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
최인호 지음, 김점선 그림 / 열림원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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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친구들은 여전히 젊은 날의 연인들처럼 외국여행 중에 서로 엽서를 써서 부치고 식당에 가서는 각자 다른 음식들을 하나씩 시켜서 한 스푼씩 나눠먹기도 하고 함께 손을 잡고 영화를 감상한다.

아내의 친구들은 서로의 결점들을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이 치명적인 독이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친구가 가지고 있는 결점이 나에게도 있는 공통된 결점임을 잘 알고 있으므로.

아내의 친구들은 패거리를 이루어 모반을 꿈꾸지도 아니하고, 이따금씩 만나서 계집아이가 되어 서로 민들레꽃이나 사금파리 같은 하찮은 물건들을 소꿉장난처럼 나누다가 시간이 되면 각자의 집으로 어머니가 되어 아내가 되어 할머니가 되어 긴 그림자를 끌며 돌아온다.‘

TV는 경쟁적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라면 그 무슨 방법이든 가리지 않겠다는 무차별적 선정주의로 치닫게 되었다. 주로 일본의 경박하기 이를데없는 집단 MC들의 쇼 무대를 그대로 직수입해 들여온 방송들은 또다시 출연자들의 행동에 일일이 자막을 달아 이들을 만화의 주인공으로 희화화하고 있다. 그리하여 TV는 연예인의, 연예인을 위한, 연예인에 의한 거대한 쇼 무대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시청자들은 그들끼리 나와서 까불며, 말장난하며, 놀고 있는 장면을 훔쳐보게 되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생존 게임의 법칙은 전 출연자들을 보이지 않는 강박관념으로 사로잡아 모두 남보다 돋보이기 위해서 튀고, 과장을 하고, 쌍소리를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TV에 나오고 있는 사람들은 대통령이건 정치가이건, 학자건, 성직자건 그 누구든 제3의 눈인 TV카메라에 비춰지는 나, 즉 진짜의 나가 아닌 가짜의 나에 매달려 전 국민들은 가짜의 가짜에 의한 가짜를 위한 어릿광대로 전락해버리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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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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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박민규,황정은 작가의 글을 읽으며 작가들의 섬세한 감수성에 위로받았다. 옴니버스영화처럼 성격도 질도 들쭉날쭉한 글들이라 한 권으로 묶이기엔 거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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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전장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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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戰場)과 시장(市場)이 서로 등을 맞대고 그 사이를 사람들은 움직이고 흘러간다.
사람들도 상품도 소모의 한길을 내달리며, 그리고 마음들은 그와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사라져가는 민심을, 사라져가는 인민들의 불길을 억지로라도 되살리기에는 오직 승리가, 사람과 상품의 소모를 막아 줄 결정적인 승리가 있을 뿐이라고 기훈은 생각한다.

‘민중을 믿다니 어림도 없는 소리, 그들도 결코, 결코 우리를 믿지 않았다. 그들은 어떠한 약속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오직 현실을 받아들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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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의 없음
배수아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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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걸어라, 울어라, 그리고 써라.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그것뿐이었으므로.

걸어라, 울어라, 그리고 써라.
그러면서 한없이 비경제적이고 간헐적인 여행자로 죽는 날까지 남는 것일 뿐.

- ‘올빼미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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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최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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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우울한 것은, 버리기에는 충분히 낡지 않은 그녀의 옷가지와 장신구, 필수품과 기념품, 몇 년간 책장에서 머리맡으로 응접실에서 다시 책상으로 자리를 옮기며 그녀를 따라다녔음에도 결국 끝까지 읽지 못한 서너 권의 책들, 죽기 전에는 꼭 읽기로 자신과 약속 했기에 벌써 두 번을 잃거나 잊어 세번째로 다시 구입한 책들, 오래전 그녀가 고향을 떠날 때 투명한 비닐봉지에 넣어가지고 온 이래 한번도 다시 꺼내본 적이 없는 빛바랜 사진과 편지들, 불안과 격정, 기쁨과 실망, 미움과 사랑, 감동과 예감의 이름으로 특수한 날들을 어눌하고 단순하게 기록한, 결국 간헐적일 수밖에 없는 인생의 보고서인 일기장, 첫 면에는 10년전의 어느 날이 표시되어 있으나 글씨가 채워진 마지막 면은 수 달 전의 하루에 멈춘 채 비어있는, 그래봐야 여전히 공책의 반을 넘기지 못할 정도로 점점 더 역력히 짧아진 기록들로 채워진, 가장자리에는 때가 묻고 겉장은 무참히 늙어버린 두꺼운 일기장...

- [시설(詩設) - 우울한 날 집어탄 막차 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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