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전쟁 - 제2차 세계대전은 어떻게 중국의 민족주의를 형성하는가
래너 미터 지음, 유강은 옮김 / 언더스탠드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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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된다’라는 오랜 통념이 있다. 

고대 전장을 누비던 공식 사관의 붓끝부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선에 투입된 종군 기자의 카메라에 이르기까지 

역사는 권력을 쥔 자들의 언어를 통해 정리되어 왔다.


그렇다면 국가적 서사 뒤에 가려진 보통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사적인 기억은 어디에 남아 있는 걸까.


래너 미터의 《좋은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의 항일 전쟁을 

둘러싼 현대 중국의 전쟁 기억을 탐구한다. 


전쟁이 끝난 후 승리의 주역으로 기록된 사람, 

희생이 남긴 흔적, 반대로 침묵 속에 남겨진 경험을 따라가다 보면 

과거를 바라보는 방식이 현재의 정치와도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


책을 마주했을 때부터 ‘좋은 전쟁’이라는 제목이 지극히 역설적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참혹하지 않은 전쟁이 어디 있으며, 전쟁에 ‘좋다’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까.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좋은 전쟁’은 참혹했던 전쟁을 통해 

중국이 침략에 맞서 하나의 국가적 서사를 만들어내고,

 전후의 국가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기억은 시대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졌다.


마오쩌둥 시대에는 공산당의 항일 투쟁이 역사 서술의 중심에 놓이면서

 국민당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축소되었다. 

이후 중국 사회의 변화와 함께 국민당 정규군의 항일 전쟁 기여와 

개인들의 전쟁 경험도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영화와 인터넷, 박물관과 기념관 같은 공간에서도 과거를 바라보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졌다.


‘궈펀 현상’은 이런 변화와 맞닿아 있는 사례였다.

 장제스와 국민당에 대한 중국 사회의 새로운 관심과 재평가가 나타나면서, 

과거의 항일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변화가 생겨났다. 


2020년 영화 <팔백>은 

상하이 사행 창고 전투에서 

일본군에 맞선 국민당군을 전면에 내세우며 

국민당의 항일 전쟁 기여를 부각한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판젠촨은 <한 사람의 항일 전쟁> 책을 출간한 뒤, 박물관 단지 전체를 지었다. 

그에게 공산당과 무관한 전시 경험을 복원하는 일은 

현대 중국의 최근 과거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것 

말할 수 없는 것의 경계를 넓히려는 광범위한 실험의 일부였다.” (p.235)


통치 이념과 국가적 신화 뒤에 가려진 참전 경험과 피란의 기억을 끌어올리고, 

지나간 비극을 현재의 질문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역사박물관과 전쟁기념관 같은 ‘기억의 공간’이 맡고 있다.


녹슨 총칼과 손때 묻은 피난민의 소지품은 

전쟁의 승패를 기념하는 유물이면서 동시에 한 시대를 살아낸 개인의 흔적이다.


 국가가 보여주는 전쟁과 그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겪은 전쟁이 한 공간에 놓이면 역사에는 여러 목소리가 생겨난다. 


정치적 서사에서 주변으로 밀려났던 이름 없는 병사의 희생을 바라보는 움직임은

 특정 이념에 대한 지지를 넘어선다. 

한 사람의 죽음이 국가의 역사 속에서 어떤 이름과 의미를 얻는지 생각하게 했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희생은 정권의 변화에 따라

 역사적 의미까지 달라져야 할까.


국가별로는 전쟁과 재난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따져볼 수 있지만,

그 시대를 통과한 개인에게 과거는 역사책처럼 깔끔하게 정리된 사건으로 남지 않는다.


그래서 후대의 역사가가 해야 할 일은 하나의 진실을 대신 선언하는 데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역사에서 중심이 된 것과 주변으로 밀려난 부분, 

그 과정에서 사라진 목소리를 살펴보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개인의 침묵을 존중하면서도 침묵이 만들어진 시대를 함께 고려하면 

역사에 남겨진 공백이 찬찬히 보이기 시작한다.


또한 현재 중국이 전쟁의 ‘집단 기억’을 새롭게 재정립하는 과정은

 오늘날 중국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일과도 이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의 기억을 다루는 방식 속에서 

중국이 현재의 국가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메커니즘을 엿볼 수 있었다. 

동시에 동아시아의 역사적 갈등과 민족주의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도 생각하게 했다.


《좋은 전쟁》을 읽고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였다.

국가가 선택한 역사만 바라보는 것과 

그 안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함께 바라보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던 침묵까지 함께 들여다볼 때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에도 새로운 모습이 보인다.


흩어진 기억의 파편을 하나씩 그러모으는 일.

 어쩌면 역사란 그렇게 완성되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본 도서는 인스타 @woojoo_story의 진행 및 

언더스탠드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아

우주클럽_역사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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