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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뜨거움
김미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3월 22일. 이 책 《살아 있는 뜨거움》을 처음으로 만난 날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언니가 제 생일선물로 이 책을 선물해주었어요. 3월이라 아직 쌀쌀한 때였는데 생일선물을 주려고 제 수업이 끝날때까지 기다렸다가 이 책과 예쁜 책갈피들을 안겨줬었거든요. 당시엔 학교에 다니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고, 이 책은 꼭 '내가 필요로 할 때 읽고 도움을 받으리라'라는 생각으로 책꽂이에 꽂아뒀었는데 이번에 읽게 되었네요.
그동안 많이 무기력해져 있던 탓에 이사람 저사람한테 투정을 부리고 있었는데, 마침 이 책 제목이 눈에 딱 들어왔습니다.
스타강사 '김미경' 이라는 이름은 이제 남녀노소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져있죠. 처음엔 이런 인기의 바람을 타고 가볍게 낸 책이 아닐까 반신반의하며 책을 펼쳤습니다. 이 책이 쓰여진 시기는 강사 '김미경'이 논문 표절 의혹에 시달리고, 그 여파로 그녀의 이름을 내걸고 방송되고 있던 '김미경 쇼'에서도 하차한 후. 심지어 스타강사라는 명함에 걸맞지 않게 잡혀있던 강의는 줄줄이 취소되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실망이다.'라는 말을 내뱉던 때였습니다.
그녀의 강의를 들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당찬 모습으로 독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그녀를 보고있자면 세상의 그 어떤 시련조차 그녀가 무서워서 피해갈 듯 보였지요. 하지만 논문 표절 사건이라는 불행한 운명이 그녀를 휩쓸고 지나갔고, 그렇게 집 한 구석에서 그녀를 되돌아 볼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녀의 강의 주제는 대부분 '꿈'입니다. '꿈을 가지면 이뤄내지 못할 것이 없다.' 라는 말로 잔소리를 해대던 그녀는 문득 자신에게 사람들이 '운명'에 대해 묻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꿈만 있으면 인생이 술술 풀릴 거라고 말하던 그녀는 정작 자신도 운명에 이끌려서. 때론 운명에 흔들리기도 하고, 그 운명과 화해를 하기도 하며 살아왔기 때문이죠.
이 책 《살아 있는 뜨거움》을 통해 그녀는 그녀가 겪어왔던 고단한 운명에 대해, 또한 그 운명과 어떻게 화해하고 마주해왔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험난한 운명이 자신에게 닥쳐와도 '살아 있다'라는 명제는 절대적이었다는 사실 또한 알려주고 있습니다.
청중에게 자신의 논리를 설득해야하는 강사라는 직업을 가져서인지 이 책 또한 정말 설득력이 굉장합니다. 여기 쓰여있는 글을 그녀가 소리내어 읽어주면 바로 훌륭한 강의가 될 정도로요. 50대인 그녀가 저보다 먼저 겪어가며 깨우친 사실들을 이렇게 앉은 자리에서 낼름 받아먹어도 될까 싶을 정도로 그녀가 깨우친 '운명과 마주하며 살아가는 방법'은 정말 고개를 수백번 끄덕이게 됩니다.
마침 오늘은 저에게 이 책을 선물해 준 언니의 생일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이 서평은 더 뜻깊고, 이렇게 좋은 책을 선물해 준 언니에게 고맙다는 말을 서평을 빌어 전해주고 싶어요!



끌려 내려가면 시간마저도 불행이라는 감정에 빼앗겨 온전한 내 것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스스로 내려놓으면 적어도 시간은 남는다. 그리고 그 시간으로부터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P, 24
사람마다 집착하는 것이 있다. 누군가는 돈에 집착하고, 누군가는 명예에, 어떤 이는 자식에 집착한다. 혹자는 이를 두고 열정이라고, 신념이라고,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공에 대한 열정과 집착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사회적 신념과 명예욕, 자식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집착을 무 자르듯 구별해내기도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내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이라면 집착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것이 꿈에 대한 열정이든, 누군가를 도우려는 선한 의지든, 뜨거운 사랑이든……. 나를 돌보지 않거나 나를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손에 가득 쥐고 있는 것, 내가 사는 이유라고 확정지어 놓고 하루 종일 들여다보는 것, 없으면 당장 죽을 것 같은 모든 것이 집착일지 모른다. 가장 본질적인 내 존재를 힘겹게 만드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내 몸뚱어리 하나 빼고 전부 다.
