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적 마음 - 김응교 인문여행에세이, 2018 세종도서 교앙부분 타산지석S 시리즈
김응교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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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교 지음, 『일본적 마음』, 책읽는고양이, 2017.


가끔 가마쿠라의 맛차가 그립고, 시타마치에서 살 때의 다다미방 건초냄새가 코끝에 어른거리곤 한다. 그 그윽함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다. (21쪽)


(오디오클립 한주 한책 서평단 '시험안끝났다'입니다.)


오타가 없는 책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저자도 편집자도 다 사람이다. 심지어 이 서평에도 어디엔가 오타가 있을 것이다. 발견한다면 부디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길. 내용 이해에 전혀 지장이 없다면, 책에 오타 조금 있는 거야 독자 입장에서는 애교로 봐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평소에 책에서 오타를 발견할 때마다, 편집자를 책망하는 마음이 들기보다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잘 만든 책에서 '옥에 티'와 같은 그 오타. 아이고~ 편집자가 조금만 더 집중해서 책을 만들었으면 더 완벽한 책이 되었을 텐데, 안타깝다! ……. 그런데 이상하다. 이 책 『일본적 마음』을 읽으며 오타를 발견했을 땐 그런 안타까움을 잘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편집자를 책망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왜냐고? 이 책은 애초에 '옥'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해의 여지가 있으니 먼저 말하자면, 이 책의 내용은 참 좋다. 김응교 시인의 인문여행에세이. 저자의 글은 '인문서'와 '여행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단순한 여행 일지처럼 '어디어디에 놀러 가니 무엇무엇이 좋았다'라는 식으로만 글을 쓰지 않고, 저자는 더 나아가 일본의 문화와 역사를 탐구한다. 이를테면 도쿄 아사쿠라 거리에서 열리는 산쟈 마쓰리(축제)를 탐방하면서, 그곳 사람들이 왜 이렇게 그 축제에 열광하는지 분석하여 "어떤 동질성의 힘"이라는 종교적인 함의를 유추한다. 그러면서도 서술이 지나치게 분석적거나 딱딱하지 않다. 내용이 어렵지 않고 표현은 부드럽다. 역시 '시인답다'고 할 수 있는 문학적 표현들이 인상적이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냐? 『일본적 마음』은, 글은 좋지만 책이 못났다. 여기서 "못났다"라는 건 단순히 나의 기호에 따른 판단이 아니다. 이러한 판단은 '이 책이 독자를 얼마나 배려하지 못했는가?'라는 근거를 바탕으로 한다. 못난 부분이 무엇인지, 중대한 문제를 몇 가지 꼽아본다.



1. 펼침면 표제면과 그곳에 얹힌 그림

『일본적 마음』 1부 표제면. 출처: 인터넷 교보문고 미리보기


이 책은 크게 네 부로 나뉜다. 1예술, 2독서, 3사무라이, 4야스쿠니. 표제면(도비라, )이란 본문에서 이 네 가지 부를 구분해주는 면이다. 각 부가 시작하는 면이다. 위 사진은 1예술이 시작하는 표제면이다. 책을 쫙 펼쳤을 때의 좌우 양쪽 면을 다 사용하여 표제면을 구성하였다. 이렇게 좌우 양쪽 면을 다 사용한 경우를 펼침면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표제면은 오른쪽 면 한쪽만을 사용하고 왼쪽은 비워두는 편이지만, 이 책은 모든 부의 표제면에 펼침면을 시도했다. 아마도 커다란 그림을 한 면에만 담을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러한 시도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몇 가지 문제점이 발생한다.

