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책이다 - 시간과 연민, 사랑에 대하여 이동진과 함께 읽는 책들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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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는 "모든 한정은 부정이다"라고 했지요. 사랑하기 위한 조건을 줄줄이 내걸고 나서야 사랑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생활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책을 정말 사랑한다면 문자의 형태로 책에 박혀 있는 지식이나 서사뿐만이 아니라, 책에 관련된 모든 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책에 담긴 이야기, 책에 서린 정신, 책에서 나는 냄새, 책을 어루만질 때의 감촉, 책을 파는 공간, 책을 읽는 시간 등이 모두 모이고 모여 책에 대한 사랑을 온전히 이루어낸다는 것이지요.

저는 목적지향적인 독서를 하지 않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특정한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어떤 책을 선택해서 파고들지는 않습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제게 책읽기는 그저 습관입니다. 과거에 그래왔고 현재에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 미래에도 저는 관성적으로 책을 읽겠지요.

그렇게 사랑에 습관이 더해질 때, 마침내 책은 제게 말을 걸어옵니다. 책읽기는 제게 오락이고 영감이면서 시간을 배우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중략)

 

제게 밤은 한 권의 거대한 책입니다. 곧 밝아올 새벽이라기보다는 여전히 짙은 어둠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것 같은 오전 세 시.

고요한 한밤의 서재에서 여러 권의 책을 뒤적이며 읽다가, 계속 미루기만 했던 이 서문을 씁니다. 책은 한 사람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가장 내밀하게 이어지는 통로이겠지요.

저자의 생각이 고스란히 투영된 책들을 보다가 멈추어 고개를 드는 순간 제게로 변형된 채 틈입해 들어오던 그 깊은 밤의 상념들을 이제 당신에게 보냅니다.

이 책을 읽다가 당신도, 문득, 수시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 <밤은 책이다> 프롤로그 중 





열정락서를 통해 이동진 기자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평소 라디오나 팟캐스트를 통해 기자님의 목소리를 들어오면서 목소리나 말투가 사람을 끌어당긴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저도 그 매력에 빠져버렸지요)

강연을 통해 들어보니 역시나, 제 기대 이상으로 기자님의 많은 매력을 느끼고 돌아왔었지요.

 

 

취미가 같은 사람에게 끌린다고 하나요? 책도 좋아하시고, 영화도 좋아하시는 기자님한테 푹 빠져서

기자님이 다른 책인 <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라는 책을 읽어본 적이 있어요. 이 책은 기자님이 영화 촬영지에 직접 갔던 여행기를 쓴 책이었는데

제가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한 내용은 도무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아서 '이 책에 나오는 영화 다 보고나서 읽어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책을 덮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읽은 <밤은 책이다>라는 책도 실은, 기자님이 읽은 책에 대한 글이라 제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는 공감을 못하면 어떡하지 란 생각에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도, 이 책에 나오는 책들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제 '책  위시리스트'가 늘어났네요!

 

 

전 읽은 책을 이렇게 블로그에 기록해두는 식이지만 제가 책을 읽고 느낀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답니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기자님의 글을 읽으며 제 글이 부끄러워지기도 했어요.



<밤은 책이다>를 읽고 저한테 와닿았던 글들을 소개해드릴게요^^

 

 

 

어쩌면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온 연인들 역시 사랑을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내가 말하는 사랑과 그가 생각하는 사랑이 사실은 서로 다른 사랑일 수도 있다는 거지요.

어떤 사람은 이상적 판타지에 가까운 완전체로서의 사랑만이 사랑이라고 생각할 테고, 어떤 사람은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이 사랑의 전부라고 여기겠지요.

어떤 사람은 사랑이 위장된 성적 욕망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테고, 또 어떤 사람은 사랑의 현실적인 기능들이야말로 핵심이라고 볼 겁니다.

비유해서 말한다면, 거대한 집합 같은 사랑이라는 관념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원소들만을 모아서 부분집합을 만들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원소들을 배제함으로써

여집합을 구성한 뒤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는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서로 다른 원소들로 채운 각자의 사랑의 집합을 염두에 두고서 상대의 사랑을 재단하기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할까요. 연인들에게 현실적으로 허용된 것은 오로지 공통된 원소만으로 짐작되는 교집합으로서의 사랑밖에는 없는데 말이지요. -p, 35,36

 

 

모든 것이 끝나고 난 뒤, 결국 마음에 남는 것은 마지막 모습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했던 행동,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나누었던 말들이 긴 시간 동안 마음의 우물에서 계속 울려대는 것이지요.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마지막을 통과하고 있는 그때, 우리는 그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걸 알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러니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감사와 사랑의 말이 있다면, 가능한 한 매순간 하고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요.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우리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끝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게 끝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존재니까요. -p, 60

 

 

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 순간도 그냥 허송하는 시간만은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놓은 넋, 어디 가지 않거든요.

영혼 역시 좀 쉬기도 하고 산책도 다니고 그래야지요. 그나마 넋을 놓고 지낼 수 있는 일요일 오후 같은 시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몸뿐만 아니라 정신 역시 자주 쉬어주어야 할 겁니다.

티베트 속담에 그런 게 있다지요. 해결될 문제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해결 안 될 문제라면 걱정해도 소용없다. 네. 그렇다네요! -p, 112

 

 

예전에 책을 낸 뒤 했던 어느 인터뷰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 물음에 저는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살고 싶고,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 살고 싶다"고

대답했지요. 그때는 농담처럼 했던 말이었는데, 돌이켜보면 정말 잘한 대답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삶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고, 일에는 명백한 시한이 있기 때문이니까요.

주어진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되, 내가 전력을 기울여오던 일이 어느 순간 벽에 부딪치게 되면 미련 없이 손에서 놓아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태도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포기란 부조리한 세상에서 불완전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 조금 덜 불행해질 수 있는 유효한 기술인지도 모릅니다. -p, 148

 

 

누군가의 흔한 권태가 다른 사람에게 깊은 상처가 된다면, 그게 죄가 아니라고 어떻게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p, 268

 

 

 

요즘은 이렇게 자기가 읽은 책을 묶어 소개하는 형식의 에세이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이런 에세이를 읽다보면, 내가 읽었던 책을 이 사람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읽었구나. 하는 생각과 제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는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죠.

저도 언젠간 제가 읽은 책을 이렇게 모아 책 한 권 낼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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