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황소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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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그가 말했다.

"그래, 말해봐." 선장이 말했다.

"한 사람만으로는." 해리 모건은 아주 느릿느릿 말했다. "안 돼 아니 못해 아무것도 힘들어 출구가 없어."

그는 말을 멈추었다. 그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계속해, 해리. 누가 그랬는지 말해봐. 어떻게 된 일이야?"

"한 사람." 광대뼈가 도드라진 넓적한 그의 얼굴은 실눈을 뜨고 선장을 쳐다보며 말하려고 애썼다.

"네 사람이겠지." 선장이 도와주려고 말했다. 그는 다시 수건을 짜서 물을 몇 방울 해리의 입술 사이에 떨어뜨려 적셔주었다.

"한 사람으로는." 해리는 선장의 말을 고치고는 말을 멈췄다.

"그래, 한 사람으로는." 선장이 말했다.

"한 사람으로는." 해리는 마른 입으로 아주 단조롭고 느릿느릿 다시 말했다.  "세상일이 그런 거고 그렇게들 가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불가능해."

선장은 항해사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누가 그랬어, 해리?" 항해사가 물었다.

해리는 그를 쳐다보았다.

"자신을 속이지 마." 해리가 말했다.

선장과 항해사는 둘 다 해리 위로 몸을 숙였다. 이제 제대로 말하려나 보군.

"언덕 꼭대기에서 차들을 지나칠 때처럼. 쿠바의 그 길에서. 어느 길이든. 어디든. 다 똑같아. 세상일이 그렇단 말이지. 세상 사람들이 그렇단 말이지. 잠깐은 그래 괜찮아. 행운이 따라준다면. 한 사람으로는." 그는 말을 멈추었다.

선장은 다시 항해사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해리 모건은 덤덤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선장은 해리의 입술을 다시 적셨다. 수건에 핏자국이 묻었다.

"한 사람으로는." 해리 모건은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한 사람으로는 안 돼. 이제 혼자로는 안 돼."

그는 말을 멈추었다.

"한 사람만으로는 아무리 발광해도 기회가 없어." 그는 눈을 감았다. 그 말을 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것을 배우기까지 평생이 걸렸다. -p, 250~252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때 그 기회를 의미없이 흘려보낸 것을 이 책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으면서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영문도 모르게 영문학과에 들어왔어!' 라는 말을 장난식으로 내뱉으며 점수에 맞춰서 오다보니 영문학과에 오게 됐다고 말하던 나였고 그걸 핑계삼아 학점을 위한 겉핥기식 공부를 해왔던 나였다. 그런데 지금의 나를 보니 그 누구보다 문학을 좋아하고 내가 더 많은 문학작품을 접하지 못함에 아쉬워하고 있다. 남들이 보는 나는 '책을 많이 읽으니까 멋지다. 아는 게 많을거야.' 라는 식인데 사실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많은 걸 알고 있지 못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라는 이 책을 읽으며 나름 영문학과라면서도 헤밍웨이에 대해 풀어낼 수 있는 지식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 아닐까. (정말 창피하다. 분명 시험 답안으로 헤밍웨이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았던 나였는데!! 시험장에서 나오자마자 그걸 싸그리 다 잊어버리다니.)

국내에 77년 만에 최초로 출간 된 책이라고 하는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법에 위배되는 일을 해야만 가족을 먹여살릴 수 있고, 또 누군가는 돈이 너무 많아 걱정한다. 주인공 해리 모건은 낚시배를 이용해 손님들을 태우며 돈을 받는 일을 하며 살아왔지만 못된 손님을 만나 낚시용품도 모두 잃게 되고, 받아야 할 돈도 받지 못하게 된다. 그대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그는 가족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그동안 거절해왔던 '밀수업'과 '쿠바 중국인 밀항'을 시작하기로 한다.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는 그 일을 좋아서 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 당시는 경제 불황기로 평범한 일로는 큰 돈을 벌 수 없었던 때였기에 그는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하게 되고 결국엔 그 일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된다.

이렇게 목숨을 걸고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만하는 빈자들이 있는 반면에 호화로운 요트에서 도박으로 돈을 펑펑 날리며 그마저도 따분해하는 부자가 있다. 물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라는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쓴 작가들은 수도 없이 많겠지만 내가 이 책을 읽고 놀랐던 건 1930년대에 외국에서 출간된 소설임에도 지금 우리의 현실과 너무나 똑 닮아있어서였다. 어제오늘일이 아닌 빈부격차, 어느 한 곳에선 못 먹어서 죽어가고 어느 한 곳에선 너무 많이 먹어 죽어가는 지금 이 현실을 1930년대 쓰여진 이 작품을 통해서도 공감할 수 있다니. 이래서 사람들이 '고전 고전' 하는 것이며 '헤밍웨이 헤밍웨이' 하는 것임을 부끄럽지만 이제서야 깨달았다.

