두지 않는게, 두말없이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는게 가족이구나.'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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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을때 읽게 된 소설 한 권 《어쩌다 이런 가족》,  읽으면서 내내 한 편의 주말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가족의 구성원, 가족의 형태, 가족의 부 등 여러 면에서 다른 모습을 가지고있지만 하나같이 크고 작은 막장을 겪는 가족들, 그리고 결국엔 서로의 시간을 내어주어, 서로의 소리를 내어 그 막장인 문제를 풀어내고 결국엔 서로를 혼자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훈훈한 결말을 가진 주말드라마 말이다.


집안에서 큰소리를 내는걸 금기시여겨 믹서기를 돌릴때조차 방음이 되는 공간에서 돌리는 가족,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가족끼리 있을 때도 넘치는 가풍과 품위를 잃지 않는 이 가족이 겪는 막장은 아무 문제없이 자라주어 믿고있던 첫째 딸의 동영상 유출 사건이었다. 


이 가족이 어설프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인간미 넘치게 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보자면 주말드라마의 해피엔딩을 하루 빨리 보고싶은 마음처럼, 이 가족의 해피엔딩을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싶어서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진다.





소중했던 사람과의 관계에서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이젠 어떻게 해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절망을 느낄 때…… 이런 상황이 되기까지 얼마나 숱한 문제들이 있었는지 더는 돌아볼 기력조차 없을 때. 그런 순간마다 화가나고 슬프고 적어도 그 사람이 원망스럽다는 감정이 든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 상대를 외면하고 현실을 회피하면 그 틈새로 적막이 흘러들어온다. 적막은 관계를 잠식시키고 서로를 피폐하게 만들 것이다.


감정이 어떤 형태로든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우리는 소리를 내야만 한다. 그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있지 않다는 걸 알더라도, 그 소리가 가끔은 소음일지라도 내가 지금 이런 감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대에게 알려주어야만 한다. 그리고 혹시나 내가 그 사람이 내는 소리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


관계가 어긋난 순간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은 상대를 포기하고 떠나는 것이다. 한동안은 어려움을 겪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은 무뎌지고 떠올리는 빈도가 줄어들며, 다른 무언가에 집중하며 지내게 될 시간은 반드시 온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던 사랑보다는 그렇지 못한 채 끝낸 사랑이 더 오랜 후회를 남기는 법이다. 솔직하게 나의 속마음을 마주하고 그 안에 보이는 그 사람의 얼굴이 아직은 소중한 존재라고 인정할 수 있다면, 적막이 더 빠르게 차오르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최선을 다해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그 관계가 가족이나 연인이든 혹은 친구나 오래 함께한 파트너든…… 우리의 삶에서 소중해질 수 있는 존재는 그리 흔치 않다.

-p, 227~228 (작가의 말 中)





무엇보다도 여기에 옮겨적은 '작가의 말' 중 일부에 작가님이 이 소설을 통해 전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잘 드러난다. 우리의 삶에서 소중해질 수 있는 흔치않은 그 존재를 위해서 기꺼이 적막을 깰 것, 최선을 다 해볼 것, 감정이 남아있을 때 우리의 소리를 내볼 것. 이게 비록 소음이 될지라도 우리의 마음을 소리내어 전달할 것.


꼭 가족 뿐만이 아니라 친구, 연인 등 여러 인간관계에서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나도 오늘 상대방한테 내 감정을, 내 마음을 전달했다. 이게 그에게 소음이 될지, 아니면 내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 하고 있다는 마음을 전달한 것이 될지는 그 사람이 받아들이기 나름이라 생각한다. 다만, 난 오늘도 기꺼이! 최선을 다 해보았기에 조금의 후회는 덜어낼 수 있겠지.   


    






함께 추락하는 삶은 비극이다. 가족이라면 서로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라도 다시금 각자 품위 있는 삶의 궤도로 올라야만 한다.

-p, 38



"우리 네 명 다 가족이긴 해도 각자 다른 인격체고, 다른 생각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야. 근데 엄마가 그렇게 고집하는 품위 때문에 속 터놓고 얘기할 엄두도 못 냈어. 서로가 어떻게 사는지, 무슨 생각 하는지 모른 채로 사는 게 가족이야? 남이지."

-, 175



조바심 내지 않고 좋아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언제든 '아니'라는 대답이 튀어나올까봐 불안함에 입술을 틀어막듯 키스하지 않게 되어 다행이다. 건강하게 싸울 수 있어서. 싸운 뒤에도 서로를 떠나지 않을 것임을 믿고 있어서 다행이다.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에 만에 하나 헤어질 수도 있다 할지언정, 지금만은 그런 순간이 절대 오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p, 204



오늘 저녁에도 이들은 약간은 소란스럽고 사사롭게 투닥거릴 예정이다.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

-p,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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