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메두사 아이
실비 제르맹 지음, 이창실 옮김 / THE CIRCLE PRESS / 2026년 2월
평점 :
첫 문장부터 펼쳐지는
탁월한 묘사와 아름다운 이미지에 넋을 잃고 이끌려 갔다.
이야기 밑바닥에 숨겨져 있던 참혹한 진실을 마주했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불편한 진실을 인지하고도 책에서 시선을 뗄 수 없어 괴로웠다.
빛과 회화를 빌려 인물의 내면을 표현한 구성이 인상적이다.
채색 삽화에서 붉은 분필화, 세피아화,
목탄화, 프레스코화로 이어지는 전개는
마치 하나의 미술 작품을 깊이 있게 해설해 주는 듯한
독특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첫 장을 장식하는 채색 삽화 속 뤼시는 명랑한 아이다. 세상을 향한 호기심, 루-페와의 우정, 가족이 주는 안정감이라는
따뜻한 유년기의 색으로 자신의 바탕을 채워 간다.
그러나 붉은 분필화 앞에 이르면 분위기는 숨 막히게 달라진다.
인체를 해부하듯 거침없이 이어지는 선은
그녀의 오빠 페르디낭의 허기진 육체와 더러운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 선의 끝에는 여동생 뤼시가 있다.
능욕을 견뎌야 했던 아이는 점차 자신의 빛을 잃어 간다.
어둠과 그림자,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내면 깊숙이 가둔 채
그녀의 세계는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이어지는 세피아화는 각자의 빛바랜 회상으로 진입한다.
바랜 갈색빛 화면 위로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알로이즈의 기억이 떠오르고,
육신에 갇힌 아들을 향한 절망이 반복해서 소환된다.
곧이어 페르디낭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여동생의 모습, 메두사의 시선을 곱씹지만
끝내 자신의 죄를 이해하지 못한 그는
영영 움직일 수 없는 육체 속에 갇혀 버린다.
“그녀가 입은 상처는 조금도 아물지 않았고, 치유되지도 않았다. 치욕과 공포의 외상은 곪아 부어올랐다.”
뤼시가 홀로 남는다.
세피아화 특유의 흐릿한 명암처럼
기억은 희미해질지언정 상처는 조금도 흐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분노가 응집된 '시선'
눈동자 깊숙이 들끓는 모든 것을 담아 절규로 표현한다.
마침내 목탄화의 검은 화면으로 완전히 가라앉는다.
페르디낭의 죽음 이후 알로이즈는 모든 것을 잃은 ‘검은 여인’이 되고,
이아생트는 끝내 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 채 타인의 목소리만을 좇는다.
식인귀가 사라졌음에도 뤼시에게 기쁨은 돌아오지 않는다.
“뤼시는 거친 모티브의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그림에 대한 취향도 동시에 잃고 말았다. 그 블랙홀이 가시 세계를 몽땅 집어삼킨 것이다.”
목탄을 손으로 문지르면 검은 입자는
사라지지 않고 화면 전체로 번져 나간다.
인물들의 삶도 그랬다.
알로이즈의 공허, 이아생트의 침묵, 뤼시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은 채
각자의 삶을 검게 물들인다.
마지막 프레스코화,
마음이 무겁고, 고통에 대한 분노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제야 가쁘게 몰아쉬던 호흡이 안정된다.
마침내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말이다.
프레스코화는 젖은 회반죽 위에 물감을 칠해 단숨에 완성해야 하는 그림이다.
회반죽이 마르면 다시는 수정할 수 없기에 화가는 망설일 수 없다.
모든 체력과 시간을 한 번의 붓질에 쏟아붓는 고된 작업이다.
뤼시의 삶도 그랬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고,
불쑥 떠오르는 기억과 설명할 수 없는 비애는 평생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기쁨을 빼앗겼던
과거의 집, 그랑주-오-라름가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다.
프레스코화가 특별한 이유는
벽과 하나가 되어 오랜 시간을 견뎌 낸다는 데 있다.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뤼시는 그 상처를 삶의 벽면에 새긴 채 끝내 살아 있기를 선택한다.
채색을 잃고 방황하던 아이는
고통을 견뎌 영원히 빛나는 자신의 색을 되찾은 사람이 되었다.
프레스코화가 수천 년의 시간을 품고도 은은한 빛을 유지하듯,
뤼시는 고통을 짊어진 채 살아남음으로써
마침내 누구도 꺼뜨릴 수 없는 스스로의 빛이 된다.
@woojoos_story 진행 및 @thecirclepress의 도서협찬으로
단체 디엠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