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현대문학, 2010)
박완서 작가가 돌아가시기 전 나온 이 책은 산문집이다. 작가는 소설『나목』으로 40세라는 나이에 등단하셨다. 2011년 1월 23일 81세를 일기로 돌아가셨고 떠나시기 전 해인 2010년 이 산문집이 나오기까지 40년을 현역으로 살았다. 작가 이전에 살아온 인생 만큼 작가 이후의 삶을 사신 셈이다.『나목』『그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등 작가가 되기 이전 젊은 날 겪었던 삶이 작품 속에 고스란하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전쟁이 나 서울에 남아 피난을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양 이념에 의해 고초를 겪었다. 이러한 와중에 오발사고로 인해 총상을 입은 오빠가 죽자 20살 앳된 나이에 가장이 되었다. 그러나 2007년 발표한『친절한 복희씨』에는 중년 여성의 수다스러운 화법이 문체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특히 이 책에 수록된「그리움을 위하여」는 이런 수다 문체의 백미다. 수다라면 부정적으로 생각되기 일쑤지만 이 작품에서 수다 문체가 없었다면 그 재미는 반감하였을 것이다.

김화영 『여름의 묘약』(문학동네, 2013)
'프로방스, 홀로 그리고 함께'라는 부제가 마음에 든다. 나중에 전시제목으로라도 써먹을까.
내가 사랑하는 장 그르니에의 『섬』의 역자시다. 카뮈 전공자로, 불문과 교수이자 역자, 문학평론가로 유명하지만 이 분은 원래 시인이다. 그래서일까. 유려하고 아름다운 문체를 구사한다.
이 책은 예술기행문의 형식을 띠고 있다. 1977년 신혼의 아내와 뱃속의 딸과 함께 프로방스에 왔던 한 청년이 30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다시 같은 곳을 여행한다. 기실 이 여행은 저자가 보낸 삶 속에 살아숨쉬는 문학 속으로 떠나는 탐방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장 지오노의 작품들을 읽고 싶어졌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해서 마치 글도 읽은 것 같지만 아니고 『지붕위의 기병』은 책 표지 이미지도 없다. 유명하지만 그다지 많이 팔리지 않는 책 중의 하나인가. 
저자의 이름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니 최근에 번역에 관한 설왕설래가 있었던 듯하다.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이자 저자의 번역작으로 대표적인 『이방인』의 번역이 오역이라는 새로운 번역가의 글이 한 출판사 블로그에 뜨면서 번진 이야기였다. 오역을 운운할 만큼 불어 번역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부족하지만 저자가 번역한 많은 책을 읽고 좋아한 독자의 한 사람으로 섭섭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번역은 반역이라고 하지만 그는 아름다운 글로 반역하는 분이다. 기왕 칼을 들었으면 더 나은 번역을 들고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셸 투르니에의『짧은 글 긴 침묵 』,『외면일기』도 장 그르니에 만큼이나 좋아하는 글들이다.
『카뮈-그르니에 서한집』이나 『시간의 파도로 지은 城』도 읽어보고 싶다.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문학동네, 2013)
『여름의 묘약』을 가을까지 야금야금 아껴 읽었다면 김영하의 신작은 한걸음에 내쳐 읽었다.
연쇄살인자가 치매에 걸리다니 이것은 신의 짖굳은 농담인가. 문학평론가 권희철은 "책이 잘 읽힌다면 이 소설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라는 김영하의 말을 인용한다. 사실 이 말은『빛의 제국』이라는 다른 책에 대한 저자의 언급이다. '치매 환자로 산다는 것은 날짜를 잘못 알고 하루 일찍 공항에 도착한 여행자 같다'거나 '과거를 생생하게 보존하면서도 미래는 하사코 기록하지 않으려고 하는' 질병의 징후들은 지금 내게는 단지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에 더 처참하게 느껴진다. 갑자기 낯선 곳에서 정신을 차리게 되고 모두가 낯선 이, 모든 곳이 낯선 공간이 되는 현재를 살지만 가까운 과거부터 기억은 점점 사라진다. 미래 기억이라는 것, 예를 들어 "30분 후에 약을 먹어야지" 같은 바로 해야 할 일에 대한 기억은 더욱 그러하다. 독자는 유식한 연쇄살인자의 사유를 들여다본다. 금강경을 외고 니체를 읽으며 김경주를 읊는 일흔을 바라보는 연쇄살인자 캐릭터는 몰입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가 겪는 질병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프고 힘든지는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나는 확실히 이 소설을 쉬이 읽었지만 잘못 읽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