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 제21회 전격 소설대상 수상작
기타가와 에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놀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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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 다치바나 선배가 우울증인 게 걱정돼? 너랑 사이가 좋았던가?" 

"걱정된다고 해야 하나. 좀 무섭지 않아?"

눈살을 찌푸린 아케미의 표정에는 불안한 기색이 엿보였다.

"무서워?"

"미식축구부잖아. 우리 대학은 장팀이고 연습도 힘들기로 유명한걸. 그곳에서 줄곧 에이스였던 사람이 고작 석 달 만에 우울증이라니. 사회에서 일하는 게 미식축구부 연습보다 힘들단 소리잖아. 어떡하지. 나는 생각만으로도 기절할 것 같아."

아케미는 양쪽 눈꺼풀 주변에 한층 더 힘을 주었다. 그 불안한 표정이 나에게는 허풍을 떠는 것처럼 비쳤다.

"선배가 정신적으로 약했던 거잖아?"

"아냐, 그렇지 않아. 마음이 나약한 사람이 시합에 나가 활약할 수 있겠어?"

기대한 대답과 달랐는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부루퉁해진 아케미에게 나는 다 안다는 얼굴로 말했다.

"운동하면서 체력적으로 힘든 거랑 사회에 나가서 힘든 건 전혀 다른 장르잖아. 다치바나 선배는 마침 그쪽 방면 압박에 약했던 거야. 어지간히 사회생활 체질이 아니었나 보지."

"그런가."

"선배한테는 미식축구 재능은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직장인의 재능은 없었던 거지."

"직장인의 재능이 뭔데."

입을 더욱 삐죽 내민 아케미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진짜로 잘난 사람이란 어떤 환경에서나 잘나게 돼 있어. 사회에 나가서 가장 중요한 건 체력도 참을성도 아니야. 머리가 얼마나 잘 돌아가는가 하는 점이지. 어떤 사람과도 일해 나갈 수 있는 적응력이랑. 말하자면 '생존 능력'이 있는 사람이 강한 거야."

나에게 이야기해 봤자 입만 아프다고 생각했는지 그때 이후로 아케미와의 대화에 다치바나 선배 이야기가 나온 적은 없었다.


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 의기양양하게 떠드는 내 멱살을 잡고 "입 다물어, 멍청한 놈아!" 라고 소리 질러 주고 싶다.

아케미는 그때부터 나보다 훨씬 냉정한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민감하게 그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자신이 '생존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는 단순한 바보였다. 사회를 너무 우습게 보았다. 그리고 지금, 바보의 착각은 산산이 부서지고 사회의 냉엄함과 자신의 무력함을 통감하고 있다.

다치바나 선배는 지금쯤 어쩌고 있을까.

그 뒤 이야기를 들어 둘걸 그랬다고, 새삼 후회했다.

-p, 14~16

 














지금 이 순간에도 취업을 하기 위해 누군가는 밤낮을 잊고 자기소개서를 수백번 고쳐적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온몸이 덜덜 떨리는 압박면접을 견뎌내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나처럼, 그토록 좋아하는 친구, 연인과도 연락을 끊고(혹은 줄이고) 고독하게 공부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치열한 시간을 거쳐 원하던 직장에 또는 기준을 낮춰 겨우 들어간 직장에 출근을 하게 된다면 그걸로 모든게 끝난 것일까? 그 이후엔 낯선 업무 환경과 맞지 않는 직장 상사, 동료를 견뎌내는 치열한 시간이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는 어찌해야하나.

워낙 아침엔 맥을 못추는 뼛속까지 올빼미형 인간인지라 아침 일찍 나가야할 일이 있어 잠이 덜 깬 몸을 겨우 끌고 샤워를 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다.
"취직하면 이 시간에 일어나서 씻는 짓을 매일 해야하는거잖아, 끔찍해!!!!!"
아, 그때마다 내일이면 다시 늦잠을 자도 된다는 사실이 어찌나 감사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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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회사 생활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있는 내가 이번에 소개 할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는 파격적인 제목 때문에 출간 전부터 관심을 갖던 소설이었다. 다 읽고나서 이 책을 지금 읽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책이나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에 영향을 많이 받는터라, 만약 사회생활에 갓 발을 들여놓은 신입사원이었다면, 게다가 여기저기서 치이는 상황이었다면 "그래! 이런 삶이라면 용납할 수 없어!" 하고 충동적으로 사직서를 던져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인만큼 그려진 상황이 극단적이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들이 펼쳐진다. 주인공(아오야마 다카시)의 모든 행동이 마음에 들지않아 항상 소리를 지르는 상사, 후배가 잘 되는 꼴을 못봐 뒤에서 방해하고 앞에선 도와주는 척 하는 선배, 내 뜻대로 따라와주지않는 고객. 주인공의 상황에 감정이입을 어찌나 했던지 정신을 차리고보니 미간에 주름이 잡히도록 인상을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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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철없는 대학생활을 하며, 날이 밝아오는지도 모르고 부어라 마셔라 술을 마셨던 언니, 오빠들도 SNS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을 보면 어렸을때 보아왔던 멋진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이제 나와 내 동기들의 차례. 

