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처음 세계사 수업 -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브렉시트까지, 하룻밤에 읽는 교양 세계사 인생 처음 시리즈 2
톰 헤드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은이 톰 헤드는 어바웃닷컴(현 닷대시)에서 9년간 시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글을 기고하고 철학과 대중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인문교양 유튜브 채널 와이즈크랙에서 작가로 일했다. 현재 프리랜서 작가로 대중에게 역사를 쉽게 알리고자 힘쓰고 있으며 최근 미국에서 주목받는 역사 스토리텔러라고 출판사는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지난해 출간된 인생 처음 철학 수업에 이어 현대지성에서 펴내는 인생 처음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원서는 2017년에 나왔다. 책의 부제처럼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브렉시트까지를 다루고 있다. 



 고대, 중세, 근대, 현대 4개의 장으로 나눠 각 시대별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 고대에서는 히타이트 제국, 올메카 문명, 쿠시 문명, 아소카 황제를 처음 알게 되었다. 중세에서는 종교 갈등을 조금 비중 있게 다룬 부분이 현재까지 이어지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의 갈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근대부터 현대는 제국의 팽창과 쇠퇴, 독립 혁명, 산업 혁명과 1,2차 세계대전, 냉전 시기의 이념적 갈등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여성 운동의 시작과 진행을 포함한 부분도 좋았다. 20세기 후반의 정치 경제 이념과 이란 민주주의 퇴보의 계기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향후 세계 뉴스를 접할 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뒤표지에 책의 핵심 장점이 잘 드러나 있다.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쉬운 입문서로 생생한 컬러 이미지로 세계사의 핵심 장면을 선명하게 살필 수 있다. 서양 중심이 아닌 동서양 역사를 균형 있게 다루었다고 했지만 서유럽 중심이 아닌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를 포함한 정도의 느낌이었다. 동아시아를 다룬 부분은 역시나 분량이 적었다.



 컬러 도판이 많이 실려 있는 부분은 좋았다. 도판 출처에 퍼블릭 도메인은 따로 표기하지 않았다고 명시했는데 회화 작품의 경우 화가 이름을 추가로 실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그린 화가가 있다면 그 작가의 작품을 찾아보면서 세계사와 더불어 그 시기 미술사도 살펴보기 좋았을 것 같다. 물론 거기까지는 이 책의 주제를 넘어가는 일이니 그냥 희망 사항으로 남겨둔다.



 하나 아쉬운 점은 색인이 없다는 점이다. 여러 번 언급되는 인물과 지명이 있는데 세계사를 처음 접할 입문자에겐 헷갈리기 쉬운 부분이어서 ’이게 그때 그 사람 맞나?‘ 확인차 책장 앞뒤를 옮겨 다니기가 조금 번거로웠다. 입문서여도 다루는 범위가 방대한 책은 색인을 꼭 실어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마지막으로 남긴다.




추천하고픈 사람

인생 처음 철학 수업을 흥미롭게 읽은 독자

주말 동안 가볍게 세계사를 훑고 싶은 독자

도판이 많은 역사책을 선호하는 사람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 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 - 현대 문명의 본질과 허상을 단숨에 꿰뚫는 세계사
수바드라 다스 지음, 장한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저자인 수바드라 다스Subhadra Das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과학사와 철학사를 전공하고 현재 동 대학교 박물관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과학적 인종주의와 우생학의 역사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를 중심으로 연구하며 권력이 조작하고 숨긴 역사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은 저자가 펴낸 첫 책이다. 세계사를 사건 또는 인물 중심으로 펼치지 않고 상식처럼 널리 퍼져있는 개념과 생각을 중심으로 풀어내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고 소개하고 있다. 나 역시 당연한 통념 이면의 숨은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지 묻는 책 소개에 큰 흥미를 느꼈다.




‘역사적인 주장을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역사학자의 역할’(16쪽)이기에 저자는 그간 서양이 만들어 낸 ‘문명’과 그것을 떠받친 온갖 이상과 진보적 가치들 중 널리 알려진 10가지를 뽑아 분석한다. ‘서양 문명이란 현실을 누르고 브랜딩에 성공한 사례’(17쪽)이자 단순한 결과물이 아닌 ‘문명화라는 사명’을 내세운 식민 국가들의 비전이자 변명에 불과했음을 밝혀나간다.



