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자매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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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겉으로 표현하는 재주가 발달하지 않았으니, 그중의 일부를 언니에게 살짝 얘기해 본다. 그것을 편집하고 다시 써 주지 않으면, 내 많은 생각은 내가 죽을 때 나와 함께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사치라는 생각도 한다.

 

가끔, 책도 쓰지 않고 텔레비전에도 출연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자신이 믿는 것과 해 온 일을 말하지 않은 채 죽어 간 위대한 사람들을 생각한다. 내면이 아름다운 호수처럼 맑고,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갈 듯 잔잔하고 우아한 죽음. 살아 있는 동안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던 만큼 고요하게 하늘에 안긴다. 자글자글한 주름과 생채기투성이 손도, 지치고 늘어진 육체도 아름답게 사라진다. 마치 아름답게 메마른 식물처럼, 끈적임을 조금도 남기지 않는다.

 

언젠가, 바깥 세계와 안쪽 세계가 뒤바뀌어 쓰윽 사라지는 것처럼, 그렇게 사라지고 싶다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 아름다운 물을 안쪽에 모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씩이라도, 소중하게. -p, 67

 

 

 

 



 

 

 

소설, 시, 에세이 등과 같은 문학은 각 나라마다 가지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본문학 특유의 잔잔하고 소소한 분위기를 좋아라합니다만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은 처음 읽어보았어요. 이름이 참 예뻐요. 요시모토 바나나. 바나나 바나나.

 

 

 






 

 

 

제목 그대로 '도토리 자매'에 관한 소설입니다.

책 소개의 도움을 받아보니, 외로운 사람들 모두를 위한 '함께 이야기하기'에 관한 소설이라고 하네요. 어쩜. 저는 책을 한 줄로 요약하는 게 제일 어려워요.

 

 

'누구에게든 메일을 보내고 싶은데, 아는 사람에게는 보내고 싶지 않을 때 마침 딱 좋은 존재'라는 콘셉트로 둘이 시작한 일이었다. -p, 8

어떤 내용이든 도토리 자매에게 글을 보내면, 그 글에 대해 도토리 자매가 답장을 보내줍니다.

글재주가 많은 언니는 답장을 쓰고, 동생은 답장을 어떻게 쓸지 아이디어를 내놓고, 잡다한 사무를 처리하는 잔잔한 생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제가 바라는 생활과 어찌나 닮아있는지.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면 좋겠다 하며 부러워했지요.







 

 

 

뜬금없이 책 중간에 있었던 사진입니다. 책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생각해보았지만, 그냥 무심코 넘겨버렸는데 포스팅을 하면서 사진을 다시 한 번 보니

사진 또한 고독하지만 잔잔하여요.

 

 

 




 

 

 

 

 

이건 배추김치, 이건 물김치, 이쪽은 미나리나물, 같이 무친 건 오징어 회야.

그렇게 만드는 법까지 몸짓 손짓을 곁들여 가며 가르쳐 주는 그 사람을 보면서, 이런 사람 일본에는 좀처럼 없지,

한류 드라마가 유행하는 이유를 알겠군. 그렇게 정말 수긍이 가더라.

 

그 사람은 내 욘 사마이자 원빈이야.

 

그럼 나는 최지우라고 해도 되겠지, 외모도 포함해서 말이야.(하하). -p, 97

 

 

정말정말 귀여웠던 한 장면.

한국으로 한국계 남자친구와 여행을 간 언니가 동생에게 보낸 메세지 중 일부였어요. 일본 문학에 한국 연예인들의 이름이 언급되어 신기해 찍어두었다가

남자친구한테 '이것봐!!' 하며 보내주었더니. '요시모토 바나나는 한국을 좋아한대.' 라며 좋은 정보를 알려주어요.

 

요시모토 바나나가 한국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가 여기 있었네요. 기분이 좋아요.