벌써 입사한지 5년이 되었다는 한 오빠의 글 아래, 내 동기가 남긴 '요즘은 오빠가 정말 대단해보여요' 라는 말에 괜히 마음이 찡-했다. 지금 우리의 눈엔 그 어려운 취업의 문을 일찍 열고 들어간 오빠의 모습이 대단해보이겠지만, 우리가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아침이 오는게 싫을 정도로 힘든 직장생활을 5년이나 아무 탈 없이 해냈다는 사실이 대단해보이겠지.

졸업이 좀 늦어서 마음이 조급할 때마다, 먼저 취업한 친구들이나 언니, 오빠들을 만나면 항상 "세은! 학생일때가 좋은거야." 라는 말을 듣고 위안을 얻곤 했는데 지금은 학생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닌 이 애매한 신분(?)이 어디에 마음을 둬야할지 모르게 많이 불편하다. 학생일때가 사무치게 그리워질지라도 내가 "학생일때가 좋은거야. 직장인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에휴" 라는 말을 해줄 수 있도록 오늘도 긴 공부를 시작해야겠다.

 
+
이 소설엔 회사일에 치여 죽기 직전에 주인공의 손을 잡아준 친구 야마모토가 나온다. "회사일이 힘들수록 버티라고? 힘들수록 때려치워! 네 인생이잖아" 라는 어찌보면 철없는 소리를 하는 친구이지만, 이런 마음을 쉽게 갖지 못하는 간이 콩알만한 겁쟁이같은 나에겐 회사생활을 하며 이런 친구가 꼭 필요할지도 모른다. 
내 인생은 회사를 위한 인생이 아닌, 나를 위한 인생이라는 사실을 옆에서 상기해주는 야마모토같은 친구가.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는 그런 친구를 옆에 둔다는 마음으로 읽었으면 좋겠다. 현실의 내 친구들은, 그 친구들 스스로도 각자 삶에 치여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붙잡고있는 것도 힘들어할지 모르니.





― 괜찮아. 인생은 말이지, 살아만 있으면 의외로 어떻게든 되게 되어 있어.

어머니는 여전히 밝은 목소리로 나를 격려하듯이 말했다.
살아만 있으면.
이 말에 심장 안쪽이 욱신거렸다. 그와 동시에, 내가 하려 한 짓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이 마음속에 소용돌이 쳤다.
-p, 171


"너는 사회를 몰라! 이런 일로 좌절하는 놈은 말이지, 살면서 뭘 해도 글러먹게 돼 있어!"
호흡 곤란 직전까지 몰리면서도 어째서 저렇게 외치고 싶은 걸까.
게다가 생판 모르는 남이 내 인생에 대해 왜 이러쿵저러쿵 훈수를 두는 걸까.
내 인생에 참견할 수 있는 사람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뿐이다.
-p, 196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다들 잠시 숨을 멈추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꾸기는커녕 이 사회 하나, 이 부서 하나, 마주한 사람 한 명의 마음조차 바꿀 수 없는, 이토록 보잘것없고 장점 하나 없는 인간이 나예요."
어느새 눈물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이런 나라도 한 가지만은 바꿀 수 있어요. 바로 내 인생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것은 어쩌면 주변의 소중한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것과 이어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걸 깨닫게 해 준 사람이 있어요. 제게는 친구도 있어요. 걱정해 주는 부모님도 계세요. 아직은 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뭘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뭘 하더라도 좋아요. 그저 웃으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갈 겁니다. 스스로에게 거짓말하지 않으며 살아갈 겁니다. 부모님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갈 겁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지금의 제게는 그것이 전부입니다."
-p, 19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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