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보트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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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굳이 기숙사에 들어가려는 거야? 통학하면 되잖아. 3년 동안은 절대로 이사하지 않을게. 약속할 수 있어. 그래, 그 구리히라라는 지역으로 이사를 가자.

내가 말을 하면 할수록 소코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 이미 결정했어.

뺨이 통통한 작은 얼굴이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었다.

― 왜?

나는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고 물었다. 지금까지 줄곧 둘이서 생활해 왔다. 소코가 바라는 대로 중학교에 다니는 3년 동안 이사를 가지 않고 이곳에서만 생활하고 있다.

― 특별한 이유는 없어. 어쨌든 이미 결정한 일이야.

소코는 완고했다.

― 이게 현실이야.

내 눈길을 피하며 소코가 말했다.

― 나는 현실을 살고 싶어. 엄마는 현실을 살고 있지 않아.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소코를, 마치 넋이 빠진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미안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괴로운 듯 소코가 말했다.

― 뭐가?

소코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울음을 참기 위해 코를 풀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엄마의 세계에서 계속 함께 살지 못해서. -p, 214, 215

 

 

 

 

 


 

 

 

 

 

 

 

도서관에 가면 자연스럽게 에쿠니 가오리의 책이 꽂혀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많은 책을 냈음에도 도서관 서가의 한 칸도 채 되지 않는 자리만을 차지하고 있는 책들을 보면서 그녀가 더 빨리 많은 책을 내주었으면.. 하며 아껴가며 읽었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에쿠니 가오리인만큼 그녀의 책은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선뜻 손이 가지 않던 책이 있었다. 바로 《하느님의 보트》. 그러고보니 아직 《마미야 형제》도 읽지 않았다. 《마미야 형제》는 고등학생 때 읽다가 중간에 반납해버린 기억이 있어서인지 선뜻 다시 읽을 마음이 생기지 않아서 걱정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보자면, 《하느님의 보트》의 노오란 책 표지가 왜인지 촌스러운 옛날 책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지금은 세련된 표지를 입은 개정판이 나왔지만), 꽤 오래된 책이라 에쿠니 가오리의 미숙한(?) 솜씨를 보게될까 걱정스런 마음도 있었다. (내가 뭐라고 이런 걱정을!) 

 

 

언젠간 읽겠지 하고 있었는데 알라딘 중고서점에 오빠와 같이 간 날, 에쿠니 가오리 책들이 꽂혀있는 서가에서 《하느님의 보트》를 손에 든 나를 보고 오빠는 "내가 이거 사줄게!" 라며 갑작스럽게 선물을 해주었다.

 

 

읽어야 할 책이 쌓여있음에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내 손에 들어온 이상 이걸 먼저 읽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역시 책을 만남에도 타이밍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말에 의하면 젊은 시절 한 남자와 '뼈가 녹아내리는 사랑'을 한 요코, 그 사랑의 결과 태어난 소코. 이 둘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1년쯤 머물며 이 도시 저 도시를 유랑하며 살고 있다. 요코는 사랑하는 남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고, 소코는 그런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어쩔 수 없이 엄마의 뜻에 따라 다닌다. (매번 전학을 다녀야 함에도 불구하고)

 

 

소코는 나와 참 많이 닮아있었다. 23살이나 나이를 먹었음에도 엄마 곁을 제대로 떠나 본 적이 없는 면이 나와 너무나 닮아있었다.

 

 

대학생이 되어 자취를 하는 애들을 보면서 부러워하면 엄마는 이런 말을 했다. "걔네들은 이제 엄마 곁에서 보내는 시간이 얼마 없는거야. 대학생 때 그렇게 떨어져 있다가 취직할거고, 결혼하잖아. 그치?" 그땐 정말 그 말에 동의하며 "맞아, 이제 엄마랑 살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5년이겠네." 라는 생각을 했는데 어느새 난 엄마 곁에서 떠나지 못하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있었다.

