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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여인의 편지 ㅣ 고려대학교 청소년문학 시리즈 23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송용구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11년 6월
평점 :
쏟아지는 봄비에 마음마저 젖어들까 무서운 밤이다.
봄비가 내리니 내 블로그가 생각났다 라는 가슴 설레는 메세지를 받고선 그동안 무심했던 글에 뜨끔해지며 이번에는 진심어린 글을 적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
《이별여행》 을 읽고 그 매력에 반해 좋아하는 작가의 리스트에 올려두었던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이다.
도서관에 가면 제일 먼저 신간서가를 둘러보고, 다음엔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한 명 한 명 마음 속으로 꼽으며 서가를 돈다. 그렇게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이 꽂혀있는 서가에서 발견한 정말 얇디얇은 이 책. 130페이지 정도인 이 얇은 책을, 안그래도 학교에 다닐 땐 들고다니는 무거운 전공서적들 탓에 읽을 책은 가볍고 얇은 책을 선호하는데 딱이다 싶어 바로 빌려왔다.
《모르는 여인의 편지》라는 묘한 제목처럼 이 이야기는 한 남자가 자신이 모르는 여자로부터 편지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야기가 다 끝날때까지 이 '모르는 여인'의 목소리로 우리는 이 편지를 읽어나가고, 마지막엔 이 편지를 읽은 남자를 보여주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이야기는 끝이난다.
그녀는 어렸을 때, 옆집으로 이사 온 멋진 아저씨에게 한 눈에 반해버린 소녀였고, 그 후 평생을 그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살아온 여인이었다.
그가 이 여인을 하룻밤 불장난 상대로 여기고 그의 머릿속에서 자연스레 지워버렸음에도 (지우려는 노력 없이도 자연스레 지워져버렸을만큼) 그녀는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선 수많은 여인들과 보냈던 하룻밤 불장난에 지나지 않았던 그 시간이 그녀에겐
'잠들어 계신 당신 곁에 누워 당신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는 순간, 그리고 당신의 육체를 느끼면서 바로 당신 곁에 제가 있음을 뚜렷이 알게 되는 순간, 저는 벅차오르는 행복감을 못 이겨 어둠 속에서 숨죽여 울었답니다. (p, 72)'
라고 말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고, 그 날 생겨버린 아이의 존재를
'그 아이는 당신에게서 부여받은 또 하나의 당신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저의 손으로 결코 붙잡을 수 없는 행복하고 방종한 당신이 아니라, 영원히 저에게 붙잡힌 또 하나의 당신이었습니다. 보잘것없는 저의 생각일지는 몰라도 저의 온몸과 연결되어 제 인생을 움직이는 생명줄은 바로 그 아이였습니다. (p, 81)'
이처럼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의 분신으로 여겨, 다른 남자들에게 자신의 몸을 팔아서 아이를 사랑스럽게 키워내기까지한 여인이었다.

《이별여행》 에서 볼 수 있듯이 슈테판 츠바이크는 '사랑'이라는 사람의 감정을 글로 풀어내는 능력이 대단했다. 다만, 이 사랑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평범한 사랑이 아니라서 이 이야기를 읽으며 눈살을 찌푸릴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하지만 꼭 내가 생각하는 사랑만 옳다 말할 수 없기에, 나는 이런 글을 읽을때마다 새로운 사랑의 세계를 알아가는 것 같아 설렌다.
'한 남자를 평생 사랑한 여인이 적은 편지' 만으로 이루어진 이 글이 이처럼 매혹적일 수 있다는 사실만봐도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렇게 또 한 번 날 사로잡았다.
덧붙여, 오늘처럼 봄비가 내리는 밤과도 정말 잘 어울리는 이야기였다는 점도 꼭 적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