문명화된 그 모든 것들의 반대편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비문명적인 사물과 사람이 있다는 의미다.


수바드라 다스 『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 (2024, 북하우스) p.12



저자가 몸담고 있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교육용 박물관 저장고에 있는 한 철제 상자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과학이라는 굳건한 요새 뒤에 숨은 인종주의, 우생학을 조명하고 식민국가의 잔인한 토벌과 노예제, 계급의 역사를 살핀다. 고전이라는 것을 정하고 그 가치를 추켜세워온 인물들이 사실상 백인 남자들 분이었다는 사실을 짚는 것도 잊지 않는다.




교육이라는 정신적 종속, 알고 보면 평등한 적 없던 법, 소수의 기득권만을 위한 정치, 과학적 경영의 탈을 쓴 착취, 국민의 선별적 보호와 배제, 예술과 문화제 독점 등 자신들이 곧 세계의 기준이자 선두의 ‘문명’이었기에 침략하고 지배할 권리가 있다고 맹신한 백인들의 자기 세뇌가 불러온 처참한 결과와 현재를 보여준다.





자신만의 이미지 속에서 문명을 일굴 때면, 다른 문화에 있는 흥미롭고 가치 있는 것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심각하게 희생되는 것 같다. 


수바드라 다스 『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 (2024, 북하우스) p.115




저자는 서구 열강이라는 제국과 약하고 운이 없었던 피식민지의 구도로 이야기를 전달하지 않는다. 강자와 약자의 대비를 강조하는 서술 방식은 강자가 남용한 권력의 힘을 부각하여 비판에 더욱 힘을 실으려는 의도와 달리 자칫 결과에 대한 정당성 부과라는 왜곡된 결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서양 문명을 비판하며 취하는 태도는 ‘너희 정말 잔인하고 무섭구나.’ 라기 보다 ‘너희 정말 한심하고 안타깝다.’에 가깝다. ‘뭐라도 되는 양 어깨에 힘주면서 온 동네를 들쑤시고 다니더니 정말 생각도 짧고 시야도 좁구나. 그렇게 오만 잘난 체는 혼자 다하더니 아주 그냥 깡그리 망쳐놨구나.’라는 톤으로 읽혔다.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이 책의 원제는 『Uncivilised : Ten Lies That Made the West』 이다. 책의 내용도 ‘문명’의 주인이 누구이고 누가 그것으로 이득을 얻는가, 누가 문명을 주입하고 세계 곳곳에 그럴싸한 브랜드로 자리 잡도록 주도했는가를 반복해서 지적하고 있다. 문명과 야만 같은 대립이 자주 등장하며 그 자체가 책의 주요 키워드다.






한국어판 제목은 원제의 부제를 그대로 옮긴 격이다. 『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 - 현대 문명의 본질과 허상을 단숨에 꿰뚫는 세계사』 라는 한국어판 제목과 책등에 적힌 부제를 보고 든 첫 인상은 ‘참 길다.’ 였다. 저자의 의도를 최대한 상세히 전하고픈 의도였을까? 나는 제목이 아쉬웠다.




일단 원제만큼 머리에 선명하게 남지 않는다. ‘세계를 움직인’이라는 수식 또한 왠지 낡은 인상을 준다. 딱 저 문구로 인터넷 서점에 검색해서 나오는 책들의 표지와 출간 연도를 살펴보시라. 책장을 펼치기 전부터 진부한 느낌이 감돈다. 제목도 표지 디자인도 원작의 개성을 살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24년 2월에 발간된 책이 이렇게 금방 번역되어 나온 것에 놀랐다. 시의성이 중요한 책이어서 서둘러 내놓은 것일까? 그럴만한 이슈가 무엇이 있나 돌아보았으나 잘 모르겠다. 빠르게 선보이느라 제목과 표지 디자인은 양보할 수 밖에 없었나? 책의 내용이 좋은데 너무나 눈에 띄지 않는 옷을 입고 있어서(온통 빨간색으로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다.