살다 보면 손에 든 걸 내려놓아야 할 때가 온다. 그때 내려놓지 않으면 그 무게 때문에 정말 내려앉을 수도 있다. -P, 25, 26
인생에서 내게 오는 모든 것들은 양면의 카드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하나고, 행운과 불행이 하나의 사건에 공존한다. 다만 우리가 카드의 앞면에 놓인 것들만 보면서 울고 웃는 것뿐이다. 앞면에 불행이 적힌 카드가 오면 화가 나고 억울해서 뒷면을 보지 못하고, 행운이 적힌 카드가 오면 또 무서워서 일부러 뒷면을 외면한다. 그러나 인생에는 반드시 카드를 넘기는 순간이 온다. 앞면에서 뒷면으로, 다시 뒷면에서 앞면으로. 불행의 카드 뒤에는 고통의 크기만큼 행운과 축복이 숨겨져 있고, 마찬가지로 행운의 카드 뒷면에는 그만큼의 불행과 위기가 도사리고 있게 마련이다.
운명을 재해석한다는 것은 그 숨겨진 카드의 뒷면을 보는 일이다. 카드의 앞면에만 속지 않으며 뒷면이 있다는 것을 믿고 찾으려 애쓰는 것이다. 심오한 해석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자신이 볼 수 있는 만큼 보면 된다. 자신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는 재해석이면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카드의 앞면만 보고 판단하지 않을 지혜와 여유 그리고 그 카드를 뒤집을 수 있는 용기 아닐까. 운명의 카드를 넘기는 순간, 우리의 인생은 전혀 다른 세상과 만나게 될 것이니. -P, 33
나는 엄마라는 역할도 좋아한다. 그러나 엄마는 역할일 뿐 나라는 사람의 존재 자체는 아니다. 아내도 역시 역할일 뿐 내 존재의 본질은 아니다. 역할이 존재보다 앞설 수는 없다. 나는 김미경으로 태어났고 엄마뿐만 아닌 무수히 많은 역할을 수행하다 결국엔 김미경으로 죽을 것이다. -P, 47
부모가 기뻐할수록 자식은 불안해진다. 자식이 잘한 것에 대해 기뻐하고, 못할 때 실망하는 간극이 클수록 아이들은 자기답게 클 수 없다. 다만 부모의 '기쁨 제조기'가 될 뿐이다. -P, 55
불행과 상처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지나가도록 놓아두는 것이다. 그 모든 감정들이 하나하나 내 몸을 빠져나갈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어떤 운명도 시간을 이길 수는 없다. 그러니 흘러가게 두면 된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숨만 쉬어도 된다. 중요한 건 한꺼번에 내려놓으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다. 왜 이까짓 일도 못 이겨내느냐고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는 것이다. 억지로 웃거나 씩씩한 척하지 않아도 된다. 박노해 시인은 말했다.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내 절망을 지켜보는 것만큼 힘들고 아픈 일이 또 있을까. 그러나 애써 긍정으로 포장하거나 부정하지 않아야 절망의 밑바닥까지 갈 수 있다. 그 컴컴하고 무시무시한 곳까지 가봐야 내게 남아 있는 가장 정직한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세상 모든 것을 잃어도, 난 이것만으로도 살 수 있어.'라는 가장 원초적인 희망.
신은 인간에게 웃음도 줬지만 눈물도 주었다. 행복을 즐기는 힘과 불행을 견디는 힘을 동시에 준 것이다. 기쁠 때 더없이 활짝 웃는 것만큼이나 힘들 때 온몸으로 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다. 아프면 펑펑 울고 한숨 푹 자자. 시퍼런 마음의 멍이 빠질 때까지 천천히, 그저 놓아두자. -p, 148, 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