 

 

하고 싶은 말을 내뱉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지요. 일단 내 입에서 나간 말은 내가 주인이 아니니, 어디서든 떠돌거야. 라는 생각을 하고 말을 조심하려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전 그때그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두었다가 일기장에 옮겨둔답니다. 그런데 이게 혼잣말을 하는 수준이라 가끔은 개운하지 않을 경우가 있어요.

우리에게도 '도토리 자매'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예전에 읽었던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 라는 책이 생각나네요. 이 책에서는 '전화'를 통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런 일을 하는 주인공이 나왔지요.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 리뷰는 여기 ☞ http://blog.naver.com/se_eun92/90186135837 

 

요시모토 바나나의 첫 작품이 좋은 인상을 남겨주어 다음에 읽을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도 큰 기대가 됩니다 :)

 

 

 

아이들의 어린 시절은 아주 잠깐인데, 어느 가정에서나 비슷한 대화가 오간다. 부모 자식 사이의 대화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마치 남자와 여자가 침대 속에서 나누는 대화 같군, 생각하다 퍼뜩 깨달았다.

 

모두들 부모가 그리운 것이다. 그래서 연애에도 그 그리운 마음을 끌어들인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도 로맨스를 추구하는 것은, 나이가 들어 가면서 부모가 그리운 마음도 더 절실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류는 정말 어른스럽고 쿨한 사랑 따위는 절대 할 수 없다. -p, 16, 17

 

맞지 않는 곳에서 조금씩 마음 안의 것을 깎아 내다 보면 사람은 병이 드는 거로구나. 그렇게 깨닫고 나서는 인간의 강함과 약함에 놀랐다.

 

이모와 이모부가 나를 심하게 부린 것도 학대를 한 것도 아니고, 또 우리 사이에 심한 알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멍하게 마음을 닫아 갔을 뿐이다. 그러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몸 상태가 이렇게 심각해지다니, 믿을 수가 없다.

 

사람은 그렇게 알기 쉽게 생겼고, 밥이 아닌 것도 날마다 먹고 산다.

 

분위기나 사고방식이나, 그런 것까지도. -p, 33, 34

 

이렇게 두서없는 답장을 보내다 보면 상대 쪽의 답장도 점차 두서없어진다. 외면하는 것도 아니고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아닌, 그 사람들의 생활에 부족한 두서없는 대화를 메울 뿐인 역할.

 

다들 두서없이 부담 없는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혼자 살기에 그럴 수 없거나, 가족의 생활시간대가 저마다 다르거나, 의미 있는 얘기만 하려다 지쳤거나 그런 거다. 사람들은 두서없는 대화가 사람의 삶을 얼마나 지지해 주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다. -p, 49, 50

 

나는 좀처럼 연애를 하지 않고, 언니는 수시로 연애를 한다.

 

지금까지 언니 애인을 만난 적은 몇 번밖에 없었다. 다들 얼굴은 각지고 별로여도 체격은 남자답고 좋은데 성격은 약간 섬세한, 그런 사람들이었다.

 

“너무너무 좋아서, 얘기를 한 마디도 할 수 없을 정도였어.”

언니가 말했다.

“언니는 언제나 그렇게 말하잖아. 지금은 그나마 괜찮지만, 서른다섯 넘으면 그렇게 사는 거 그만두자. 인기도 점점 없어질 텐데, 괴롭기만 할지도 모르잖아. 우리에게 오는 그런 메일 지겹도록 봤잖아.”

“아니, 난 계속할 거야.”

언니는 말했다.

“물론 속도야 떨어지겠지만, 아무튼 꾸준히 계속할 거야. 아이도 낳지 않을 거니까. 그러면 쉰다섯 살까지도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

 

이거 집필 얘기 아니지? 하물며 운동 얘기도 아니고?

나는 생각했다.

 

“하기야 좋아하는 건 계속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지.”

나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결혼에는 관심 없어. 연애가 시작될 때를 좋아할 뿐이라고. 그런 때는 굳이 뭘 하지 않아도 행복한걸 뭐. 숨만 쉬고 있어도 즐겁고.”

