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에서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 이후』가 널리 읽히고 이슈가 되었던 것과 같이

문학계에서는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말』이 그랬던 것 같다.

물론 이 책들의 제목만 보지 말고 내용을 잘 살펴본다면

책을 처음 접할 때 제목이 주었던 충격이 생각보다 크지는 않을 것이다.

무언가의 종말에 대한 언급은 비단 지금에 국한하지 않는다.

헤겔을 비롯한 많은 철학자나 사상가들이 매 시대마다 자기시대에 세상의 종말이 왔다고 주장해왔으니까.

 

도서출판b에서 가라타진 고진 컬렉션이 나와 이 책은 그 다섯번째 책이다.

한국에서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문학의 종말」이라는 글로 문학동네(2004. 겨울)를 통해 소개되었다. 문학동네 편집진도 당시에 이 글을 싣는데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하고, 한국문학시장이 침체한 현실 속에서 문학주의의 비판에 근거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역사적으로 보자면 '문학'은 인류역사에서 근대에 와서야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았다.

문학 중에서도 '소설'은 근대에 이르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근대 이전 문학에서 소설은 중요한 위치가 아니었고 오히려 시(poetics)가 다른 중요한 예술장르와 어깨를 겨루는 위치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문학의 종말이 곧 소설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18세기 이르러 영국을 중심으로 '미학'이 등장하여 이후 독일에 영향을 주었다.

이는 미술에서도 중요한데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가 주창한 '숭고(sublime)'의 개념이 낭만주의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이어 독일에서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같은 작가들이 등장했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1818)

 

본래 '감성론'이라는 의미의 '미학'은 감성에 대한 새로운 태도였다.

 

이전 시대에 '상상력'이라는 것은 환상을 초래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었고 이같은 태도는 최초의 근대소설이라 불리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서도 엿볼 수 있다. 돈키호테는 중세 기사문학을 엄청나게 많이 읽는 바람에 풍차를 거인으로 보고 돌진하는 어처구니 없는 인물이다. 말그대로 기사문학 폐인인 것이다. 통속적인 기사소설에 대한 비판으로 썼다는 이 소설 시작 부분에 보면 세르반테스가 이 소설이 자신의 창작물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거나 보고 자신이 편집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 것은 '소설'이라는 장르가 당시에 높이 평가되는 장르가 아니었기 때문일 수 있다.

 

 오노레 도미에 <풍차를 공격하는 돈키호테>(c.1855)

 

'상상력'은 환상을 초래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었으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후 감성·지성이 지적·도덕적 능력과 밀접히 연결되어있다는 인식의 변화로 말미암아 그 지위가 상승하게 되었다. 근대인들은 단순한 오락거리였던 '소설'에서 도덕적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문학은 허구이지만 진실보다 더 진실을 보여준다는 것, 무력·무위·반정치로 보이지만 혁명정치보다 더 혁명적일 수 있다고 인식했기에 이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문학의 지위가 상승하면서 더불어 문학은 도덕적 과제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다.

 

그러나 가라타니 고진은 "문학은 영구혁명 중에 있는 사회의 주관성"이라는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칸트 이후 문학의 입장이 오늘날에는 사라졌다, 소설은 근대 문학에서 이미 제 역할을 다했다고 주장한다. 이제 아무도 소설에 혹은 문학에 그와 같은 기대를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번역과 근대의 관계 또한 가라타니 고진의 분석에서 중요하다. 근대문학은 과거 세계를 지배하던 제국의 언어(이를테면 한자, 라틴어, 아라비아어)가 근대 국가(nation)가 성립하면서 각 민족의 속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즉, 근대국가는 제국의 보편적인 지적 언어를 속어로 번역하면서 새로운 문어를 창조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루터가 종교개혁 당시 '성서'를 독일어(속어)로 번역하면서 근대독일어의 기초가 되었다. 이를 '대혁명'이라며 사사키 아타루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자세히 분석한다.

 

 

 

 

 

 

 

 

 

 

 

 

 

 

나는 이 책을 단숨에 읽어내려갔으며 읽으면서 속이 후련하다고 해야할까, 그런 감정을 느꼈다.

'종말'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종말을 이야기하려면 당신부터 그 입 다물라'고 일격을 가하는 그의 문체는 탄산음료를 마실 때 같이 청량함을 안겨주었다. (내게는 탄산음료가 그런 존재다.)

'비평가'들은 '모든 것'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또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언제 무엇에 대해서도 재치있는 코멘트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초조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한 가지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환상에 매달립니다. 결국 둘 다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사키 아타루는 생물 종의 평균 수명이 400만년이라면 인류는 호모사피엔스로부터 계산해도 약 20만년이 된 존재로, 네 살된 아이가 팔십 먹은 노인에게 와서 "우리 세계는 끝났다. 역사는 끝났다"같은 이야기를 주절거리고 있는 셈이라 한다.

 

그는 책을 읽는 것 자체가 혁명이다. 반복해서 책을 읽는 것, 그것이 혁명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루터는 문학자이기에 혁명가일 수 있었다. 루터가 번역한 성경이 독일 근대문학의 기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책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기 때문이다.

16세기 초까지 독일어 서적 간행 종수는 단 40종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루터가 등장하자마자 1523년 498종에 이릅니다.  그중 418종은 루터와 그의 적대자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1519년 루터 책의 출판 부수는 독일 전체 출판물의 3분의 1, 1523년에는 5분의 2에 달했습니다.

당시 식자율이 5퍼센트였으므로 많은 이가 읽을 수는 없었지만 루터의 독일어 성경은 '집단독서'(많은 사람이 한 곳에 모여 루터가 번역한 성서나 저작을 낭송하고 함께 들었던 것)를 통해서도 널리 읽혔다. 여기서 루터가 혁명적이었던 것은 부패가 만연한 카톨릭에 대해 성서라는 텍스트 본연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성서라는 텍스트를 거듭 반복해서 읽고 깨달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제의 부 축적이나 심지어 결혼, 면죄부 판매 등 성서에 없는 것들을 폐하고 성서라는 텍스트를 준거삼자는 주장은 종교가 지배하는 사회였던 당시에 정말 대혁명이었을 것이다.

 

사사키 아타루는 '문학'은 성전을 읽고 쓰는 '기예'라 말한다. 법, 규범, 제도 등 우리가 문학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것들도 텍스트, 즉 문학의 범주안으로 규정한다. 우리가 현실에서 협의의 의미로 생각하는 문학이 아니라 광범위한 텍스트로서의 문학, 세계를 변혁하는 것으로서 문학은 아직 끝나기는 커녕 시작도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여기서 해야할 일은 '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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