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들
로이 야콥센 지음, 공민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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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들

로이 야콥센 지음 | 공민희 옮김 | 도서출판 잔


"아무도 섬을 떠날 수 없다. 간단히 말하면 섬은 곧 우주고 별은 눈 아래 풀 속에서 잠을 잔다. 하지만 간혹 섬을 떠나려고 시도하는 이들도 있다. 동풍이 거세지 않은 날에 말이다." _p.24_

나는 서울에서 나고자랐다.

어린시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 강원도에 한동안 지내셨던 것 말고는 딱히 시골이라 부를 만한 곳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골 생활은 더군다나 섬에서의 생활은 전혀 알길이 없었다. 그저 여태껏 읽어왔던 책들을 통해서 섬 생활이 시골 생활과 비슷하리라는 추측만을 한 채 이 책을 읽기 시작 했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두 가지의 궁금증이 있었다. 하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의미에 대한 궁금증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노르웨이 작가의 작품이기에 북유럽 문학의 감성은 어떨지 호기심이 일어서였다.

책을 다 읽고나서 그 궁금증이 해소가 되었을까?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안도인지, 희망인지, 걱정인지, 정확하게는 잘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을 담은 큰 한숨이 입밖으로 새어나왔다. 궁금증에 대한 생각은 아얘 할 수가 없었다. 지금에서야 다시금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알것 같다. 제목의 의미를, 그리고 북유럽 문학이 아닌 노르웨이 섬 사람들의 감성을.

📖

바뢰이섬에는 이 섬의 합법적인 소유주이자 유일한 가구인 바뢰이 가족들이 살고 있다. 가장인 어부 겸 농부 한스 바뢰이, 한스의 늙은 아버지 마틴, 한스와 터울이 많이 나는 미혼의 여동생 바브로, 섬의 여주인 마리아, 그리고 한스와 마리아의 세 살 된 딸 잉그리드 이렇게 다섯이서 이 섬을 일구고 지키면서 살아간다. 시작은 이렇게 다섯이다. 하지만 하루 하루가 지나고 한 해 한 해 세월이 흐르면서 가족 구성원에도 변화가 생기고, 끝에는 다른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여섯 식구로 마무리가 된다. 세대의 변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스는 밖에서 걸쇠 두 개를 달아 서로 걸려서 창문을 열어 둬도 바람에 꽝 닫히지 않게 만들었다. 다른 작업과 마찬가지로 마틴의 시대에 끝냈어야 하는 일이었다." _p.108_

** 섬사람들의 생각과 일상과 하루의 삶을 담담하게 하나씩 매 장마다 풀어내고 있다.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은 장 (53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책이다. 한 장에 하나의 에피소드를 이야기 하는 것 처럼 보여도 그건 한 인물의 행동이기도 하고 모든 인물의 삶이기도 하다.

섬에서는 모두가 일을 한다. 밭을 일구고, 고기를 잡고, 잡은 고기를 말리고, 그물을 짜고, 배를 고치고, 끊임없이 몸을 움직인다. 내가 생각하는 어린아이들도 많은 일들을 금새 배우고 그 일들을 해낸다. 그래서 굉장히 놀라웠다. 4살의 잉그리드는 아버지가 잡은 고기를 함께 나르고, 7살의 잉그리드는 어머니에게 뜨개질을 배운다. 심지어 12살의 라스는 배를 수리하기까지 한다. (라스는 나중에 태어나는 바브로의 아들이다.)

"잉그리드는 더는 나무 자르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레프세를 굽고, 소젖을 짜고, 크림을 분리하고 치대서 달콤한 치즈와 피클 같은 고메를 만들고, 실을 잣고, 뜨개질을 하고, 노를 젓고, 수영을 했다. 이제는 거의 모든 걸 할 수 있었다." _p.149_

바뢰이섬 사람들은 여러 가구들이 함께 살고 있는 다른 섬이나 육지(본토)로 나가고 싶은 생각을 마음속 깊이 갖고 있지만 누구도 말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잉그리드는 성인이 되어, 본토에서 하녀로 일하기 시작하지만 시련을 겪게되고 결국에는 섬으로 돌아오게 된다.

** 바뢰이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잉그리드를 중심으로 그녀의 성장과 생각이 많이 표현되기는 하지만 자연이, 섬이 인간에게 주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에 대한 인간의 고통스러운 두려움을 담고 있기도하다. 그리고 지혜롭게 순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엄숙게 느껴지기까지했다.

"폭풍은 널 해치지 못해." 한스가 딸의 귀에 대고 소맃쳤다. 하지만 잉그리드는 들리지 않았다. 두 사람 다 들리지 않았다. 그는 섬이 요동치고 가라앉지 않으며 영원히 그 자리에 딱 붙어 있다는 걸 몸소 느껴 보라고 소리쳤다. 이 순간 딸과 공유하고픈 신앙같은 거였다. _p.60_

** 참 광활하다. 하나의 거대한 서사시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들이 섬을 벗어날 수 없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책의 제목 <보이지 않는 것들>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 인간의 삶이고 인간의 성장이고 또한 자연이다.

"아주 드문 침묵이었다. 이 일이 특별한 것은 섬에서 일어났다는 데 있었다. 경고 없이 숲속에서 내려오는 침묵보다 더 강했다. 숲은 종종 조용해졌다. 섬에서는 조용한 일이 별로 없어서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며 무슨 일인지 서로 물었다. 침묵은 궁금증을 불렀다." _p.105_

📓

나에게는 모든 사항들이 흥미로웠지만, 너무나도 구체적인 섬 사람들의 삶이 담겨있어서 자칫 지루함을 느끼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노르웨이에 대해서 미리 알고 이 책을 읽으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든다. 책을 다 읽고 찾아보니 여러가지 노르웨이의 문화와 특징이 책 속 곳곳에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섬도, 커피도, 음식도.

끝까지 다 읽은 지금, 새로운 감동이 밀려오고있다. 말로 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직접 느끼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한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해가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처음에는 삶은 대구의 눈처럼 게슴츠레하게 먼 북쪽에서 나타나더니 점점 더 노란색으로 바뀌고 한층 황금빛으로 변해 마지막 남은 안개를 모조리 몰아내고 야생마처럼 사방으로 그들의 시야를 터 주었다." _p.274_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감동적으로 읽은 후 작성한 지극히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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