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로 산다는 것 - 잃어버리는 많은 것들 그래도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제니퍼 시니어 지음, 이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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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른이 어린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 함께 있음으로써 어른은 이 아이들로부터, 회색빛 플란넬 양복 세상의 절박한 규범을 벗어던지고 그저 아이들이 하는 것과 똑같이 할 수 있는 허가증을 발급받는다는 말이었다. 어떤 아빠는 아이들 덕분에 15년 동안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던 동물원에 갔다고 했고, 또 어떤 아빠는 “바깥에서 치아를 환하게 다 드러낸 채 눈빛을 반짝이며 뛰어다니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이 무척 즐겁더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것들보다 훨씬 더 명료한 표현으로 그 경험을 말한 아빠도 있었다.


“내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바보처럼, 그러니까 어린아이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기분 좋더라고요.”


흔히 유아들의 세상에서 만나는 그런 초월적인 기쁨은 전혀 초월적이지 않은 것을 대상으로 한다. 오히려 우리가 한없이 추락하는 것을 대상으로 한다. 이런 기쁨들은 우리에게 예의범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고, 금지된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해 주며, 규칙과 규범에 순종하는 자의식을 구석에 내팽개칠 수 있도록 해 주는 허가증을 준다. -p, 170, 171







예전엔 이런 책 하면 저와는 완전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쳐다보지도 않았었는데, 이제 슬슬 주위에서 결혼하는 언니, 오빠, 친구들이 생기고 있는 지금은 이런 책을 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읽게 되네요.


저는 23살이지만, 아직도 제 동생은 한창 사춘기인 19살이라 집에서는 부모님과 동생간의 다툼이 끊이질 않아요. 바로 이틀 전에도 대판해서 지금도 냉전 중이지요. 동생의 입장이 이해가 가면서도 부모님의 입장이 이해가 가기도 하고. 이럴 때면 진짜 누구 편을 들어야 할 지 모르겠어요.


동생이랑 부모님이 싸울 때면, 진짜 가끔!!!! ‘쟤가 내 아들이었으면 난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해요. 만약 저였으면 말 안 듣는 아들을 보고 울어버렸을지도..









부모가 된다는 건, 이처럼 정말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지요. 이 책을 보니 그걸 더 느낄 수 있었어요. 아이가 태어나서 갓난 아이 일 때, 유아기 일 때, 사춘기 일 때 부모가 겪게 되는 어려운 일들 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심각할 정도로 교육을 시키는 학부모들의 심리까지. 또한 배우자와 육아를 분담하는 데에서 생기는 이런저런 스트레스 까지. 아이가 생기게 되면 받는 스트레스가 아이가 없을 때보다 더 증가한다고 해요.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아이들을 통해 행복을 느끼곤 하는. 이런 이중적인 면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답니다.





읽다보니 오타도 찾았어요, 이럴 때 진짜 희열을 느껴요...


예비 부모님들, 아니면 현재 아이들을 키우면서 힘들다고 느끼시는 분들, 혹은 저처럼 대학생인 아이들까지(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어요.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고 저희 부모님에게 해드리고 싶었던 말은 ‘우리에게 너무 많은 기대는 하지 말아주세요.’ 였답니다.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하는 것 보다 부모님 스스로 자신을 위하면서, 아이들로부터는 별개의 행복을 느끼는 게 옳지 않을까요?



사실상 부모와 어린아이는 각자 전혀 다른 두 개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부모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하지만 어린아이는 현재에 닻을 내리고 있어서 현재를 훨씬 더 힘들게 보내고 있다. 이런 차이로 어른들은 아이들 때문에 속이 상한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들은, 지금까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치우라는 말을 부모에게 들을 때 나중에 언젠가 그 장난감을 가지고 다시 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트에서 감자칩 과자를 한 봉지만 사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도, 나중에 다시 감자칩을 한 봉지 더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인생이 충분하게 길다는 사실을 그다지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굳이 그 과자를 한 봉지 더 가지겠다고 떼를 쓴다. 이 아이들은 지금 당장 그것들을 원한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이라는 시간 속에서만 살아가기 때문이다. -p, 46, 47


