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휘 늘리는 법 -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다 땅콩문고
박일환 지음 / 유유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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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교양을 넘어선 교양서. 유유의 땅콩문고 시리즈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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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교열 중 - <뉴요커> 교열자 콤마퀸의 고백
메리 노리스 지음, 김영준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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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제대로 읽지 못했어요. 잡지와 교열 일 자체에 대한 인사이트나 저명한 잡지 뉴요커에 대한 호기심 충족을 기대했던 부분이 충족되는 글은 아니었고, 콤마와 구두점 등 영어 표기에서의 특수성 등이 잘 와닿질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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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곤이 평상에 궁둥이를 걸치는가 싶더니만 벌렁 등을 대고 누워 비비적거렸다. 그러곤 게으름이 닥지닥지 내려앉은 속눈썹을 끔뻑이며 중얼거렸다.

"어어! 이어도여, 이어도여!"

‘또!‘

걸신들린 식충이마냥 먹을 거라면 사족을 못쓰는 박기곤은 제 입에 관한 일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게을렀다.

움직이는 걸 얼마나 싫어하느냐면, 박기곤이 입에 달고 사는 소리가 바로 이어도 타령이었다. 그 섬에 가면 일을 안하고도 살 수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사내로 나서 고작 일하기 싫은 마음에 이어도나 읊조리는 한심한 인생이라.‘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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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이다 이제, 봄꽃들이 다 피었다. 속살대던 꽃들의 만찬은 수그러들고 이때부터 나는 고요해진다. 그야말로 두문불출하고 그간 느낀 것들을 풀어내기 위해 안으로 안으로 기를 모아야 한다. 그래서 여름엔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는다. 철저한 내 세계를 펼치기 위해 고독 견디기에 들어간다.

봄내 꽃을 피운 그것들도 결실을 위해서 뙤약볕 아래 몸을 뒤척이거늘, 응달에 들어앉은 사람으로서 내안의 것들을 익히기 위해 이쯤의 고독을 견디지 못한다면 어찌 글쓰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고독 속에 드는 시간을 부러 자초한다.
그 기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더워지기 시작하는 6월 중순부터 선들바람 불기 시작하는 8월 중순까지이니 길어야 두 달이다.

... 그동안은 최대한 혼자가 되어야 한다.
정 답답하면 산길을 걷고, 푸른 달빛에 마음을 얹으며, 바람에 덜어내야 한다. 이렇게 작정한 이상 집안의 대소사나 공식적으로 참여해야할 일 외에는 스스로가 차단해야 한다.

불러내는 사람들을 여과없이 만났다가는 자신을 지키기란 어렵다 분산되는 신경을 관리할 줄 아는 것도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이므로 ...

사람을 안 만나고 견디어보는 것은, 속세에서의 도닦기’이다. 한편
한편의 짧은 수필에 혼을 불어넣기 위한 수양인 것이다. 영육간의 기를 모으는 기몰이 말이다. 즉 무색옷을 입은 승려들이 고요의 뜰에 들기 위해 자연 속에 잠기는 것처럼, 나는 내 안의 나를 만나기 위해 스스로 걸름망 장치를 하는 것이다.

이토록 애를 써가며 스스로가 고독 속에 드는 것은, 가장 맑은 정신을 만나기 위한 작업이다.

이때는 미워하는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도 다 놓아야 한다.
오직 가슴속 깊이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맑은 정신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 속에서 주관과 객관이 화합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나마 탁하지 않을 정도의 글줄기를 끌어올리는 작업을 한다.

... 세상에 내놓았을 때 독자가 매끄럽게 읽어내도록 하기 위하여, 쓰는 사람은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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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능숙하고 주도면밀하기만을 요구하는 이세상의 참담한 재앙이자 낯선 국외자다.

너는 걷고 또 걷는다. 주민공원의 솔숲을 헤매고 다니기도 하고 주립 도서관의 서가들 사이에서 마냥 기웃거리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너는 많은 타인들과 엇갈려 지나친다.

카페테라스에 앉아있을 때는 비록 전혀 못 알아듣긴 하지만, 옆자리에서 나누는 대화의 말소리에 귀 기울여보기도 한다.

주립 도서관에서는 비록 한 줄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긴 하지만, 아무 책이나 뽑아들고 읽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부단히 누군가와 말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뭔가를 하고 있다.

그들은 자꾸 뭔가를 해야만 지금 여기서 숨쉬며 살고 있다는 실감에 이를 수 있는 것 같다. 오히려 네가 그런 타인들의 모습에서 역으로 확인하는 것은 부동 상태의 적요함이다.

그래서 너는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싶어한다. 오로지 최소화된 움직임 속에서만이 네가 추구하는 고립과 은둔의 평안에 다다를 수 있다고 너는 믿는다.

식물같은 수동태의 삶이야말로 너의 지향점일 수 있다.

걷고 또 걷는 동안 많은 사람들과 엇갈려 지나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누구도 너의 자발적 고립을 뒤흔들지는 못할 것이다.

도심의 카페테라스, 콜로니알 광장, 그 인근의 영화관, 주민 공원의 솔숲, 주립 도서관, 동네의 미로 같은 골목들 그리고 다시 도심의 시가지. 너는 무작정 걸어다니며 그 일대를 멤돈다.

너에겐 어떤 목적지도 없다.

너에겐 어떤 이정표도 없다.

-p.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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