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
한혜경 지음 / 샘터사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누구보다 정신없고 길었던 설 연휴였다. 


매주 토요일이면 엄마는 남원에 내려가서 외할머니랑 하룻밤을 보내고 일요일에 다시 전주로 돌아왔다. 평일 내내 일하느라 힘들었을텐데도 토요일에 일을 마치면 우리집이 아닌 남원 외할머니댁으로 퇴근을 했다.


그러던 중 하룻밤 더 자고 월요일 오전에 오겠다던 엄마한테서 급히 전화가 왔다.

"외할머니 모시고 우리집으로 갈테니까 집 좀 깨끗하게 치워줘. 미안해."

잠결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싶어 동생이랑 꿍얼거리면서 집을 급하게 치웠고, 그때부터 짧지만 길게 느껴졌던 외할머니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치매증세 탓에 약을 드신 걸 잊으시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약을 찾으신다고 했다. 그렇게 집에 홀로 계시면서 혼자 그 많은 약을 다 드시고 맨발로 동네를 돌아다니셨다는 이야기를 엄마가 들었고, 속상해서 무작정 우리집으로 모시고 온 것이었다.


워낙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생활을 했던 탓에, 외할머니가 오신 것 만으로도 많이 불편했고, 치매증세 때문에 옆에 사람이 꼭 붙어있어야해서 가족들이 다 나가고, 내가 할머니를 돌보아야 할 때엔 예측불가능한 행동에 못 견뎌 엄마를 호출하는 날이 이어졌다.


다른 분들에 비해선 양호하신 편이었지만, 방금 약을 드셨음에도 약을 계속 찾으시고, 할머니 시대(?)엔 자신이 희생하면서 자식들을 키우는게 당연하다 여겨졌던 때라 '내가 너희 9남매를 어떻게 키웠는데 나를 요양원으로 보내려고 하느냐. 요양원은 못가겠다.' 라는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


그래서 이번 설 연휴엔 그 많은 할머니의 자식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우리집으로 찾아왔다. 좁은 집이 북적거렸고, 할머니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고 계시면서도 이모, 외삼촌들도 각자의 가정이 있는지라 선뜻 자신이 모시겠다는 말을 꺼내질 못하셨다. 우리집도 나와 동생이 학교에 가는 날이 오면 할머니 옆에 있어 줄 사람이 없어 할머니는 결국 요양원으로 가시게 될 터였다.


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셔다드리고, 엄마는 울면서 말했다.

'자식이 아홉이나 되는데도 부모 한 분을 못 모시네. 자식이 다 무슨 소용일까 싶어.'

그래서 난 '엄만 지금 우리 때문에 희생하고 살다가 나중에 할머니처럼 나랑 기원이 원망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하고 싶은거 다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라고 말했다.



   














 

《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를 읽으면서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취직을 위해 청춘 다 희생하고, 취직해선 자식을 위해 또는 은퇴 후의 삶을 위해 다 희생하고, 정작 은퇴 후엔 몸이 아파 누리지 못하다 죽는 삶을 정말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제 정말 '100세 시대'라 말하는데 이렇게 긴 시간 행복하게 살아야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내가 취해야 할 건 무엇이고 버려야 할 건 무엇일까.

 









 








내가 읽는 것도 좋지만 지금 우리 부모님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책이었다. 옛날엔 정신없이 살다가도 짧은 수명 탓에 후회를 할 시간조차 넉넉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든 '시간'이 많다.





이제 인생은 이전보다 천천히, 유연하게, 페이스를 조절하며, 주변의 환경도 즐기며 달려야하는 마라톤 같은 것이 될 것이다. -p, 21


100세 시대란 '내게 중요한 건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고 열정을 가지는 건 무슨 일인가?', 무엇이 최선인가?' 에 대한 더 깊은 생각과 고민이 필요한 시대다. 소중한 일에 집중하면서도 너무 숨차지 않게 달려나갈 수 있는 그런 삶에 대한 '기획'이 필요하다. -p, 23, 24





그렇다. 난 이번에 우리 외할머니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한 번 사는 인생의 끝에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을 주는 사람이 되긴 싫다고. (물론 우리 외할머니가 짐이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정말 한 권의 멋진 책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제 노년까지 전략을 짜서 살아야하나, 이 책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프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니 받아들여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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