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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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커뮤니티는 하나하나가 고유의 질서와 법칙을 지닌 생태계다. 그 세계들은 태어나고 성장하며, 진화하고 죽는다. 어떤 것들은 아름답고 어떤 것들은 위대하다. 어떤 섬의 숲은 산불에도 잘 버틴다.


그러나 모든 세계에는, 그 자신만의 약점이 있다. 작고 가늘지만 세계 전체를 떠받치는 중대한 고리가. 별 생각 없이 풀어놓은 쥐 몇 마리가 토착 동물들을 전부 굶어죽게 만들 수도 있고, 그 쥐를 잡으려고 뿌린 소독약이 섬의 나무를 몽땅 말려 죽일 수도 있다……

-p, 95







 






   

영화 <내부자들>을 보며 연신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수위를 넘나드는 잔인한 장면과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야한 장면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 두 눈을 가리고, 내 두 귀를 막고싶었던 진정한 이유는 <내부자들>에서 그리고 있는 이야기가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도 있을 법한 무서운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허옇게 뜬 얼굴에 피 분장을 한 귀신이나 징그러운 괴물이 나오는 영화는 생각보다 무서워하지 않지만, 이렇게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도 있을 법한 무서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들을 보고 나올때면 찝찝한 기분과 함께 두려움이 느껴진다. 


 






 

장강명 댓글부대.jpg


 






그런 의미에서 장강명 작가의 《댓글부대》는 무서웠다. 


모두가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터넷, 때문에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무수히 많은 정보를 얻기도 하지만 정보의 양이 방대한만큼 정보의 진위여부는 가리지않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조작된 여론에 얼마나 많이 노출되어있는지 이 소설에선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다. 


허니버터칩이 인터넷에서 유명해지면서 너도나도 허니버터칩을 먹어보고자 하는 바람에 허니버터칩 과자 한 봉지에 몇 십만원씩 거래되는 일도 발생했고, '어떤 화장품이 좋더라' 하는 소문이 돌면 누구나 손엔 그 화장품을 꺼내들고 화장을 고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소설 속 이야기에 비하면 위에서 예시로 든 이야기들은 귀여운 축에 속했다. 거대한 커뮤니티인 여시, 일베, 오유 등에서 만들어진 여론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끌려다니며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지, 어쩌면 이런 커뮤니티의 여론을 움직이는 일에 국정원과 같은 세력이 개입되어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다루고 있으니까.


언제였던가. 나라에서 국민들한테 세뇌시키고 싶은 정보가 있다면 (예를 들면 국민 연금같은) 사람들이 많이 보는 TV 프로그램에서 자연스레 그 사실을 접할 수 있도록 작가나 피디를 섭외해서 그 사실을 전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연예인의 입을 통해서 그런 정보가 전달되기도 하고, 대중은 자연스레 그 말이 사실인가보다 하며 믿어버린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진위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하는 생각만으로도 오싹했다.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잘못된 정보를, 우리에게 주입시키려고 작정한 정보를 맞다고 생각하며 받아들였을까 하는 생각에.


이런 '있을 법한 이야기'를 보고나면 찝찝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보고나면 내가 무심코 지나쳐버릴 수 있는 일들에 의심을 해보게되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찾아서 읽어나가려고 한다. 

      





 


▼ 담아두고 싶은 문장들


사람이란 게 참 신기해요. 진짜 그 짧은 글로 상처를 입어요. 여러 명이 댓글로 '너 틀려먹었다, 저질이다, 반성해라' 이러고 돌아가면서 공격하면 어지간한 사람은 버텨내질 못해요. 웃기죠? 아는 사람이 하는 말도 아니고, 앞으로 만날 일이 있는 사람도 아닌데. 당사자에 대해 쥐뿔 아는 것도 하나 없는데.