 

 

내가 없으면 엄마는 외로워서 슬퍼할거야. 라는 생각이 왜 내 머릿속에 박혀버린건지. 2-3일 떠나는 여행에도 벌벌떠는 모습이라니. 이러다가 '엄마 옆에서 출퇴근 할 수 있는 곳에 취직할거야!' 라거나 '결혼해도 엄마를 매일 볼 수 있는 곳에 살거야!' 라고 하는 건 아닐까......요즘 이런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하느님의 보트》에서 딱 만난 소코는 처음엔 나와 너무 닮은 모습에 안쓰럽더니 결국엔 독립을 이루어냈다. 처음엔 소코와 요코 둘 다 많이 힘들어했지만, 결국엔 둘 다 서로와 떨어져 지내는 일상에 적응을 해냈다.

 

 

덕분에 나도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엔 길어야 3년즈음 안에 엄마와 떨어져 살아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일이 닥쳤을 때 많이 미안해하지 않기를.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엄마한테도 읽어보라고 해야겠다. 엄만 요코에게 공감하기를.

 

 

 

+

 

또한, 역시나 말 하나 하나가 예쁘다. '가을은 자전거 페달이 가볍게 느껴지는 계절(p,117)' 이라니. 자전거를 타지는 못하지만 얼른 가을이 되어 산책하고 싶어지게 만들었다.

개정판은 번역가도 바뀌었으니, 그것도 다시 읽어봐야지.

 

 

 

 

 

상자 안에 들어갔다는 말은 엄마와 나만이 통하는 표현으로, 이미 지나간 일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즐겁고 기분 좋은 일도 지나가 버리면 돌아오지 않는다.

― 하지만 그건 슬픈 일은 아냐.

엄마는 화려한 꽃무늬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지나간 일은 절대로 바뀌지 않거든. 항상 그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거야. 지나간 일만이 확실한 우리 것이라고 생각해.

4년 전, 처음으로 친구가 생긴 마을에서 또다시 이사를 하는 것이 싫어 울면서 불평을 늘어놓았을 때의 일이다.

― 지나간 일은 모두 상자 안에 넣어 두면 되니까 절대로 사라질 염려가 없어. 얼마나 멋지니?

나는 가끔 그 상자를 상상한다. 어떤 모양으로 생긴, 어느 정도나 큰 상자일까? 뚜껑은 어떻게 생겼을까? 무슨 색깔일까? 아마 그 상자는 화려한 꽃무늬가 있을 것이다. 엄마의 스커트처럼. -p, 18, 19

 

 

화창한 일요일.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걸리는 도서관에서 책 세 권을 빌려 왔다. 모두 추리 소설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도서관을 이용해 본 적이 없었지만 한번 이용해 보고 나서 꽤 좋은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짐이 늘지 않는다.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제다. 나는 원래 짐이 많은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대학을 졸업할 무렵부터 그런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 물건은 소유하는 것보다 버리는 쪽이 훨씬 편하다.

― 그건 생활에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는 뜻 아닐까?

모모이 선생은 그런 식으로 나를 꾸짖었다.

― 언제까지나 자유롭고 싶다는 뜻 아냐?

사실, 무엇인가를 소유하는 것 때문에 사람은 한곳에 조금씩 얽매이게 된다. -p, 49

 

 

봄은 싫지만 봄바람은 나쁘지 않다. 나는 길을 돌아서 선로를 따라 자갈길을 걷는다. 산책이 좋은 점은 쉽게 고독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p, 51

 

 

10월이 되면 바람이 서늘해진다. 끈질겼던 마지막 더위도 사라지고 담배와 커피가 훨씬 더 맛있게 느껴진다.

이곳에서도 나는 자전거를 이용해서 직장에 다니고 있다. 가을은 자전거 페달이 가볍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p, 117

 

 

옛날, 엄마는 뼈가 녹아 버릴 듯한 사랑을 했다. 뼈가 녹아 버릴 듯한 사랑이 어떤 것이든, 그 결과 내가 태어난 것이다.

― 너도 언젠가 그런 경험을 하면 좋을 텐데.

