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래, 어쩌면 조금 느릴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자네가 한 지적은 백 퍼센트 옳아……. 그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만사는 그 자체로 놔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일들이 일어나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놔둬야 하지. 왜냐하면 만사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니까. 거의 항상 그래.」 -p, 317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소설이 영화화 되어 나왔을 때 제일 먼저 하는 고민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볼까, 영화를 보고 책을 읽을까..'

 

책을 읽고 영화를 봤을 땐 책에서 다루어진 내용을 영화에서는 어떻게 표현했나 보는 재미와 영화를 보면서 책 내용에서 삽인되거나 삭제된 내용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을 땐 책 등장인물들이 영화배우와 겹치면서 더 생생하게 상상하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난 주로 책을 먼저 읽는 편인데 그러다보니 '꼭 책을 다 읽고 영화를 볼거야!' 라고 억지를 부리다가 놓친 영화도 여럿이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라는 이 책은 내가 직접 구매한 책이 아니라 오래 전에 지인한테 선물받은 것이온데 제목만 보고 '재밌겠네?' 하고 내팽겨쳐뒀다가 최근에 여기저기서 이 영화에 대한 기사가 조금씩 보이길래 관심이 생겨 꺼내보았다. (다행히 이번엔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책을 다 읽어서 영화를 볼 수 있겠다!)

 

 

 

 







 

 

 

 

남들은 여름이 되면 식욕이 사라진다는데 난 어째 그 어느때보다 식욕이 왕성해졌다. 혼자 있을 땐 군것질거리 빼고는 잘 안먹는 나였는데 이젠 혼자서도 라면도 끓여먹고 한 상 가득 차려 밥 한공기를 뚝딱한다. 운동화 빨래방에 맡겨놓은 내 신발도 찾으러 가야하고(저번주 목요일에 찾았어야 했는데..) 피부과도 가야하고(저저번주 월요일에 갔어야 했는데..) 초로 산책도 시켜주어야 하는데 (이 소리는 한 5년전부터 한 듯 하다) 엉덩이는 쇼파에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가 앉는다. 분명 어제 저녁엔 '이 책을 들고 카페에 가서 책을 읽다 와야지' 했는데 한 100페이지도 안남은 이 책을 가져가 읽자니 '카페까지 가긴 오버인 것 같아' 하며 집에서 후딱 읽어버렸다.

 

 

 

 




 

 

 

 

 

우리가 <꽃보다 할배>나 <꽃보다 누나>를 보면서 단지 여행지에 감탄하는 것 뿐만이 아닌 세상을 오래 사신 그 분들의 현명함과 지혜를 배우듯이 이 책에서도 100세 할아버지인 '알란 칼손'에게 참 많은 점을 배워간다. 지혜와 현명함보다는 세상을 어떻게 위트있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는 점이 함정이지만.. 마오 쩌둥, 해리 트루먼, 김정일, 스탈린 등 세계 역사에서, 아니 세계사 시험을 보면 100% 등장한다는 이 인물들과 엮여가며 알란 칼손은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역사를 자기 멋대로 뒤바꾸어 나간다. 소설에 의하면 지금 우리가 배우고 있는 세계사의 모든 중요한 순간엔 알란 카손의 위트가 곁들여져 있었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100세 노인도 자신의 100세 생일파티를 앞두고 '양로원에서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다 실컷 돌아다니는 게 더 재밌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여행을 떠나는 마당에 이 할아버지의 5분의 1정도를 살았을 뿐인 나는 무엇이 그리 무섭다고 징징대고 있는건지, 아마 알란 칼손이었다면 나에게 '일단 독한 술 한잔 하고 생각하지.' 라고 말하려나?