이 교대 근무라는 것은 어린아이들을 키우면서 결혼생활을 순탄하게 유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 경우에 맞벌이 부부는 각자가 배우자 없이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배우자의 도움을 받지도 못한 채로 아이들을 떼어 놓고 직장으로 발길을 옮길 때는 더욱 그렇다. 맞벌이 부부 경우에는 각자가 해야 할 일을 조정하는 일에서부터 벌써 힘이 빠진다. 비번이 겹치는 날에는 누가 좀 더 쉬운 일을 맡고 누가 낮잠을 자거나 자전거를 탈 여유를 누릴지를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가 벌어진다. 두 사람 다 서로 자기가 더 힘든 일을 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 앤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한 가족이면서도 두 개의 다른 세계관으로 두 개의 다른 의견을 가지고서 두 개의 다른 삶을 살아간답니다. 난 이런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여러 가지 어려운 부분들도 생각하죠. 그런데 남편은 늘 나처럼 생각하지는 않아요.”


아마 클린트도 다른 누군가에게 앤지와 똑같은 하소연을 할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어린아이를 키우는 많은 젊은 부부들이 각자 분리된 별개의 삶을 따로 살아간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p, 87, 88


어린아이들은 사람을 녹초로 만들 수 있고, 짜증이 날 정도로 성가실 수 있으며, 자기 부모의 직업과 결혼생활의 형태와 경로를 부숴 버리거나 완전히 새로 쓰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또한 동시에 기쁨도 가져다준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린아이를 가리켜 ‘기쁨 덩어리’라고 한다.) 그러나 이유를 살펴보는 것도 가치가 있다. 아이들이 말랑말랑하고 달콤하거나 완벽함의 냄새가 나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이들은 시간에 벌레구멍을 만들어서 엄마와 아빠를 과거로 시간여행을 보내 어린 시절 이후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느낌과 감각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어른 세계의 지저분한 비밀 그리고 일상과 관습과 규범을 향한 지칠 줄 모르는 집착도 어린아이 앞에서는 새롭게 바뀐다. 어린아이들은 이런 반복성과 경직성을 자기들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일상성의 미덕으로 강화한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부모를 판에 박힌 일상에서 해방시키기도 한다.


사람들은 모두 판에 박힌 일상에서 해방되기를 갈망한다.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어른 자아에서 해방되기를 갈망한다. 적어도 이따금씩은 그런 경험을 간절하게 바란다. 공적인 역할들과 일상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온갖 의무들과 관련이 있는 자아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이야기하는 자아는 육체보다는 머리에만 의지해서 너무 많이 살아가는 자아, 세상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보다 세상의 원리에 대한 지식으로 짓눌려 있는 자아, 누군가로부터 비판과 평가를 받고 사랑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는 자아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관용과 무조건적인 사랑이 넘치는 세상에서 살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른의 삶에서 가장 부끄러운 부분은 편협한 시야와 관용을 모르는 성마른 판단이다. 어른이 고개를 들어 멀리 바깥을 보도록 만드는 일,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루이스가 쓴 『네 가지 사랑』에서 말하는 것처럼, 어른들을 “지칠 줄 모르고 끝없이 퍼 주게”만드는 일은 무척 어렵다. 어린아이들은 어른을 우스꽝스러운 선입견과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이기심의 미로에서 꺼내어 다른 곳으로 멀리 던질 수 있다. 어린아이는 부모의 자아에 위안을 줄 뿐만 아니라 부모가 보다 나은 어떤 것을 갈망하게 만든다. -p, 164, 165


어른이 어린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 함께 있음으로써 어른은 이 아이들로부터, 회색빛 플란넬 양복 세상의 절박한 규범을 벗어던지고 그저 아이들이 하는 것과 똑같이 할 수 있는 허가증을 발급받는다는 말이었다. 어떤 아빠는 아이들 덕분에 15년 동안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던 동물원에 갔다고 했고, 또 어떤 아빠는 “바깥에서 치아를 환하게 다 드러낸 채 눈빛을 반짝이며 뛰어다니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이 무척 즐겁더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것들보다 훨씬 더 명료한 표현으로 그 경험을 말한 아빠도 있었다. 


