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두근거리는 중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그러나 이렇게도 생각했다.

이루지 못한 꿈은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던 것.

거기에 비하면 '경험이 끝난 것들'을 내려놓는 편이 몇 배 더 충격이 아닐까 싶다.

나는 지금 이런저런 것들을 놓아버려야 하는 시기에 직면해 있다. 그것이 의외로 고통스럽다.

-p, 41

 

 




 

모임을 할 때면 매번 당연하다는 듯이 한식집에서 밥을 먹고왔다는 엄마한테 "왜 엄마들은 분위기 좋은 곳에서 안만나? 여자들끼리 파스타도 먹고 그러면 좋잖아." 했다가 "아줌마들이 그런데 가면 보기 좀 그렇잖아." 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뒷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쁘게 차려입고 친구를 만나 카페에서 수다를 떨다가 (주로 남자이야기) 그동안 봐두었던 분위기 좋은 곳에 가서 파스타를 먹거나 맥주 한 잔을 하는 지금 당연하게 느끼는 일상과도 같은 일이 적어도 10년 후엔 왠지모르게 남사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그래 맞아,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친구랑 콜팝 하나 사서 근처 학교 운동장에 쭈그려앉아서 먹던 걸 지금은 못하듯이.' 하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나이가 들면 어른이 되기 전 할 수 없었던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되는 반면에 어른이기 때문에 못하는 일들이 늘어간다는 점도 있다는 걸 잊고있었다.




 

 








 

​표지부터가 서글프다. '슈퍼'라고 크게 쓰인 비닐봉지를 옆에 두고 아무 벤치에 앉아 혼자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여자라니.


마스다 미리의 《여전히 두근거리는 중》. 이 책에선 40대를 앞두고 있는 마스다 미리가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두근거림을 느끼기엔 늦어버렸다고 생각하는 나이인 그녀는 어렸을 때, 즉 자신이 청춘일 때 당연하게 꿈꿔왔었던 로망들을, 하지만 이루지못했던 로망들을 찬찬히 생각해보며 지금의 자신을 돌아본다.

예를 들면,

그의 교복을 빌려 입기

가사 실습 음식 챙겨주기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하기

교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남학생!

커플룩 입기

패스트푸드점에서 데이트하기

등. 

​이 책을 읽으며 떠올려보았던 교복을 입고 있던 나는, 제대로 된 연애는 해보지 못했지만 선생님을 짝사랑했던 여학생이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좋아하는 선생님이 있는 교무실에 찾아갔고, 고등학생인 나에겐 과하게 비싸다고 생각했던 스타벅스... 유리병에 들었던 커피....%ED%9D%91%ED%9D%91%20%EC%9C%A0%EB%A0%B9 를 사서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얼마나 좋아했는지 대학 입시 상담까지 그 선생님한테 했을 정도였는데, 그걸 보는 우리 담임선생님은 맨날 나만 보면 '너 미워. 삐졌어' 라고 말하셨다. 허허, 그래도 자기를 좋아해준 내가 예뻐보이셨는지 빼빼로데이엔 빼빼로도 챙겨주시고 수능보기 전에 디데이 달력에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자기 번호가 디데이면 그 달력에 친구들이 편지를 써서 주었던!) 선생님이 직접 편지까지 써서 주셨을 정도였다.

이만하면 난 후회없는 청춘을 보냈다 싶다. 다만 그때의 그 순수한 여학생이 이젠 없다고 생각하니 서글플 뿐. 얼마 전 사촌오빠들을 만났는데 "옛날엔 이모 뒤에 숨어서 울기만하더니 이젠 시집가도 되겠다!" 라는 말까지 들어버렸다.


이제 더 이상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나중에 마스다 미리처럼 '20대에 못해봐서 후회스러운 일들'을 적으며 한숨을 내쉬기 전에 지금부터 하나하나 열심히 해나가야겠다. 벌써부터 한살이라도 어린 내가 그립지만, 지금도 또한 30대, 40대가 되었을때 내가 '그때 젊었구나.' 하고 그리워 할 순간이라는 걸 잊지 않아야겠다.  

 






 



 


    

 

입고 싶은 옷과 어울리는 옷의 차이가 점점 벌어지기 시작해서 초조하다. 내 마음에 어울리는 옷은 이제 내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것도 싫었다. -p, 18

인기를 얻고 싶은 마음으로 '머리핀'을 고르지 않게 되었다.

민소매나 무릎 위 스커트와의 이별이 아쉽다.

그것은 인생에서 사소한 일이다. 사소한 만큼 따끔하다.

이 따끔함이 39세의 나를 문득 아프게 한다.

그런데 눈치채고 있었다.

이것은 언젠가 '그 시절의 나, 아직 젊었구나' 하고 그립게 돌이켜볼 수 있는 달콤한 통증이었다는 것도. -p, 45



지금은 더 많은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작은 세계를 여러 개 갖는 것이라는 걸, 나는 언제쯤 깨달을까?

그리고 지금의 내게는 대체 몇 개의 세계가 있을까?

그 세계를 일일이 공표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어른이라는 것을, 나는 어떻게 학습했을까? -p,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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