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6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항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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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름다운 중단편 소설집.
톨스토이의 글을 읽으면 마음과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소설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죽음의 허무함과 욕심/허위에 대한 경계 같은 것들인데 이를 글로 풀어쓰는 능력이 기가 막히다.

톨스토이 하나 보고 시작한 러시아 문학의 길이, 중반에는 그를 부정했다가, 결국에는 톨스토이로 귀결된다는 걸 깨닫는 요즘이다.

특히 내가 이 책, 문학동네판을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번역의 자연스러움이다. 열린책들에서 나온 책도 갖고 있는데 같은 부분을 비교해보면 단연 문학동네판이 훨씬 더 감동적이다(특히 <알료샤 고르쇼크>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좋은 작품을 한국어로 읽게 해주신 이항재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당구 점수기록원의 수기>
마지막 주인공(네흘류도프)의 편지가 아주 기가 막혔다. 너무 아름답다.


<12월의 세바스토폴>
“의사들은 절단이라는 혐오스럽지만 유익한 일을 수행하고 있다. 당신은 날카롭고 구부러진 칼이 희고 건강한 몸속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볼 것이다. 그리고 부상병이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끔찍하고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면서 악담을 퍼붓는 장면을 볼 것이다. 또 조수가 절단한 팔을 한쪽 구석으로 어떻게 내던지는지도 볼 것이다. 당신은 같은 방에서 들것에 실려 누워 있는 다른 부상병이 수술받는 전우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육체적인 고통 때문이 아니라 수술을 기다리는 정신적 고통 때문에 몸을 웅크리고 신음하는 장면을 볼 것이다. 그리고 영혼을 뒤흔드는 끔찍한 광경들을 볼것이다.
당신은 군악과 북소리, 펄럭이는 깃발들과 말을 탄 장군들이 으스대며 등장하는 정연하고 아름답고 화려한 대열 속이 아니라 전쟁의 진정한 모습에서, 즉 피와 고통과 죽음 속에서 전쟁을 볼 것이다......”

미쳤다 정말.
군대 있을 때, 절도있는 행동과 짜여진 양식이 좋아서 군인을 진지하게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전쟁을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군인이 되려는 생각은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인가?
세바스토폴 연작이 나중에 <전쟁과 평화>로 발전된다고 한다.


<세 죽음>
죽음 하나는 언제 나오는 건지 궁금했는데, 마지막에 나오는 나무의 죽음이었다니. 결국 나무는 십자가가 된다.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캅카스의 포로>
긴박한 서술이 마치 스티븐킹 소설 보는 거 같았다. 예술성을 떠나서 순수 재미력으로만 봐도 톨스토이는 탑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우리의 앞날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고, 다만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사랑하며 사는 수밖에는 없다는 것. 그것을 이렇게 쉽게 표현해내다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만 든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아주 사소한 힘으로도 깨질 수 있는 도자기 같은 것. 그것이 삶이 아닐까 한다. 이 소설은 삶의 그런 연약함을 잘 표현했다.


<사람에게 많은 땅이 필요한가>
톨스토이는 1878~80년에 <고백>을 쓴 이후로 인생관이 달라지게 되는데, 이 소설과 앞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바로 그런 달라진 이후의 작품이다. 동화같은 단순한 형식과 내용으로 농민같은 보통 사람에게 삶의 지혜를 주려고 했다. 물론 지금의 우리에게도 그런 지혜는 여전히 전달된다.


<크로이처 소나타>
이 책에서 가장 별로였던 작품이다. 너무나도 자기독백적이라 지루하다. 결혼 혐오 정서가 현대적이라고 느껴진다. 주갤에서 좋아할 거 같다.


<악마>
특이하게도 결말이 두 개로 나뉘어져 있는 소설인데, 둘다 죽음과 관련돼 있다. 톨스토이는 작품을 죽음으로 끝내는 걸 참 좋아한다. 아마 어릴 적부터 죽음을 많이 보면서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서가 아닐까?

몹시 자전적 소설이라고 느껴지며, 실제로 아내의 질투가 두려워 꽁꽁 감춰둔 원고가 사후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평생 (육체적)욕심을 경계했는데, 작용-반작용의 법칙은 마음과 행동에도 적용되는 게 아닌가 한다.
강하게 주장하는 행동에는 반대되는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톨스토이는 금욕을 외쳤지만 그 안에는 주체할 수 없는 정욕이 있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더불어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무도회가 끝난 뒤>
무도회라는 연극이 끝난 뒤 가면이 벗겨진 인물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톨스토이의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허위에 대한 증오”가 느껴진다. 그렇다면 그는 허위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톨스토이의 도덕적 결벽주의가 무엇에서 시작된 건지 궁금하다.


<알료샤 고르쇼크>
짧지만 그래서 좋았고 너무 슬펐다.
이 책의 번역이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열린책들 판은 감동을 느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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