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우울한 것은, 버리기에는 충분히 낡지 않은 그녀의 옷가지와 장신구, 필수품과 기념품, 몇 년간 책장에서 머리맡으로 응접실에서 다시 책상으로 자리를 옮기며 그녀를 따라다녔음에도 결국 끝까지 읽지 못한 서너 권의 책들, 죽기 전에는 꼭 읽기로 자신과 약속 했기에 벌써 두 번을 잃거나 잊어 세번째로 다시 구입한 책들, 오래전 그녀가 고향을 떠날 때 투명한 비닐봉지에 넣어가지고 온 이래 한번도 다시 꺼내본 적이 없는 빛바랜 사진과 편지들, 불안과 격정, 기쁨과 실망, 미움과 사랑, 감동과 예감의 이름으로 특수한 날들을 어눌하고 단순하게 기록한, 결국 간헐적일 수밖에 없는 인생의 보고서인 일기장, 첫 면에는 10년전의 어느 날이 표시되어 있으나 글씨가 채워진 마지막 면은 수 달 전의 하루에 멈춘 채 비어있는, 그래봐야 여전히 공책의 반을 넘기지 못할 정도로 점점 더 역력히 짧아진 기록들로 채워진, 가장자리에는 때가 묻고 겉장은 무참히 늙어버린 두꺼운 일기장...
- [시설(詩設) - 우울한 날 집어탄 막차 안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