책은 서양의 악행과 만행을 고발하는데서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의 잘못된 행동을 거울삼아 지금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그동안 간과했던 진실을 깨달은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세상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앞으로 지향해야 할 행동은 무엇인지 독자에게 여러 질문을 남긴다.




나는 특히 고유의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간 민족들의 얘기가 와닿았다. 그저 표현하고 전달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인데 서양 문명이 일방적으로 부여한 야만과 미개라는 낙인 아래 세상을 떠난 사람들.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검토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미지의 선택지들이 궁금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내가 귀 기울여야 할 곳은 어디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었다.



추천하고픈 사람


모름지기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인생을 착실하게 살아왔다 자부하는 사람

박물관과 미술관을 자주 찾는 문화 애호가

민주주의의 부작용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

세계사 비화를 즐겨 읽는 사람

개인의 노력만으론 결코 넘지 못할 벽을 느껴본 사람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 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 인생에 클래식이 있길 바래 -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우리가 사랑한 작곡가와 음표로 띄운 37통의 편지
조현영 지음 / 현대지성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피아니스트이자 작가, 예술강의기획 아트앤소울 대표인 조현영은 2016년에 펴낸 『조현영의 피아노 토크 – 클래식을 즐기는 여섯 가지 방법』(다른)를 시작으로 최근까지 꾸준히 클래식 감상과 음악 교육에 관한 책을 써왔다.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조현영의 올 어바웃 클래식>을 진행하고 있으며 2023년에는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명강사로 선정되었다.



  『네 인생에 클래식이 있길 바래』는 그의 여덟 번째 책이다. 조금이라도 클래식에 관심이 있거나 강의를 통해 접한 분이라면 이미 친숙한 이름이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나는 클래식에 무지한 편이라 이번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저자의 활동 이력과 펴낸 책을 살펴보니 타깃 독자의 범위 또한 넓어 보였다. 음악실에서 클래식을 처음 접하는 십 대 학생, 교양 삼아 클래식 상식을 쌓고 싶은 초심자 대상의 입문서 뿐만 아니라 심도 깊게 서양음악사를 파악하고픈 독자를 위한 책도 펴냈다.



  이 책은 그저 친숙한 클래식으로 독자를 유혹하는 책이 아니다. 20년차 피아니스트이자 클래식 인문학 강의를 이어온 저자가 음악과 인생에 대한 생각을 펼쳐놓은 책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먼저 해야만 하는 일을 묵묵히 해내야 하는 것을 음악을 통해 깨우쳤다’(12쪽)는 저자는 이처럼 음악과 동행하는 인생에서 얻은 삶의 세밀한 통찰을 독자에게 건넨다.







  책은 클래식을 처음 접하는 이를 위한 1장, 인간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2장, 사랑, 일과 성공을 다룬 3장과 4장, 취향을 가꾸는 법을 전하는 5장, 클래식을 더 깊이 있기 즐기기 위한 추가 해설이 포함된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주제와 어울리는 일화가 있는 작곡가들의 사연과 저자에게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음악들을 소개한다. 음표로 띄운 추신에서 작품의 뒷이야기와 감상법과 더불어 바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QR코드를 제공한다.



  이는 최근 출간되는 책에서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예전엔 클래식 입문서를 읽어도 음악을 들으려면 음반을 직접 사서 들어야 했다. 그런데 음반을 사서 들으려고 해도 오케스트라별, 지휘자별, 연주자별로 어찌나 종류가 많은지 뭘 선택해야 할지 도무지 기준을 잡을 수 없어 포기하기 일쑤였다.



  이 책에선 저자가 직접 고른 클래식 실황 영상과 앨범 수록곡을 QR코드를 통해 들을 수 있다. 유튜브에서 양질의 음악을 바로 들을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세상인가 또다시 감탄하게 된다. 재생목록에는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연주자들의 연주도 대거 포함되어 있다.





  음악을 직접 검색하고 고르는 걱정에서 해방된 독자는 좀 더 여유롭게 클래식과 삶에 관한 저자의 시선을 주목할 수 있다. 클래식은 집중과 침묵이 필요한 음악이다. 상념을 잠시 잊게 만드는 몰입의 순간은 흡사 명상과 같다. 작곡가의 힘든 위기를 반영하듯 구성된 악장별 감상을 접하면 길고 따분하기만 했던 음악에서 삶을 한 장면을 발견하게 된다.



