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니맨 - 생에 한 번, 반드시 떠나야 할 여행이 있다
파비안 직스투스 쾨르너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나는 졸업만 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날 작정이었다. 이번엔 두세 달로 끝나는 단기 여행이 아니라 1년, 혹은 2년 동안 세상 곳곳을 탐험하는 진짜 여행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젊은이들처럼 나 역시 현실적인 고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스펙과 커리어 등 직업적 전망도 세워야 했고, 여행 경비도 마련해야 했다. 무엇보다 내 발목을 붙잡은 건 바로 '뒤처짐에 대한 불안'이었다.

 

"1~2년 동안 세계를 여행하겠다고? 간이 부었군.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시기를 여행으로 탕진하겠다니…… 정말 미친 거 아니야?"

 

동료와 선배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면 다들 이미 따라잡을 수도 없을 만큼 앞서 나가 있을 거라며 엄포를 놓는 녀석도 있었다. 나는 딜레마에 빠졌다. 전공을 살려 창의적인 열정을 발휘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매일매일 사무실 책상 앞에만 앉아 있고 싶진 않았다. 나는 어제와 똑같은 오늘, 오늘과 똑같은 내일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p, 10)

 

 

 

 


 

 

 

 

 

내가 아무리 책을 통한 간접경험을 좋아한다지만 남이 다녀온 여행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건 영 적성에 맞지 않는다. 그런 여행기를 보고 있으면 특히 그 여행이 멋지면 멋질수록 질투가 나서 미쳐버릴 것 같달까. (왜 남들이 쉽게 못가는 여행도 다녀오고, 책까지 내서 돈을 버는거야!!! 라는 식의..) 《저니맨》도 나에게 거부감을 일으키기 충분해보였지만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고 싶었던 건 내가 위에 발췌해 둔 저 부분 때문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파비안 역시 내 또래 20대들과 마찬가지로 여행을 다녀오게 된다면 남들보다 뒤쳐질 스펙과 커리어를 걱정하고 있었다는 점. 대부분의 여행 작가들은 스펙과 커리어 따위는 이미 뒷전인, 내 인생 내가 멋지게 살겠다는데 무슨 걱정이냐! 와 같은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기에 나와 똑같은 걱정을 하고 있는 넌 얼마나 잘해냈나 보자 하는 심보로 읽기 시작했다.

 

 

 

 

 

 


 

 

 

 

 

 

고민이 쌓여갈 무렵, 나는 우연히 '수련여행자'라는 중세의 전통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수련여행자란 장인이 되기 위해 수련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중세시대에는 장인이 되려면 기술교육을 마친 뒤 얼마 동안 여행을 해야만 했다. 이러한 전통은 비단 길드의 직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고,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까지 유럽의 상류층 사이에서도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 보다 다양한 문화적 식견과 폭넓은 지적 체험을 위해 상류층의 자제들이 의무적으로 떠나야 했던 이 여행이 바로 '그랜드투어'다. 길드의 장인들이나 유럽의 특권계층은 여행의 비밀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여행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지혜를 얻으며 세계의 문화와 우주의 넓이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치마폭에 싸인 애송이로 출발했다가 두려움을 모르는 진정한 어른이 되어 돌아왔다. (p, 10, 11)

 

 

 

 

 

 


 

 

 

 

 

 

파비안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수련 여행'을 계획했는데 이 점 역시 다른 여행기들과 차별화 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였다.

 

수련여행 10계명을 세워두고 이 10계명을 지켜나가며(물론 중간중간 이 10계명이 지켜지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2년의 여행을 성공적으로 해낸다. 여행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는 의욕과 용기가 넘치는 사람으로 변해갔고, '여행지를 진정으로 느껴보고 싶다면 현지인처럼 살아보라' 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그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남들이 다 가는 에펠탑, 피라미드,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오는 그런 여행이 아닌, 여행지 속에서 직접 가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보려고 노력했고 (수많은 노숙자, 위험한 치안 등) 구경꾼이 아닌 행동하는 여행자로 여행을 했다.

 

또한 그는 여행 도중 독일에 남겨두고 온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었는데 장거리 연애를 하는 사람들은 이 부분에서 참 많이 공감을 했을 것 같다..

 

 

 

 


 

 

 

 

 

《저니맨》은 책 자체가 참 능동적이다. 책 중간중간 보이는 QR 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인식해보면 파비안이 찍은 동영상이 저렇게 재생된다. 나머지는 귀찮아서 안해봤지만...

그래도 역시나, 난 뒤처짐이 무섭고 그렇기에 아직까지는 이렇게 간접경험으로 만족하련다.

