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능숙하고 주도면밀하기만을 요구하는 이세상의 참담한 재앙이자 낯선 국외자다.

너는 걷고 또 걷는다. 주민공원의 솔숲을 헤매고 다니기도 하고 주립 도서관의 서가들 사이에서 마냥 기웃거리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너는 많은 타인들과 엇갈려 지나친다.

카페테라스에 앉아있을 때는 비록 전혀 못 알아듣긴 하지만, 옆자리에서 나누는 대화의 말소리에 귀 기울여보기도 한다.

주립 도서관에서는 비록 한 줄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긴 하지만, 아무 책이나 뽑아들고 읽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부단히 누군가와 말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뭔가를 하고 있다.

그들은 자꾸 뭔가를 해야만 지금 여기서 숨쉬며 살고 있다는 실감에 이를 수 있는 것 같다. 오히려 네가 그런 타인들의 모습에서 역으로 확인하는 것은 부동 상태의 적요함이다.

그래서 너는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싶어한다. 오로지 최소화된 움직임 속에서만이 네가 추구하는 고립과 은둔의 평안에 다다를 수 있다고 너는 믿는다.

식물같은 수동태의 삶이야말로 너의 지향점일 수 있다.

걷고 또 걷는 동안 많은 사람들과 엇갈려 지나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누구도 너의 자발적 고립을 뒤흔들지는 못할 것이다.

도심의 카페테라스, 콜로니알 광장, 그 인근의 영화관, 주민 공원의 솔숲, 주립 도서관, 동네의 미로 같은 골목들 그리고 다시 도심의 시가지. 너는 무작정 걸어다니며 그 일대를 멤돈다.

너에겐 어떤 목적지도 없다.

너에겐 어떤 이정표도 없다.

-p.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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