표제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제목'이다. 표제면이라는 커다란 구분 이후에 나올 본문 내용을 압축하여 한 단어로 설명하는 제목. 표제면에서는 단연 이 제목이 돋보여야 한다. 그 외에 그림이나 글은 부차적인 요소다. 그런데 위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제목의 가독성이 떨어진다. 그 이유는? 펼침면에 얹은 그림 때문이다. 물론 그림과 제목 글자가 완전히 겹치지 않도록 신경을 썼지만, 그럼에도 글자 주변에 파도를 표현한 선이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이러한 경우 '디자인이 글자를 침범했다'고 말한다. 편집자는 디자인이 침범하지 못하는 글자 고유의 영역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오른쪽 페이지에서처럼 글자 주변에 박스를 친다든가 하는 방법으로 그림과 글자를 분리했어야만 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그림을 펼침면으로 얹었다는 점이다. 책은 여러 장의 낱장 종이를 책등 한 곳으로 묶어낸 물건이다. 따라서 책을 펼치면 가운데 책등 부분을 중심으로 종이가 둥글게 말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책에 펼침면으로 그림을 얹으면 그림의 가운데 부분이 심하게 왜곡되어 보이게 된다. 위 그림처럼 그림이 좌우 비대칭이면 그나마 이 왜곡을 신경쓰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3사무라이4야스쿠니의 표제면 그림은 가운데를 중심으로 좌우 대칭인 그림이어서 이 왜곡이 심하게 거슬린다. 책을 만들 때 편집자가 과연 이러한 왜곡을 신경썼는지 의문이다. 신경을 썼다면 표제면을 아예 펼침면으로 하지 않든가, 그림을 바꾸든가, 아니면 펼침성이 좋은 제본 방식을 사용했어야 한다. 아래 사진에 나오는 책처럼 말이다.


펼침성이 좋은 제본. 출처: 노바소울코리아


표제면의 문제는 아니나 여담으로 하나 더 지적하자면, 이 책의 본문 138~139쪽에도 펼침면으로 사진을 얹은 부분이 있다. 모든 페이지가 벚꽃 사진으로 꽉 채워져 보기 좋고 예쁘다. 그런데 문제는, 이 펼침면이 앞뒤 137쪽과 140쪽의 글을 뚝 끊어버린다는 점이다. 심지어 앞뒤로 끊어진 부분의 글은 일본 구 육군 보병가 가사이다. 노래 가사인 만큼 마치 시를 읽듯 천천히 그 뜻을 음미하면서 읽는데, 난데없이 커다란 사진이 펼침면을 가득 채워서 독서의 흐름을 방해한다. 꼭 이렇게 사진을 채워야만 속이 후련했는지 의문이다.


많은 가지에 가득 찬 사쿠라와 군복 깃의 색깔

사쿠라는 요시노 산에 피고 있는데 바람이 세차게 분다.

일본 남아로 태어났으면

싸우는 전쟁터에서 사쿠라처럼 져라

―일본 구 육군 보병가


2. 한자 병기의 문제, 일러두기가 없음

많은 책에는 '일러두기'가 있다. 독자가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참고하라고 편집자는 일러두기를 써 놓는다. 즉 일러두기는 편집자가 독자를 배려하는 글이다. 본문이 한글맞춤법을 따랐는지, 본문에 외래어가 많이 나온다면 외래어표기법을 따랐는지, 외국어 원어 병기가 많다면 그것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각주를 달았다면 그것은 저자의 글인지 번역자의 글인지 편집자의 글인지, 약물 기호가 많다면 그 기호들의 표기 원칙은 무엇인지. 이런저런 내용을 써주면서 독자가 본문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도록 하는 글이 바로 일러두기이다.

물론 일러두기가 없는 책도 많다. 일러두기가 없다면 단적으로 두 가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본문을 이해하는 데 일러두기는 필요 없다', '편집자가 독자를 배려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일본적 마음』은 어떨까? 나는 이 책에 일러두기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책에는 한자 병기가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이 책의 독특한 면은 일본어에 대응하는 한자와 우리말에 대응하는 한자를 구분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일본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름을 쓰고 옆에는 대괄호 '[]'를 써서 "[宮崎駿]"라고 쓴다. 한국인 신윤복의 이름을 쓰고 옆에는 소괄호 '()'를 써서 "(申潤福)"이라고 쓴다. 이렇게 일본어에 대응하는 한자는 대괄호를 쓰고 우리말에 대응하는 한자는 소괄호를 써서 병기한다. 일본과 우리나라가 둘 다 한자문화권에 속하므로 일본어와 한국어가 구분이 안 될 수도 있음을 고려한 듯하다. 여기서는 편집자가 맞춤법 원칙을 나름대로 개편하여 적용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본래 한자 병기에서 소괄호와 대괄호 구분의 원칙은 이렇다. 이를테면 '인간'이라는 한자어에 한자 '人間'을 병기하려고 한다면 소괄호를 써서 '인간(人間)'이라고 쓴다. 괄호 밖의 한글을 읽는 발음과 괄호 안의 한자를 (한국 사람이) 읽는 발음이 같다. 둘 다 "인간"이라고 읽는다. 반면에 '사람'이라는 고유어에 한자 '人間'을 병기한다면 대괄호를 써서 '사람[人間]'이라고 써야 한다. 한글맞춤법(2017-12호) 제7장에 나오는 대괄호 사용 원칙이다. 여기서는 괄호 안과 밖의 글자를 읽는 발음이 다르다. 앞서 본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라는 것도 괄호 안의 한자를 읽으면 "궁기준"이 된다. 이 책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응하는 한자를 대괄호를 사용하여 병기한 것이다.

