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쪽빛그림책 2
이세 히데코 지음, 김정화 옮김, 백순덕 감수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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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위엔 유난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그 중 한 사람은 '책'과 과련된 책을 수집하기도 한다.

유아용 그림책부터 성인용 책까지 그 분야를 불문하고 소재가 '책'이라면 눈에 광채를 내뿜으며 반가움을 숨기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 순간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를리외르'.

이름조차 생소하고, 부르기조차 어려운 낱말이다.

그런데도 고작 56쪽밖에 되지 않는 이 그림책을 읽고 나면,,,,

그 감동의 무게는 몇 백쪽이 넘는 두꺼운 책을 보고서 그 이름을 되내인 것처럼 뇌리에 콱~박히게 된다.

 

무엇이든 '빨리 빨리'를 외치며 하루가 다르게 전통과는 거리가 멀어져 가는 우리의 안타까운 문화적 분위기와 달리,

파리의 어느 뒷골목에서는 지금도 조용히 낡은 책을 다듬고 고치는 를리외르 아저씨가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다.

 

초등학생인 딸아이가 얼마 전 사회 숙제로 직업의 종류에 대해 조사해 간 적이 있는데,

이 책을 읽고는 "그럼 낡고 헤진 책을 다듬어서 새 책을 만들어 내는 사람의 직업으로 '를리외르'를 넣어야겠네요."라며 특이한 직업이라고 감탄을 했다.

아마 책을 좋아하는 딸은 선생님이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가?"라고 꿈을 묻는다면,

또래 아이들에겐 참으로 낯선 "를리외르."라고 대답하며 한껏 멋드러지게 '를리외르 아저씨'를 떠올리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 보았다.

 

새롭게 책을 제본하는 전과정이 조잘대며 호기심을 잔뜩 드러내는 어린 소피의 물음에 답해 주는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고,

나무옹이처럼 거친 손에는 대를 이어 섬세한 작업을 해온 장인의 고귀한 숨결이 그대로 담겨 있다.

좋은 책이 세대를 넘어 독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처럼,

좋은 책을 새롭게 제본하는 를리외르의 정신은 세대를 이어서 전해지는 것 같다.

 

어떤 일이든 그 일에 온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 전념하면 '장인'이란 호칭이 주어지는 것과 같이

책 속의 를리외르 아저씨는 진정한 장인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다.

 

작은 소녀 소피가 팔랑거리며 골목을 누비고 찾아와 자신이 아끼는 낡은 식물 도감을 내밀 때,

아카시아 나무를 보며 세상 나무를 다 보러 다니고 싶다는 예쁜 꿈을 얘기할 때,

이미 소피를 나무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미래의 식물학자로 이어준 것은 를리외르 아저씨였다.

 

소피가 좋아하는 숲 색깔로 속지를 만들고, 금박으로 겉표지에 예쁜 이름을 박아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멋진 자신의 책을 새롭게 탄생시켜 준 를리외르 아저씨의 긍지와 정열이

어린 소녀의 꿈으로 전해진 것이리라.

 

가죽 안쪽을 둥근 칼로 조심스럽게 갈아내고 바늘로 꿰매는거친 를리외르의 두 손!

겉표지 속엔 감춰진 파란색 보드 칠판 위에 슥슥 분필로 거칠게 데생한 듯한 를리외르의 아름다운 손을

겉띠지로 꼭꼭 감추어둔 것이 마냥 못마땅하다.

과감히 겉띠지를 벗겨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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