-p, 81



"요즘 정치 하는 친구들은 그걸 몰라. 경제가 사회 분위기를 결정하는게 아니야. 사회 분위기가 경제를 결정하는 거야. 집단의 힘, 군중의 마음!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믿음을 품게 되면, 주변이 다 잿더미고 쓰레기산이어도 상관없어. 인간은 강한 거야.


괴벨스가 이런 말을 했어.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반드시 국민들에게 낙관적 전망을 심어줘야 한다고. 우리는 전쟁 중이었어. 그 지긋지긋한 가난과 싸우고 있었어.


일자무식의 농촌 출신 병사들이라도 말이야, 저기가 고지라고, 저기만 넘으면 된다고, 저걸 넘으면 넌 위대한 전사가 되는 거라고 북돋워주면 다 그걸 넘어. 자기들끼리 군가를 부르고 '조금만 참자, 버티자'고 외치면서. 그런 때 사람들은 애를 낳아. 여자들은 짧은 치마를 입고 남자들을 유혹해. 자기 미래를 낙관하니까. 하루에 열두 시간을 일하고 돌아와도 몇 년 뒤에 보답이 더 크게 돌아올 걸 확신하면 피로가 금방 가시지. 그런 흥분이 경제도 움직이는 거야.


그런데 멍청한 놈들이 그런 열광을 불러일으킬 생각은 않고 요즘 젊은이들은 패기가 없다느니, 뭘 포기한 세대라느니 하면서 오히려 기를 꺾어놔. 아주 악질적인 사고방식이야. 조금만 부추겨주면 에베레스트도 오를 수 있는 애들한테 '동네 뒷산 오르는 주제에 무슨 엄살이냐'라고 비아냥거리고, '힘드니까 등산이다'라며 멸시하고, 자기들 인생 하나 성공하지 못한 종자들이, 자라나는 애들 미래를 발목 잡고 있어. 다 붙잡아서 감옥에 처넣어야 해."

-p, 147~148



"뭘 해도 상황이 더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만큼 사람 정신을 좀먹는 것도 없어. 사람들도 그걸 알아. 어떻게든 그런 의심을 떨쳐버리려 필사적으로 애쓰지. 아주 발악들을 해. 취미에 몰두해서 걱정을 떨쳐버리려 하기도 하고, 계산기를 다시 두드려보면 혹시 없던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몇 번씩이나 두드려보고, 하나님 아버지를 찾고, 술을 퍼마시고 하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끝내는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다 화를 내게 돼. 자기가 잘못한 게 없잖아. 그런 때 화가 안 나면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야. 사람들은 분노하고, 희생양을 찾기 시작해. 지금 내가 돈을 얼마나 버는지, 무상복지가 얼마나 이뤄지는지 같은 건 상관없어. 중요한 건 미래고 희망이야.


원래도 기업들은 다 남 안 보는 데서 구린 짓을 해. 경기가 좋을 때건 나쁠 때건 말이야. 그게 본성이야. 경기가 좋을 때에는 사람들도 다 넘어가.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그런데 경기가 막 나빠지려고 할 때 걸리는 놈들은 재수가 오지게 없는 거야. 그럴 때는 나라에서 그 기업 회장 놈을 불러다놓고 조져야 돼. 안 그러면 사람들이 그 분노를 정부를 향해 터뜨릴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조지면 뭐라도 나오게 돼 있어. 횡령이건 배임이건 뇌물이건. 그런 게 없는 기업은 없어.


사람들이 너무 화를 내면 그 기업이 망할 때까지 조져야지. 그렇게 해서 회사가 망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그렇게 썩어 있었으니 망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건 앞뒤가 뒤바뀐 거야. 썩어 있었기 때문에 망하는 게 아냐. 사람들이 화를 내기 때문에 썩은 걸 그냥 봐 넘기지 못하는 거야. 출생률이 높아지는 게 먼저고, 여자들 치마 짧아지는 게 먼저야. 경제지표가 좋아지는 건 그 다음이야."

-p, 149~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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