사실 엄밀히 말해서 원칙을 그대로 준수한 건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이러한 시도는 좋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다면 그러한 시도를 했음을 일러두기에 적어두어야 했다는 점이다.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으나, 최소한 "일본어는 [ ]로 표기했으며 우리말 한자는 ( )로 표기했습니다."라는 말 정도는 써주어야 독자에게 혼란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하필이면 이 책에는 소괄호와 대괄호 구분에 실수한 부분이 많아서 더욱 혼란스럽다.

한자 표기와 관련해서 근본적으로 왜 구분을 했는지도 의문이다. 본문을 보면 "호쿠사이 만화(北齋漫畵)"처럼 일본어와 우리말이 동시에 있는 경우 이에 대응하는 한자를 그냥 소괄호로 통일하여 표기하였고, "맛차(抹茶 · 가루차)"처럼 일본어만 있더라도 거기에 우리말로 설명을 덧붙인다면 역시 그냥 소괄호를 사용했다. 이럴 거면 그냥 다 통일해서 소괄호를 쓰지 왜 굳이 따로 구분하여 대괄호를 썼을까.

그리고 "엔가쿠지[円覺寺]"처럼 일본어에 대괄호를 써서 한자를 병기할 때, 이 한자는 '고유어에 대응하는 한자'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어(엔가쿠지)에 대응하는 '한국식 한자'이다. 일본 인문여행에세이라면 '일본식 한자'를 쓰지 왜 한국식 한자를 썼을까. 일본식 한자는 신자체(新字体)라고 하여 한자를 약식으로 간단하게 쓰는, 간체자와 비슷한 것이다. "엔가쿠지[円覺寺]"를 보면 가운데 한자 '覺'은 '깨달을 각'자 인데, 일본식으로는 '覚'라고 쓴다. 만약 일본식 한자로 쓴다면 대괄호를 쓰지 말고 소괄호를 써서 '엔가쿠지(円覚寺)'라고 써야 한다.


가운데 한자가 ''이 아니라 ''이다. 출처: http://www.engakuji.or.jp



3. 쪽수 표기 위치

이 책은 쪽수를 각 쪽의 안쪽(책등에 가까운 쪽)에 표기한다. 사실 내가 이 책을 펼쳐서 가장 먼저 발견한 문제점이다. 보통 쪽수는 각 쪽의 바깥쪽(책등에서 먼 쪽)에 표기한다. 그런데 요즈음 나오는 많은 책이 이렇게 쪽수를 안쪽에 표기하곤 한다. 이러한 표기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독자를 배려한다면 쪽수는 바깥쪽에 표기해야 한다.


『일본적 마음』본문. 쪽수가 안쪽에 있다. 출처: 인터넷 교보문고 미리보기


왜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에 표기해야 하는가? 우선 본질을 이해하자. 쪽수의 의미는 무엇일까? 왜 책에 쪽수를 표기할까? 쪽수란 독자가 책의 내용을 참고·참조·검색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이 책에서 하이쿠(일본 시조)를 소개한 부분이 어디지?'라고 생각하며 그 부분을 찾고자 할 때, '아, 78쪽에 있었지'라고 쪽수를 기억하며 찾아간다. 이 책의 내용을 인용하고자 할 때도 당연히 쪽수를 파악하게 된다.

이러한 본질과 더불어 독자가 책을 읽는 자세도 고려해야 한다. 방금 든 예시에서처럼 독자가 책을 첫 장부터 찬찬히 읽어나가지 않고 어떤 특정 부분을 찾고자 할 때는, 책을 구태여 다 펴지 않게 된다.


