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 벌타령 우리문화그림책 온고지신 2
김기정 지음, 이형진 그림 / 책읽는곰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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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상도동엔 '장승배기'역이 가까이 있다.

동작도서관이 바로 장승배기역 근처에 있어서 가끔 아이들 손을 잡고 지나갈 때면 길가에 서 있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보고,

"엄마, 장승은 왜 저렇게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어요?"하고 물어본다.

내가 어릴 때 외갓집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장승을 보고는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도망가던 때랑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이다.ㅎㅎ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니 작가의 말마따나 장승의 모습이 정겹고, 심지어 차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도 장승이 늘어선 곳이 보이면 꼭 내려서 사진 한 컷이라도 찍고야 만다.

나도 모르게 장승을 좋아하고 있었나 보다.ㅋㅋㅋㅋ

이 책을 읽고 나면, 아마 어른인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장승이 험악한 인상과는 달리 어딘지 모르게 정이 느껴져서 좀더 친근한 존재로 여기질 것이다.

 

밥만 먹고 잠만 자는 게으름뱅이 가로진이가 엄마의 잔소리에 나무를 하러 가서는 나무 대신 장승을 뽑아 지게에 지고 오자, 억울한 장승의 하소연을 들은 전국 팔도의 장승들이 몰려와 가로진이를 벌한다는 간결한 내용이다.

그럼에도 쉽고 짧은 이 이야기를 읽고는 책을 몇 번이고 읽으며 입가에 웃음을 짓게 된다.

그건 맛깔스런 구어체 문장과 상황의 생생함을 살려주는 적절한 흉내말, 팔도 장승들이 돌아가며 한 마디씩 내뱉는 구수한 사투리 등이 읽는 재미를 두 배로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너무나 해학적이고 유머러스한 동양화 그림은 정감이 뚝뚝 넘친다.

첫장면에서 "아들아, 아들아, 징글징글 미운 내 새끼야! 산에 가서 나무 한 짐 해 와야 밥 주고 재워 줄 테다."하고 윽박지르는 엄마의 모습은 영락없이 우리 엄마가 나에게,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윽박지를 때의 모습과 똑같아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엄마의 꾸중에 아랑곳 없이 지게를 옆에 팽개쳐 두고는 팔자 좋게 드러누워 개떡을 꿀떡꿀떡 삼키는 가로진이의 천하태평스런 모습 역시 얼른얼른 학교 갈 준비해야 하는 바쁜 아침에 느긋하게 딴청부리며 서두르지 않는 우리 아들 녀석의 모습이다.ㅋㅋㅋ

 

마을 어귀에 서서 못된 귀신을 막아주는 험악한 장승들의 모습도 무섭고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려고 하지만, 한편으론 게으름뱅이 가로진이에게 속수무책으로 뽑혀 지게에 묶여 눈물을 질질 흘리거나 갖가지 익살스런 표정들로 자기 의견을 말할 땐 위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래서 장승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가로진이의 온몸에 병을 칠하고 가버리자,

"아들아, 아들아, 내 살붙이 예쁜 아들아! 어쩜 좋으니?"하고 통곡하며 장승을 찾아가서 지극정성으로 병이 낫기를 비는 엄마의 모성애에 감동받아 못이기는 척하며 병을 낫게 해 준 것이리라.

심지어 주렁주렁 달린 게으름까지 싹~낫게 해주었으니 말이다.ㅎㅎ

 

두 세번 되풀이해서 책을 읽은 아들이 그림만 휘리릭 훑어보더니 하는 말이,

"엄마, 가로진이가 부지런해지더니 결혼해서 아이도 나았나봐요."한다.

옛이야기 읽기의 참 즐거움을 글만이 아니라, 그림을 보는 일에도 집중해서 제대로 읽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자꾸 볼수록 장승과 가로진이가 살고 있는 집과 산골 마을이 눈에 쏙쏙 들어와 이 책에 풍덩 빠지게 된다.

 

책 뒤에 실린 부록 '장승이 보낸 편지'는 장승을 부르는 여러 가지 이름과 장승이 하는 일, 장승이 세워지는 과정, 속담이나 수수께끼 등 우리 곁에 남아있는 장승의 이야기 등에 대한 정보를 편지 형식의 입말로 자연스럽게 전해 준다.

단순한 정보만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이 부록만으로도 한 편의 작품을 보는 듯하다.

 

옛이야기가 갖추어야 할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유쾌한 책이다!

 

다음에 도서관을 갈 땐, 길가에 심심하게 서 있는 장승에게 정말 손이라도 흔들어 줘야 할 것 같다.

그럼 살짝 윙크라도 해 주지 않을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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