언니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리고 말이지, 난 이 추억을 전부 갖고 무덤으로 가는 게 꿈이야. 노후에는 지금까지 만난 남자들 하나하나를 떠올리면서 헤롱헤롱 지내고 싶어. 꼭 그럴 거야!”

 

그러고는 욕실로 가 버렸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오늘 일을 곱씹고 있으리라. 욕실에 있는 시간이 유난히 길어지는 것도 연애하는 언니의 특징이다. -p, 53, 54

 

나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겉으로 표현하는 재주가 발달하지 않았으니, 그중의 일부를 언니에게 살짝 얘기해 본다. 그것을 편집하고 다시 써 주지 않으면, 내 많은 생각은 내가 죽을 때 나와 함께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사치라는 생각도 한다.

 

가끔, 책도 쓰지 않고 텔레비전에도 출연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자신이 믿는 것과 해 온 일을 말하지 않은 채 죽어 간 위대한 사람들을 생각한다. 내면이 아름다운 호수처럼 맑고,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갈 듯 잔잔하고 우아한 죽음. 살아 있는 동안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던 만큼 고요하게 하늘에 안긴다. 자글자글한 주름과 생채기투성이 손도, 지치고 늘어진 육체도 아름답게 사라진다. 마치 아름답게 메마른 식물처럼, 끈적임을 조금도 남기지 않는다.

 

언젠가, 바깥 세계와 안쪽 세계가 뒤바뀌어 쓰윽 사라지는 것처럼, 그렇게 사라지고 싶다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 아름다운 물을 안쪽에 모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씩이라도, 소중하게. -p, 67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마치 한군데에서 빙글빙글 맴도는 것처럼 보이지만, 계절은 돌고, 상황은 변하고, 우리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조그만 방, 커다란 침대에 ‘곰돌이 학교’ 곰돌이들처럼 함께 새근새근 잠든 둘의 모습을, 가슴속 깊고 깊은 곳 어딘가에 있을 어린 시절 그대로의 모습을 소중하게 안고서. -p, 116

 

나는 그에게 안겼다. 절망적이었다. 지금 이렇게 확실하게 여기 있어도, 앞날이 없다.

언니 기분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구나, 줄곧 함께 있을 수 없는 사람과 있는 것은 중독 같은 거구나.

마법이 풀리지 않은 채 헤어진다는 것은 이 얼마나 감미로운 일인지.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다. 다만 가장 좋아할 수 있는 방법이 이것이다. -p, 118

 

즐거우니까 살아가자는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다만 몸이, 본능이 살아가자고 하니까, 오직 살아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아름다운 저녁에 따스한 공기에 푸근히 잠겨 있으면, 쾌감을 느낀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처럼, 쾌감과 불쾌감이 다가왔다가는 사라진다. 집에 틀어박히는 시기가 있고 그다음에는 밖으로 나가고 싶은 시기가 반드시 온다. 그 반복은 파도와 같아서, 하염없이 바라만 보거나 그 한가운데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어도, 절대 싫증 나지 않는다. 그것이 살아 있음의 유일한 기쁨이다.

 

“나도 그래.”

언니가 말했다.

“꿈이라는 걸 알아도, 나는 오늘 소주를 마시고 맛있는 밥을 먹으려고 할 거야.”

1분 1초라도 오래. 그것이 1년이든 2년이든 아무튼 한 걸음 한 걸음.

잠든 아기를 뉘이듯 그릇들을 살며시 차에 싣고 주위에 담요와 쿠션을 놓으면서 언니는 싱글싱글 말했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 좋은 곳에 와 있네. 앞으로도 좋은 곳에 가고 싶다.”

그거 추상적으로 하는 말? 아니면 지금 여기를 말하는 걸까?

그렇게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그만두는 것이 낭만이며 저금이고, 무엇보다 멋이었다.

그것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 내 생명을 위한 영양분이었다. -p, 129,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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