쪽수가 잘 안 보인다.


이러한 자세를 상정한다면, 쪽수를 안쪽에 표기할 때의 문제점이 바로 보인다. 바깥쪽에 표기했다면 바로 볼 수 있는 쪽수가, 안쪽에 표기할 경우 보이지 않게 된다. 책의 물성, 앞에서도 언급한 대로 낱장의 종이를 책등 가운데로 묶어내어 종이가 안쪽으로 말려 들어간다는 특성 때문이다. 그냥 쫙 펴서 보면 되지 왜 이런 것 가지고 트집을 잡냐고? 쫙 펴서 보지 않아도 될 쪽수를 굳이 쫙 펴서 봐야만 하도록 책을 만든 것이 바로 독자를 배려하지 않은 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독자의 독서 자세와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생각해보자. 이 책은 과연 쫙 펴서 읽기에 적합한 책인가? 나는 독서 자세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책상 앞에 차분히 앉아 읽기',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조금씩 읽기.' 전자의 경우는 학술서, 전공서, 사전 등 담은 정보가 많고 심도 있게 공부해야 하는 책을 읽는 자세이다. 이러한 책들은 책상에 두고 읽는 만큼 쫙 펴서 읽어야 하고 책이 저절로 잘 펴져야 한다. 이러한 책들은 대체로 사람이 손으로 받치거나 고정하며 읽기에는 무겁고 크다. 반면에 후자의 경우는 교양서, 여행서, 만화책 등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드는 책을 읽는 자세이다. 이러한 책들은 쫙 펴서 읽기에 적합하지 않다. 두 손 혹은 한 손으로 가볍게 들고 보는 이런 책들은 오히려 쫙 펴지면 읽기에 방해가 된다.

『일본적 마음』은 전자와 후자 중 어디에 속하는가? 당연히 후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조금씩 읽기'에 적합한 책에 속한다. 기본적으로 이 책의 분야는 '여행에세이'다. 말 그대로 여행을 다니면서도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수필이다. 그리고 이 책은 아주 아담하다. 내 코트 주머니에도 쏙 들어가며 들고 다니기 편하다. 이 책은 책상 앞에 앉아 찬찬히 공부하며 읽는 책이 아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지만 책의 제본 방식도 쫙 펴지지 않는 제본(일반무선제본)이다.

이 책이 후자의 경우에 속함을 보여주는 근거는 이렇게 다양하다. 그렇다면 더더욱 쪽수의 위치에 신경을 써야 했다. 쫙 펴서 읽기에 적합하지 않은 책을 억지로 쫙 펴서 읽도록 만드는 편집은, 독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다. 물론 이 책의 편집자가 정말로 아무 생각도 없지는 않은 듯하다. 자세히 보면 이 책의 안쪽 여백이 바깥쪽 여백보다 넓다. 이 책이 쫙 펴서 읽기에 적합하지 않고 종이가 안쪽으로 더 많이 말려 들어간다는 점을 고려한 편집이다. 그런데 어째서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을까? 아니면 모르는 척을 한 것일까? 독자의 입장에서는 의문만 남는다.


지금까지 여러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이 외에도 문제는 더 있다. 오타가 너무 많은 점, 한자 표기가 과하다는 점, 원어 병기가 과하다는 점, 작은따옴표 사용이 과하며 전각으로 썼다는 점, 출처 표기가 이상하다는 점, 글자 크기가 너무 작다는 점……. 나는 고양이를 참 좋아하는 사이버 집사인데 '책읽는고양이'는 좀 싫어질 듯…?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사실관계의 오류다. 이게 정말 심각한 문제인데 여기서 따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내가 정확한 사실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볼 때 이 책에는 몇몇 부분 잘못된 정보가 았다. 그 부분은 내가 출판사에 따로 문의했다. 과연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는지 없는지, 다음에 판단하도록 하자. 이 책을 아직 안 읽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고 그 오류를 발견해보길 바란다. 그러면서 책이 언제나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음을 깨닫길 바란다.

이 책에 관해 계속 안 좋은 소리만 해서 미안하다. 저자 김응교 선생님께 미안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정말 좋다. 어렵지 않고 재미있다. 일본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 일본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일본적 마음』은 정말 좋은 글이자 못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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