  ‘도대체 왜 클래식을 들어야 하나?’ 묻는 사람에게 오랜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은 고전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말은 어쩐지 해묵은 변명처럼 다가온다. 문학도 그렇고 클래식 음악도 그렇고 고전을 권하는 사람들의 추천사는 왜 항상 판에 박힌 소리 뿐일까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사실 저 ‘세월이 검증한 가치’라는 건 몇 마디 말로 설득할 수도 없거니와 고유한 개인의 경험은 누구도 온전히 전달할 수 없기에 택한 최선의 대답이 아닐까. 각자 지금 처한 환경과 접한 시기에 따라 매번 다른 감정을 자아내는 복잡한 매력이 있으니 그저 직접 읽어보라 직접 들어보라 권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여전히 1시간에 가까운 긴 곡을 집중력을 유지하며 듣기란 쉽지 않지만 인생이든 사람이든 음악이든 익숙해지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을 믿고 이제부터 천천히 다가가 보는 건 어떨까. 관심은 있지만 바빠서 직접 찾아볼 여력이 없다면 책의 후반부에 실린 수록 리스트와 추천 목록을 전부 모은 통합 재생목록을 들어봐도 좋다.



추천하고픈 사람

음악 수행평가 이후 클래식과 담쌓은 사람

클래식 음악 제목을 못 읽는 사람

클래식 음악 공연이 왠지 불편한 사람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 영상을 못 본 사람

검색도 귀찮다! QR코드로 바로 추천 음악을 듣고 싶은 사람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까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직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학문 현대지성 클래식 57
막스 베버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막스 베버는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로 카를 마르크스, 에밀 뒤르켐 등과 함께 현대 사회학을 창시한 사상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 책은 뮌헨 대학 총장의 초청으로 사회적 자유주의 또는 좌파적 자유주의 성향의 학생단체인 자유학생연합이 주최한 “직업으로서의 정신노동”이라는 주제의 대중 강연회에서 두 번에 걸쳐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1917년 11월 7일에,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1919년 1월 28일에 행해졌다.



  베버는 제1차 세계대전 패배와 독일혁명 발발, 독일 제국 붕괴와 공화국 수립으로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진 가운데 새 시대의 나아갈 길을 제시해 주길 간절히 바라는 독일 젊은이들 앞에 섰다. 베버는 “예언자”나 “구세주”를 찾는 이들에게 학문의 책무와 정치에 책무에 대해 논한다.




  1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는 정치와 국가, 지배의 내적조건과 외적조건을 분석한 후 근대국가에 등장한 직업 정치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 직업 정치가의 여러 유형과 근대 전문 관료층의 발전, 군주와 의회, 전문 관료와 정치 관료의 차이를 논한다. 근대 정당 출현과 최근 정당 구조를 살피며 영국과 미국의 사례를 토대로 독일의 현재를 진단한다.



  베버는 직업 정치가의 내적 조건으로 열정, 책임감, 안목을 꼽는다. 이어지는 정치 본령으로서의 윤리를 다루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정치와 절대 윤리,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 정치와 종교 윤리 부분은 조금 까다로운 부분이었는데 옮긴이가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과 인용된 사례의 배경을 각주에 상세히 실어주어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 전쟁은 끝남과 동시에 적어도 도덕적인 논란도 종결되어야 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윤리 문제가 아니라, 오직 냉철한 현실 인식과 고결한 기사 정신, 그중에서도 특히 품위를 지키고자 하는 태도입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학문』 (2024, 현대지성) p.104~105




윤리를 지향하는 모든 행위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원칙 중 하나를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즉, 모든 행위는 신념 윤리를 지향할 수도 있고 책임 윤리를 지향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신념 윤리에는 책임이, 책임 윤리에는 신념이 결여되어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이 신념 윤리에 속한 원칙을 따라 행동하는 것―종교적으로 표현하자면 “기독교인은 옳은 것을 행하고, 결과는 하나님에게 맡긴다”―과 책임 윤리에 속한 원칙을 따라 행동하는 것―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예견 가능한)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르고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학문』 (2024, 현대지성) p.109~110




(...)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삶의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할 줄 아는 훈련된 시각과 그 현실을 견뎌내고 내적으로 맞설 수 있는 능력입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학문』 (2024, 현대지성) p.128




  2부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의 외적, 내적 조건을 알아보고 진보 과정으로서의 학문의 의미, 교수와 지도자의 차이,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의 구분, 학문의 역할과 한계에 관해 논한다. 