요즘 좋은 기회들로 그동안 멀리했던 고전들, 명작들을 많이 접하고 있어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더 늦기 전에 헤밍웨이의 명작들도 얼른 읽어보는걸로.

(이 작품은 미국과 쿠바의 역사를 알면 좀 더 멋지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랬던가. 이 작품 뒤에 있는 부가적인 설명이 없었다면 이렇게 시대적, 사회적 문제를 멋지게 꼬집는 작품을 한낱 소설로만 치부해버릴 뻔 했다. 이 점도 반성. )​

 

 

 

 

 

 

 

 

 

그는 과거에 자기가 남들에게 어떤 짓을 했든, 그로 인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든, 그들이 어떻게 파국을 맞이했든 개의치 않았다. 누가 레이크쇼의 집을 팔고 오스틴으로 이사한 뒤 하숙생들을 차에 태우고 외출을 하든 말든, 상류층 사교계에 진출했던 딸들이 일자리가 필요해 치과에서 보조원으로 일하게 됐든 말든, 예순셋의 나이에 궁지에 몰려 야간 경비원으로 전락했든 말든, 식전 이른 아침에 권총 자살을 하든 말든, 그의 자식들이 아버지를 발견하든 말든, 그 현장이 얼마나 참혹하든 말든. 간신히 일감을 얻은 누군가가 버윈에서 차를 타고 레이크쇼를 지나든 말든. 그가 처음에는 채권을 팔다가 그 다음엔 자동차로, 그 다음엔 방문판매용 잡동사니와 특산품을 팔게 되었고('잡상인 필요 없어요. 여기서 나가요.' 그의 면전에서 문이 쾅 닫힌다) 그러다 결국 42층에서 떨어진 자기 아버지의 전철을 다른 방식으로 밟게 되든 말든. 그가 한 마리 독수리가 하강하듯 서두르지 않고 세 번째 선로로 한 걸음 내밀어 오로라엘진 기차 앞에 서든 말든. 절대 팔리지 않을 달걀 거품기와 과일즙 짜는 기구 들이 그의 외투 주머니에 잔뜩 들어 있든 말든. '한번만 구경이라도 하시죠, 부인. 이걸 여기에 대고 이 기구의 나사를 조이세요. 자 보십시오.' '아뇨, 필요 없어요.' '한번 해보세요.' '필요 없다니까 그러네. 나가요.' 그래서 그는 목조 주택과 텅 빈 마당, 줘도 안 가져갈 헐벗은 개오동나무 들이 있는 거리로 나가 오로라엘진 기차선로로 내려갔던 것이다.

어떤 이는 아파트나 사무실 창문에서 한참을 추락하기도 했고, 어떤 이는 자동차 두 대용 차고에서 자동차의 시동을 켜고 조용히 떠나기도 했다. 어떤 이는 전통에 따라 콜트나 스미스앤드웨슨 총을 택하기도 했다. 잘 만들어진 그 도구는 불면증을 끝냈고 후회를 몰아냈으며 암을 치료했고 파산을 물리쳤다. 손가락 하나로 당기기만 하면 궁지에서 탈출구가 열렸다. 그 훌륭한 미국의 도구는 휴대도 대단히 간편하고 효과도 대단히 탁월해서 악몽으로 변질된 '아메리칸드림'을 끝장내기에 그만이었지만 친척들이 지저분한 뒤처리를 해야 한다는 유일한 단점이 있었다.

그가 파산으로 내몬 사람들은 이런 다양한 탈출구를 선택했지만 그는 한 번도 그들을 걱정한 적 없었다. 누군가는 패배해야 했고 걱정은 호구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아무렴. 그는 그 사람들도 성공적인 투기의 부작용도 고려해야 할 까닭이 없었다. 내가 이기면 누군가는 져야 하고 걱정은 호구들이나 하는 거니까. -p, 263~265

잠이 안 오는 데 밤을 어떻게 견디지? 남편을 잃어봐야 그게 어떤 기분인지 알게 되나 봐. 그때야 알게 되나 봐. 이 지랄 같은 인생은 모든 걸 그렇게 알게 되나 봐. 그래, 그런 것 같아. 나도 지금 알아가는 거겠지. 마음이 죽으면 모든 게 쉬워. 그냥 그렇게 죽어가는 거야. 대부분의 사람이 대부분의 시간을 그렇게 보내. 세상살이가 그런 거 같아.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인 것 같아. 나는 출발은 좋았어. 출발은 좋았어. 그러는 게 맞는 거라면. 그러는 게 맞는 거겠지. 바로 그거야. 그게 요점이야. 괜찮아. 나는 출발은 좋았으니까. 지금은 남들보다 앞서 가고 있어. -p, 290,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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