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의 제국
앙리 프레데릭 블랑 지음, 임희근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인류의 잠을 구원하자
앙리 프레데릭 블랑,『잠의 제국』, 열린책들, 2001

  한 지식검색에서 잠에 관한 질문은 수만여건에 이른다. 대부분 해몽에 관한 것으로, 삶을 방해 하는 잠과 영광스러운 잠에 이름표 붙이는 작업을 의뢰한다. 이름표 붙이는 작업이란, 프로이트가 말한 ‘꿈의 예언적 성격’을 공론화하는 것이다. 오랜 꿈의 해석으로, 구약성서(창세기 37:5-11)에 등장하는 요셉의 꿈이 대표적이다.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라는 구절은 그가 할 일을 하느님이 계시하셨다고 많은 이들에게 믿어진다.
  하지만, 이런 거창한 잠을 자는 사람을 난 본 적 없다. 자신이 칠성사이다 페트병이 되어, 꿈꾸는 내내 한여름 태양 열기에 땀 흘리며 서 있었다는 군대 후임병이 있었고, 빨간 색의 작은 타이즈를 입고 밤새 바게뜨를 사러 돌아다녔다는 키작은 친구가 한명 있을 뿐이다. 이런 재미있는 잠을 자는 친구들도, 단 한번 꿈을 꿔보지 못한 내가 부러워하면, 피곤하다고 손사래를 친다. 모두, 편안한 잠을 원한다.
  『잠의 제국』의 주인공 ‘조제프’는 ‘꿈의 마르코 폴로’ 라는 호칭을 좋아한다(그는 신경질적이니, 원하는 대로 불러주자). 그는 페스트와 콜레라를 합한 것보다도 더 해롭고 심각한(인류에게는 무해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 또 꿈의 지리학자로서 금기시해야 할 불면증에 시달린다. 이는 소설이 시작되고 나서 금방 만들어 내는, ‘잠의 기계’가 가져 오는 명예와 황금 탓이다. 수면제보다 14%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이 제품은 질 높은 수면, 경쟁력 있는 수면, 고급스러운 수면을 취해야 한다는 정당한 야망을 성취시켜 줄 혁신적인 발명품이다. 하지만 도덕적인 조제프의 발명동기와는 별개로, 꿈에 광고를 첨부하여 투자하려는 ‘펠릭스 라피옹’ 때문에 잠들지 못하게 된다.
  그에게 잠은 ‘자신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 의식의 지하 감옥, 자기 정신의 어두운 지하 창고’에 닿는 행위이다. 하지만 현대는 '극도한 이성의 과잉'이 잠과 죽음을 부정하면서 쉴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 인류의 잠은 구원되어야만 한다.
  구원 받기 위해서, 베개의 높이에 관하여 숙고하거나 매트리스를 교체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수면 탐험가’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그는 직업적으로 잠을 자는 사람이므로, 불면의 밤에는 짧은 조언을 듣는 것도 유용한 생각이다.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너무 집착하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일들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한 조건인 것입니다.”
  『잠의 제국』은 에필로그부터 읽기를 권한다. 그것이 당신의 몽상을 부추길 것이다. 그리고 조급해 하지 말자. “아무것도 급할 게 없다면, 그건 아무것도 가볍게 행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샤워를 한 뒤 그는 거울 달린 옷장을 열렀다. 그의 단벌 옷 옆에 마흔 벌의 잠옷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그는 찬찬히 그 잠옷들을 점검하고 마침내 검은 비단에 금실로 수를 놓은 중국풍의 잠옷을 골랐다. 나무랄 데 없는 복장으로 잠자는 것은 수면의 과학적인 실행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이것이 꿈꾸는 이의 자신감을 북돋워 준다. 그리고 꿈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절대 알 수 없으므로 언제나 남부끄럽지 않을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이 좋다.

앙리 프레데릭 블랑Henri-Frederic Blanc, 잠의 제국, 열린책들, 2001.12, p.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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