  베버는 대학교수가 강의실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입장 표명을 피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서로 다른 질서들이 싸우고 있는 이 세계에서 특정한 실천적 입장을 학문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대학교수가 강의실에서 왜 이 두 가지를 모두 해서는 안 되는지 묻는다면, 예언자와 대중 선동가는 강의실의 강단에 서서는 안 된다고 대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언자와 대중 선동가에게 거리로 나가서 대중 앞에서 말하라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즉, 누구나 비판할 수 있는 곳에서 말하라는 뜻입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학문』 (2024, 현대지성) p.177




모든 쓸모 있는 교수의 첫 번째 책무는 자신의 학생들에게 그들의 당파적 견해에 불리한 사실들을 인정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학문』 (2024, 현대지성) p.179



자신과 생각이 다른 수강생들이 있을지 모를 강의실에서 침묵하도록 강요받는 수강생들 앞에서 교수가 자신의 신념을 일방적으로 피력하는 것은 용기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울 정도로 너무나 쉽고 편안한 일입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학문』 (2024, 현대지성) p.187



  옮긴이 박문재의 해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시대 상황과 막스 베버의 삶에 대한 배경이 부족한 독자들의 빈 공간을 꼼꼼하게 채워준다. 사회·정치적 배경, 사상적 배경, 당시 독일의 상황을 설명하고 베버의 삶과 저작, 사상에 대해 간추린 후 『직업으로서의 정치』와 『직업으로서의 학문』 개요가 이어진다. 주요 항목별로 알기 쉽게 요약되어 있어 본문을 읽은 후 자신이 파악한 내용과 비교하며 정리하기 좋다.



  2018년에 나온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이어 이번 책도 박문재 번역으로 나왔다. 현대지성클래식 시리즈에 박문재 번역이 많은데 그간 매끄러운 번역으로 그의 작업에서 만족을 느낀 독자라면 이번 책에서도 같은 만족을 느낄 것이다.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까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있는 힘껏 산다 - 식물로부터 배운 유연하고도 단단한 삶에 대하여
정재경 지음 / 샘터사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 정재경은 매거진 에디터, 뷰티 브랜드 마케터를 거쳐 현재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더리빙팩토리'를 운영하고 있다. 브런치에 연재했던 식물 200여 개를 돌보며 변화해가는 삶을 다룬 글이 추천작으로 선정되어 우리 집이 숲이 된다면(2018)을 출간했다. 첫 책 이후로 꾸준히 식물과 삶에 대한 책을 펴내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월간 <샘터>'반려 식물 처방'이라는 주제로 33개월 동안 연재했던 글을 바탕으로 엮은 것이다. 저자는 지난 7년을 돌아보며 식물에게서 스스로 사는 법, 자기주도적인 삶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식물을 곁에 두기 시작하면서 깨달은 삶의 통찰, 식물이 연이 되어 만난 사람들과의 일화, 글쓰기에 대한 헌신과 노력, 꾸준히 이어온 도전을 향한 응원 등을 담고 있다.


 

책은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과 2장은 비교적 제목과 실린 글들의 주제가 통일성이 있어 요약할 수 있었다. 1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싹을 틔우는은 '생명력'에 관한 이야기, 2장 우리에겐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는 식물과 얽힌 '사람들'과의 이야기로 읽었다.