엄마는 내게 몇 번이나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 물론, 나와 똑같은 경험을 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그와 비슷한 경험.

나는 손톱 정리 도구 세트를 가방에 넣고 만족스런 표정으로 두 손을 바라본다. 손톱 하나하나가 모두 윤기 있고, 만지면 매끄러워서 기분이 좋다.

― 똑같은 경험은 할 수 없는 거야?

내가 묻자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 당연하지. 아빠는 이 세상에 한 명밖에 없으니까. -p, 131

 

 

한번 만나면, 사람은 사람을 잃지 않는다.

예를 들면, 그 사람과 함께 있을 수는 없더라도 그 사람이 이곳에 있다면, 하는 상상은 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이곳에 있다면 무슨 말을 할까, 그 사람이 이곳에 있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그것만으로 나는 많은 위안을 얻었다. 그것만으로 나는 용기를 내어 혼자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p, 138

 

 

엄마가 아빠를 처음 만났을 때, 엄마는 스물세 살이었고 아빠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초등학생 때 당신을 만났다면 나는 당신의 어깨에 상처가 생기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 거야.

중학생 때 만났다면 함께 먼 곳으로 가출했을 거야.

고등학생 때 만났다면 매일 당신을 위해 기타를 연주했을 거야.

만약 대학생 때 만났다면 당신과 나는 절대로 이곳에 있지 않을 거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의 어깨에는 싸움 때문에 생긴 작은 상처가 있고, 중학생 시절의 엄마는 어느 날 가출을 했다. 고등학생 시절의 엄마는 '코튼캔디색'의 헤어스타일을 하고 매일 혼자 춤을 추러 다녔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는 지금 이곳에 있다. -p, 154, 155

 

 

말은 위험한 것이라고 엄마는 말한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았던 마음의 한 부분이 말에 감동을 받는다면, 그것은 '끝장'을 의미한다고 한다. -p, 207

 

 

― 왜 굳이 기숙사에 들어가려는 거야? 통학하면 되잖아. 3년 동안은 절대로 이사하지 않을게. 약속할 수 있어. 그래, 그 구리히라라는 지역으로 이사를 가자.

내가 말을 하면 할수록 소코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 이미 결정했어.

뺨이 통통한 작은 얼굴이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었다.

― 왜?

나는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고 물었다. 지금까지 줄곧 둘이서 생활해 왔다. 소코가 바라는 대로 중학교에 다니는 3년 동안 이사를 가지 않고 이곳에서만 생활하고 있다.

― 특별한 이유는 없어. 어쨌든 이미 결정한 일이야.

소코는 완고했다.

― 이게 현실이야.

내 눈길을 피하며 소코가 말했다.

― 나는 현실을 살고 싶어. 엄마는 현실을 살고 있지 않아.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소코를, 마치 넋이 빠진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미안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괴로운 듯 소코가 말했다.

― 뭐가?

소코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울음을 참기 위해 코를 풀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엄마의 세계에서 계속 함께 살지 못해서. -p, 214, 215

 

 

"굳이 기숙사에 들어가야 한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해."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얼굴로, 나는 약간 놀라 ― 하지만 사실은 전혀 놀라지 않았던 듯한 느낌도 들지만, 어쨌든 ― '정말?'이라고 물었다. 엄마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시험에 합격했으면 좋겠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했다. 요즘 줄곧 반항적인 대답을 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고마워."

간신히 그렇게 말했다. 엄마는 조용히 미소 지었지만 나는 기쁨보다는 쓸쓸함으로 가슴이 가득 찼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슬픈 일이다. 엄마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도, 엄마가 주장을 굽힌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엄마가 슬퍼할 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내가 그런 결심을 한 것 역시 처음이다. 틀림없이 후회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이미 후회하기 시작했다. 기숙사. 엄마와 헤어져 각자의 생활을. 무엇 때문에? 엄마가 허락한 이상, 이번에는 내가 나 자신을 원망할 차례다. 기숙사. 엄마와 헤어져 각자의 생활을. 어째서 굳이? -p,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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