“내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바보처럼, 그러니까 어린아이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기분 좋더라고요.”


흔히 유아들의 세상에서 만나는 그런 초월적인 기쁨은 전혀 초월적이지 않은 것을 대상으로 한다. 오히려 우리가 한없이 추락하는 것을 대상으로 한다. 이런 기쁨들은 우리에게 예의범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고, 금지된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해 주며, 규칙과 규범에 순종하는 자의식을 구석에 내팽개칠 수 있도록 해 주는 허가증을 준다. -p, 170, 171


그러나 부모들이 더 열심히 얘기를 나누는 주제는 ‘선물의 사랑’이지 ‘필요의 사랑’이 아니다. ‘필요의 사랑’은 아이들에게서 나오지만 ‘선물의 사랑’은 부모들이 베푸는 것이다. ‘선물의 사랑’은 훨씬 더 까다롭다. 이것은 새로 부모가 된 사람들에 대한 수많은 유쾌한 책들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베풀기가 어렵다. 병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로부터 아이를 건네받는 순간 모든 부모에게서 저절로 이런 사랑이 생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사랑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꽃을 피운다. 앨리슨 고프닉은 『우리 아이의 머릿속』에서 완벽한 아포리즘으로 이 차이를 정리한다.


“우리는 우리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를 돌보는 게 아니다. 오히려 아이를 돌봄으로 해서 그 아이를 사랑하게 된다.” -p, 186, 187


필립스가 볼 때 유일한 차이점은 어른은 사춘기 아이보다 이런 충동을 보다 오랜 기간 동안 안고 살아왔으며, 따라서 (운이 좋다면) 이런 충동을 따라서 행동하기보다는 참는 방법을 익혔다는 데 있다. 그러니까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적절한 미친 짓이 더 진행되는 것을 극복하는가” 아니면 (이것보다는 좀 더 나은 거지만) “규율을 가지고서 다스리는가” 하는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즉, 어른들이 볼 때 사춘기 아이들은, 이런 미친 짓이 여전히 우리 어른들 안의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 수면 밖으로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음을 일깨워 주는 존재다. 어쩌면 우리는 그 미친 짓을 두려워하는 것만큼이나 부러워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른이기 때문에 해도 된다고 우리에게 허용된 것들 대부분은 우리가 가진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준다. 그런 감정들을 직접적으로 좇아서 행동하는 건 우리에게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필립스는 이렇게 말한다.


“사춘기 아이들과 한때 사춘기 아이였던 적이 있는 부모들은 각각 단순한 두 종류의 무력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것은 바로 경험 부족에서 기인하는 무력감과 경험에서 기인하는 무력감이다.”


민츠는 비록 어른은 십 대 아이들의 문제가 낯설고 특이한 문제들인 것처럼 다루지만, 사실은 이런 문제가 어른들의 문제와 나란히 일어나고 스러진다고 지적한다. 20세기 마지막 25년 동안의 자료를 조사해 보면 음주, 흡연, 마약 사용, 혼외자 출산 그리고 폭력 등의 경향이 어른과 사춘기 아이 두 집단에서 나란하게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른들은 자기가 안고 있는 불안을, 자기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자기 다음 세대에 투사하고 있다는 말이다. -p, 366


어린이라고 하면 거의 대부분 미래를 연상한다. 굳이 거창한 진화론을 동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실 우리가 아이를 낳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자신, 인간이라는 종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자기 아이를 자기 DNA의 연속선이라고 바라보는 것과 이 아이에게 우리가 가진 희망, 이루어질 수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온갖 희망을 짐 지우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 자기 아이에게 개인적인 기대를 너무 많이 하지 않는 것이 사실은 아이를 키우는 더 건강한 태도다. -p,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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