 

3장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있는 힘껏 산다는 이 책의 제목을 품은 문장으로 문을 연다. 식물이 힘껏 생명을 이어나가듯 힘을 내보자는 의미를 내포한 글을 모은 것 같은데 여기서부터는 식물에 경탄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 정재경의 삶이 전면에 드러나는 듯하다. 식물의 존재감은 엑스트라로 수준으로 축소된다. 4장 우리는 함께 자란다는 읽으면서 무얼 말하고 싶은 건지 잘 정리가 되지 않았다. 식물은 제목에만 등장할 뿐이고 이어지는 일화들을 주제와 연결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정세랑 작가의 추천사 때문이었다. 정 작가가 어떤 기준에서 추천사를 쓸 책을 선정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정 작가의 소설을 감명 깊게 읽어왔기에 나름 신뢰와 호감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정재경 작가의 첫 책을 읽고 식물과 함께 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꾼 경험이 있다고 언급했기에 궁금했다. '생명들과 단절되어 고립된 현대인들에게 연결점을 다시 찾아주는 글을 쓴다.'라고 정리하기도 했다.


 

벌써 여섯 번째 책이라고 하는데 나에겐 이 에세이가 첫 책이었다. 작가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도서관에 첫 책 우리 집이 숲이 된다면도 찾아 읽었다. 취미/원예 카테고리의 책이고 좀 더 실용적인 목적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브런치에 연재했던 글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더 널리 알리고픈 의지가 곳곳에서 묻어났다. 실내 공간을 아름답게 채우고 있는 식물을 찍은 사진들도 감각적이다.


 

첫 책의 출간 시점을 생각하면 한국에 반려식물, 식집사 같은 말이 유행하기도 전에 앞서 플랜테리어 트렌드를 선도한 인물 같았다. 공간에 적합한 식물을 나름대로의 시행착오 끝에 정리한 부분은 그야말로 초보자들에게 유용한 꿀팁으로 가득했다. 자신의 경험을 전달하는 것에 작가 스스로가 신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책을 읽은 뒤 이 책을 다시 읽으니 느낌이 달랐다. 마감의 피로가 느껴지는 글이랄까.. 왜일까 주제가 좀 더 진지해져서일까. 아쉬웠다.


 

이것은 곁다리인데 있는 힘껏 산다를 읽는 도중 정세랑 작가가 공저로 참여한 책에 관한 에세이도 읽게 됐다. 거기서 우연히 그가 추천사를 쓰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이 의미 있으니 한 번이라도 들여다봐주세요하고 말을 거는 목적이라고 했다.


 

추천사가 책의 판매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함에도 계속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향 없음의 가뿐함 속에, 번거로운 애정을 쏟아보는 일이라고 말했지만 나처럼 내적 친밀감이 생긴 인물의 독서 취향에 대한 호기심으로 책을 고르는 독자도 있으니 아주 소용없는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알고 보니 정세랑 작가는 추천사를 꽤 많이 쓰는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름의 추천사 쓰기 기준도 세워두었다는데 나는 그동안 그가 뿌린 씨앗을 많이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그의 추천사를 쏙쏙 찾아내기엔 관심사가 협소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기대와는 달라 조금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다음번에 발견할 책에도 관심을 가져보려고 한다.

 


시간순으로 정리한 것인지 편집 과정에서 분리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연재한 글에 편차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부와 4부는 식물 에세이라는 테마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글로 다가왔다. '반려 식물 처방'이라는 주제 아래 잡지에 이런 글을 실었다니 조금 의아했다. 허나 에세이에 정해진 틀은 없으므로 후반부의 글은 식물로 촉발된 다양한 영감을 풀어놓는 시도로 보았다.


 

지금 내가 궁금하고 관심을 갖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이 책을 읽고 다가오는 감상이 다를 것이다. 내겐 1,2부가 좀 더 인상적이었지만 누군가에겐 인간적인 고민이 돋보이는 3,4부가 와닿을지도 모른다. <샘터> 연재 원고를 모은 것이라 각 글의 분량이 일정하고 읽기 쉽다는 점은 에세이라는 장르를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싶을 때 찾는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이다.


 

<추천하고픈 사람>

손에 들어오는 식물이란 식물은 족족 죽이는 프로 식물 암살단

삶이 고달플 때마다 자연을 찾는 사람

물가보다는 숲이나 산을 좋아하는 사람

식물을 가까이했을 때 겪게 되는 변화가 궁금한 사람

생물 다양성과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까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