 

 

 

 

 

 

"흔히들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긴 우회로일 수도 있지. 반대로 우회로처럼 보이는 게 오히려 진짜 지름길이 될 수도 있고 말이야. 자네 마음속에 있는 그거, 한번 실행해봐." -p, 13

​나는 스물여덟 살이고, 이제 곧 날이 밝으면 2.5평짜리 다락방을 떠나 세상 밖으로 나갈 것이다. 돌아올 땐 스물아홉, 혹은 서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맞게 될 나의 서른은 한 번도 떠나보지 못한 서른들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지금 물러나면 다시는 꿈을 실현하지 못하리라. 가슴이 뛴다. 생에 한 번, 반드시 떠나야 할 여행을 이제 시작하라는 신호다. 창밖으로 출정의 날이 밝아오고 있다. -p, 15

 

여행이란 만남을 뜻하면서 동시에 헤어짐을 뜻한다. 새로운 환경과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다. 익숙한 환경과 헤어지는 것도 여행이 요구하는 필수 조건이다. 안전하고 익숙한 것에서 멀어질 때 진짜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p, 28

나는 보다 천천히 걷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너무 빨리 걸으면 세상이 내게 전해오는 속삭임이 쫓아오지 못할 테니까. -p, 33

진짜 세상은 인터넷 검색창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자기만의 눈과 귀를 열고 두 다리로 직접 걸어 들어가야만 알 수 있다. -p, 76

돌이켜보면 나는 내 앞의 시간을 '쓸모 있고 없고'로만 구분 지으며 살아왔던 것 같다. 나는 늘 목표가 있었고 시간은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프로세스로 채워졌다. 하지만 강물이 직선으로만 흐르지 않듯이 삶도 언제나 목표한 결말에 유용한 방식으로만 흘러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럴 때 마냥 좌절하지 않고 그저 삶 자체를 즐기는 연습도 필요한 것은 아닐까. -p, 99

역시 세상에는  영원히 간직하려는 집착을 버릴 때 저절로 갖게 되는 것들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p, 144

삶의 파도는 순서대로 오지 않는 모양이다. 비극이 꼭 비극만은 아니듯이 절망 속에도 희망의 씨앗이 늘 숨어 있지 않은가. 슬픔, 기쁨, 희망, 절망…… 그 모든 것은 늘 한꺼번에, 동시에 몰려온다. 하지만 어떤 파도에 올라탈 것인지는 오로지 자기만의 선택이다. -p, 153, 154

여행의 전반전에는 그저 나 자신을 시험하고 발전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이제 내가 꾸는 꿈의 방향은 달라졌다. 세상을 바꾸는 가장 명쾌한 모티프는 사랑이다. 사랑하기 시작하자 내가 밟은 땅들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p, 173, 174

누군가 내게 "여행까지 가서 일하느니 차라리 자금을 넉넉히 준비해서 떠나는 게 낫지 않겠나?"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내 생각은 반대다. ​수련여행을 통해 내가 꼭 깨뜨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조건이 갖춰져야만 떠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다. JC처럼 거의 모든 젊은이들은 여행 자금을 벌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낸다. '돈을 얼마나 모아야 떠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저마다 편차가 있지만, 거의 대부분 충분히 마련할수록 안전하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 봤을 때 그런 식이라면 3년, 5년, 아니 10년 뒤에도 못 떠날 공산이 크다. 나는 여행지에서 일하는 대가로 숙식을 제공받는 현재의 방식이야말로 과감히 떠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최소한의 교통비만으로도 출발이 가능하다. 일단 자기가 살던 익숙한 도시에서 한 발짝 벗어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 어디서나 써먹을 수 있는 한두 개의 특기나 취미가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재능을 나누는 대가로 여행을 지속하는 셈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현지인들이 구경만 하는 '그냥 여행자'보다는 '일하는 여행자'에게 더 마음의 문을 열어준다는 점이다. 함께 일하면서 흘린 땀이야말로 친구가 될 수 있는 가장 큰 마중물이기 때문이다. -p, 197, 198

​떠나면 자유로워진다는 말은 살던 곳에서의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제약 없이 이제껏 해보지 못한 다른 생각, 다른 고민에 뛰어들 기회를 얻는 것을 뜻한다. 진정한 여행은 현실과 맞닿아 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을 설레게 만드는 일, 그것이 여행이다. -p, 221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것, 그리고 없는 것에도 만족하는 것이 곧 자유다. 이런 자유야말로 최적화된 삶의 방식이다. -p, 296

내가 지난 2년 반 동안의 수련여행을 통해서 얻은 가장 중요한 깨달음도 바로 이것이다. 모든 규칙과 한계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해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규칙이 나에게도 똑같이 의미 있는 규칙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사회적 보편이라는 이름으로 너무나 쉽게 다른 사람의 행동규칙과 삶의 설계를 따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이 옳거나 합당하다고 여기는 것을 자식들에게 가르침으로써 그것이 기능하는 시스템을 후손들에게 물려준다. 후손들은 종종 그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맹목적으로 따른다. 그것은 불문율에 해당하며 그것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눈총을 받거나 단죄된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각기 다른 욕구, 애정, 습관, 취향을 갖고 있다. 어째서 우리가 똑같은 규칙을 따라야 한단 말인가. 내가 보기에 그것은 말이 안 된다. 나는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스스로 찾아내고 싶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여행자로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 자신의 한계를 넘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행복한 삶을 찾아 나설 것이고 결코 막다른 길에 도달하지 않을 것이다. 막다른 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용기와 믿음이 사라질 때만 나타난다. 반대로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지속적인 노력만이 내게 의미 있는 규칙과 삶의 방식을 찾아낼 수 있다. 커리어가 무슨 의미이고 소유가 무슨 의미인가. 다람쥐 쳇바퀴 또한 다람쥐들의 시각에서 보면 커리어를 쌓는 일이다. -p, 330,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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