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경 - 우리는 통일을 이룬 적이 있었다
손정미 지음 / 샘터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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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없는 나라와 백성은 아무것도 아니다. 적군에게 짓밟히고 약탈당해도 역사가 살아남으면 영원히 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개돼지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구!" -p, 304 

 

 

 

 

 

 

 

 


 

 

 

 

 

 

 

 

​내가 좋아하는 사진가인 '로버트 카파(Robert Capa)'의 수많은 사진들 중 유명한 사진이 있다. (사진을 올리고 싶은데 요즘 하도 저작권 문제가 심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져오지 못했다.) 삭발 당한 여인들이 품에 아기를 안고 군중들에게 질타를 당하며 거리행진을 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인데, 당시 독일군에게 협력했던 프랑스 여인들이 해방 후 반역죄로 여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긴 머리가 빡빡 밀린 채 야유를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연유로 이 여인들이 적군에게 협력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후에 '히로시마 내 사랑'이라는 영화에서 이 상황을 '혹시나 그게 사랑해서였다면'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을 그려냈다. 독일군을 사랑한 프랑스 여인. 서로가 적국의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떳떳하지 못했고, 독일군이 죽자 이 여인은 가족들에 의해 감금을 당하게 된다.   

역사소설 《왕경》을 읽으며 이런 작품들을 떠올렸던 이유는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 때문이었다. ​

     

계림(신라)의 귀족이자 화랑인 김유, 고구려의 귀족이었지만 노비가 된 진수, 백제에서 온 영특한 소녀 정. 한 나라의 운명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던 그들은 고작 십대의 소녀, 소년들이었다. 《왕경》은 삼국통일 직전, 위에서 언급한 세 사람이 각자의 사정으로 왕경(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의 옛말)에서 모이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다. 당시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가 서로를 언제 칠지 몰라 눈치를 보며 적으로 여기고 있던 때. 태어난 곳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가까워질 수 없었고, 심지어 서로를 죽이기까지 해야만 했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오늘 처음 자유를 맛본 갈매기처럼 보이는 정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처음 본 것 같은 낯설음이었다. 계림과 백제가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지만 정은 백제라는 옷을 입고 있을 뿐이다. -p, 225​

아무리 공부를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고마는 역사바보인 내가 이런 말을 하기엔 신뢰가 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단순한 역사소설이라기엔 '실제로 저런 상황이 벌어졌을 수도 있었겠구나.' 싶을 만큼 탄탄했다. 실제 일어났던 역사를 토대로 존재했던 역사적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이런 픽션을 그려내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에 쉽게 읽어내려가는 내가 죄송스러울 정도였다. 하루만에 독파해버릴 정도로 흡입력도 대단했고 쉬웠다! (역사는 아직도 어렵다고 생각하는 나이기에 역사 소설에선 '쉬운게' 나에겐 중요하다!)

더 특이한 점은 손정미 작가님의 이력이었다. 역사관련 된 학과를 졸업하셨거나 그런 일을 하신 줄 알았는데 '연세대학교 영문과 졸업' 이라니. 내가 영문과여서 그런지 영문과를 졸업한 분들의 이력에 관심이 많은데 우리과를 졸업하면 일반적으로 영문학 소설을 쓰거나, 번역가로 나가는 게 일반적. 역사 소설이라니 의외다 싶었다. 심지어 소설을 쓰기 위해 다니던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왕경》을 집필했다니. 문학 담당 기자 시절엔 故 박경리 작가님으로부터 소설을 써보라는 권유도 받은 적이 있다고 하시니 일단 한 번 믿고 보라고 권하고 싶다.

삼국 통일 직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 소설을 통해 엿보며, 현재의 우리 모습을 돌아보는 기회도 가져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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