 

이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을 영화 속에서 누가 연기를 할지, 어떻게 연기를 할지 정말 궁금하다. 심지어 김일성이랑 김정일도 등장하려나? (소설에선 중요한 역할을 했으니 영화에서 빠지면 정말 섭섭할 것 같다.) 소설보다 괜찮은 영화를 본 적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기대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알란의 인생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접한 알란의 어머니가 했던 말이었다. 그 메시지가 소년의 영혼에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렇게 정착한 뒤에는 영원히 남았다.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란다.>

이 말에 내포된 의미 중 하나는 절대로 불평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적어도 타당한 이유 없이는 절대로 그러지 않는다는 거였다. -p, 47

 

 

남자가 계산을 잘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잠수함 함장의 솜씨가 정확하지 못했던 것일까? 어쨌든 전장 97미터에 달하는 잠수함은 알란과 그의 인도자와 너무 가까운 지점에서 얼음을 깨고 출현했다. 그 바람에 두 사람은 뒤쪽으로 벌렁 자빠졌고, 하마터면 둘 다 차디찬 바닷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 다행히도 구출되어 훈훈한 잠수함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일 때문에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쓸데없다는 거예요. 내가 하루 종일 머리를 싸매고 생각해 본댔자,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어떻게 알아낼 수 있겠어요?」 알란이 말했다. -p, 272

 

 

「그래, 어쩌면 조금 느릴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자네가 한 지적은 백 퍼센트 옳아……. 그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만사는 그 자체로 놔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일들이 일어나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놔둬야 하지. 왜냐하면 만사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니까. 거의 항상 그래.」 -p, 317

 

 

「뭐? 정말로 당신이 히말라야 산맥을 넘으셨소? 백 살이나 된 양반이?」

「아니, 내가 미쳤소? 이 나이에 히말라야를 넘게? 내가 항상 이렇게 백 살이었던 건 아니야. 백 살이 된 건 아주 최근의 일이지.」

「아, 그래서요?」

「우리 모두는 자라나고 또 늙어 가는 법이지.」 알란은 철학자처럼 말했다. 「어렸을 때는 자기가 늙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해……. 자, 그 어린 정일이를 예로 들어 보자고. 내 무릎 위에 앉아서 엉엉 울어 대던 그 불쌍한 녀석이 이제는 자라서 일국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p, 441, 442

 

 

그러고 보니 이듬해 봄에는 벌써 일흔여덟 살이었다. 그는 그 많은 위험한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늙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알다시피 아직도 얼마간 더 늙어 갈 거였다.

세월은 평온하게 흘러갔다. 알란은 세상의 흐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p, 488

 

 

그는 이제 아흔아홉 살 하고도 8개월을 더 먹었다. 마치 자신의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알리스 원장이 그를 완전히 부숴 버린 것이다.

이제는 인생이 지겨워졌다. 왜냐하면 인생이 그를 지겨워하고 있는 것 같았으므로. 그리고 그는 남이 싫다는데 굳이 자신을 강요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p, 494

 

 

날들은 주들이 되고, 주들은 달들이 되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자 알란은 그의 친구 헤르베르트가 50년 전에 했던 것만큼이나 죽음을 갈망했다. 헤르베르트의 간절한 소망은 그의 생각이 바뀌었을 때에야 이루어졌다. 그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최악의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양로원 직원들이 알란의 백회 생일 기념 파티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그는 우리 속의 동물이 되어, 선물이며 그 멍청한 축가들이며 케이크로 목구멍까지 채워지리라. 자기는 아무것도 요구한 게 없는데도!

그리고 이제 죽을 수 있는 시간은 단 하룻밤밖에 남지 않았다. -p, 496

 

 

* 무엇보다 이 소설을 쓴 작가 요나스 요나손에 대해 말을 안 할 수가 없다.

 

15년간 기자생활을 한 후 미디어 회사를 설립해서 직원 1백 명에 이르는 성공적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건강이 안좋아졌다는 의사 말을 듣고 20년간 몸 담아 온 회사를 매각한 후 처음으로 쓴 소설인 이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이렇게 대박을 터뜨리다니. 물론 책을 읽어보니 대박이 날 만하다는 건 인정. 나도 이렇게 글 솜씨가 좋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결론은 내 넋두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