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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여자는 위험하다 - 그리고 강하다
슈테판 볼만 지음, 김세나 옮김 / 이봄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평소에도 생각하는 걸 굉장히 좋아해서 남자친구는 나한테 "세은이는 너무 생각이 많아.", 혹은 "무슨 생각하고 있어?" 를 습관처럼 내뱉는다. 이 책 《생각하는 여자는 위험하다》에 의한다면 내 남자친구는 '위험한 여자'를 여자친구로 두고 있다는건데, 난 생각만 많을 뿐 생각을 행동으로 연결시키는 것까진 잘 해내지 못하니 내 남자친구에겐 참 다행이다.
《생각하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제목 그대로 생각하는 여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일 수도 있고, 사회 문제에 대한 생각일 수도 있고, 혹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생각일 수도 있는 다양한 생각들. 하지만 이 생각이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행동이 뒤따른다는 점이 나와 다른 점이다. 수전 손택, 마거릿 대처, 시몬 드 보부아르, 마리 퀴리, 제인 구달 등 즉, 작가, 학자, 철학자, 정치인, 저널리스트 등 다양한 분야의 여자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스무 명이 넘는 이 여자들은 나와 같은 여자지만 존경심을 갖지 않을래야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면, 여성 대통령이 나올 정도로 지금은 여자에게 많은 권리를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교육을 받지도 못하고, 심지어 낙태를 하면 사형에 처해지는 어마어마한 시대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남자보다 더 강인한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멋지게 꾸려나갔다.
물론 요즘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고, 심지어 취업을 하는 데에 있어서도 불리한 경우도 많다고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여자들의 위신을 땅에 떨어뜨리는 건 주어진 상황이 아니라 '난 여자니까 어쩔 수 없어.' 라는 비겁한 생각 탓이 아닐까? 나도 가끔 지금 도전하고 있는 모든 일을 내려놓고 '시집이나 잘 가면 되는거지 뭐.' 라는 생각을 한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다만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날 포기하는 듯 한 생각에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 건 사실이다.
모든 여자들이 한 번씩 읽어보면서, 세상에 얼마나 멋진 여자들이 많은지 깨닫고 또 깨닫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사진들을 보면서 느낀거지만 자신의 삶을 멋지게 살아가는 여자들은 분위기부터가 다르다.
특히 첫 번째 사진의 '수전 손택'. 난 딱 저런 분위기를 가진 여자가 되고 싶다. 카리스마 있으면서 여유와 따뜻함을 가지고 있는, 그리고 노년에는 맨 마지막 사진에서 보부아르가 앉아있는 공간처럼 소박하지만 멋지게 꾸며진 공간에서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낸다면 얼마나 멋진 삶일까.
"차도르를 입으면 어떻게 수영을 하죠?"
1979년 9월 오리아나 팔라치는 아야톨라 호메이니에게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졌다.
모하메드 레자 팔레비의 독재왕정을 '이란혁명'으로 몰아낸 직후, 그녀는 맨발에 차도르로 온몸을 가린 채로 호메이니를 만날 수 있었다. 호메이니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지 열흘 만에 성사된 만남이었다. 호메이니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우리 문제에 끼어들지 마시오! 당신이 무슬림 옷을 좋아하지 않으면 입을 필요는 없소. 무슬림 의상은 그러니까, 훌륭하고 정숙한 젊은 여성을 위한 거요."
팔라치는 호메이니가 이런 말을 두 번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녀는 곧바로 공격에 나섰다. "매우 친절하신 말씀입니다. 이맘. 그리고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말인데요, 전 이 멍청한 중세시대 천을 지금 당장 벗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행동으로 옮겼고 호메이니는 모욕당한 것처럼 반응했다. 그는 민첩하게―물론 팔라치는 이 민첩성을 예상하지 못했겠지만―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사라졌다. -p, 25~28
어린아이 때부터 아룬다티 로이는, 그럴듯한 커리어를 쌓기보다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론 처음에는 자신의 재능에 의구심을 갖긴 했지만 말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처음 시작한 것에서 나도 온전히 싹을 틔운다. 『작은 것들의 신』을 시작할 때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 나는 한 번도 내가 처한 상황을 괴로워하느라 시간을 허비한 적이 없다. 내 비밀은, 희생자가 되기를 거부하면서 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p, 72, 73
반평생을 부당한 권력으로부터 위협받은 아웅 산 수 치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격정에 휩싸여 이렇게 말했다.
"네 품에 자유가 그냥 안겨질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해방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혁명은, 각자가 그것을 위해 기여할 수 있음을 인식할 경우에만 성공할 것이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기본적으로 용기는 세 가지 분야에서 입증되어야 한다. 보는 용기, 느끼는 용기, 행동하는 용기가 바로 그것이다."
2010 년 덴마크 감독, 앤 자이리더 본은 아웅 산 수 치에 대한 다큐멘터리 <두려움 없는 여인>을 만들었다. 영화 제목은 수 치가 한 유명한 말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다. "부패하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권력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은 권력을 휘두르는 자를 부패시키고, 권력의 채찍에 대한 두려움은 권력에 굴복하는 자를 부패시킨다."
영화를 본 한 버마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녀에게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녀는 우리 버마 사람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두려움을 숨기고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의무감에서 그녀는 자신의 맡은 바 소임을 다했다. -p, 102
그녀는 연설하기를 좋아했고,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대처의 부모는 그녀를 뒷받침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게끔 교육했다. 훗날 그녀는 자신을 가르친 아버지의 말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네 친구들이 그렇게 한다고 너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네가 어떤 일을 한다면 그것이 최선이기 때문이어야 해. 대중을 따르지 말고, 네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네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을 결정하고, 필요하다면 대중 앞에 서거라. 그러나 절대로 단순하게 생각해서 그들과 손을 잡지는 말아라."
아버지에게 배운 것들은 그녀의 인격을 형성했고, 이를 통해 그녀는 우리가 알고 있는 마거릿 대처가 되었다. -p, 134, 135
로마의 밤거리를 함께 산책하며 파울 레는 곧바로 이 '젊은 러시아 여자(말비다 주변 사람들은 루 살로메를 이렇게 부르곤 했다)'에게 빠졌다. 파울 레는 당시 서른일곱 살이던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친구였다. 파울 레는 니체에게 이 특별한 젊은 여성과의 만남에 대해 짧지만 열광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소녀 같은, 순진무구한 성격을 가졌으면서도 에너지가 넘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현명한 사람입니다."
그러자 니체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 러시아 여성에게 내 인사를 전해줘요.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면 말이오. 난 그런 부류의 영혼을 열망하고 있소." -p, 161
"나는 다른 사람을 따라 살 수도 없고, 누군가의 본보기가 될 수도 없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을 꾸려나갈 것이고, 그것만은 내가 확실하게 할 수 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그렇게 걸어가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세상을 이끌고 있는 이른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한낱 분필로 그려놓은 하얀 선이 아닌지 확인해보고 싶어한다."
관습을 거부하는 삶의 태도와 세계관, 스스로 인생을 꾸려나가는 능력으로 루 살로메는 '근대 여성의 아이콘'이 되어갔다. -p, 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