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_2013년 봄

 

 

_사랑이란 생활의 결과로서 경작(耕作)되는 것이지 결코 갑자기 획득(獲得)되는 것이 아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한 번도 보지 않은 부모를 만나는 것과 같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는 까닭도 바로 사랑은 생활을 통하여 익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파주:돌베개, 1998), 22쪽.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 영화 속 유지태가 뱉어버린 한마디에 세상의 모든 보이(boy)들은 단결하여 울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울음이 그들 모두를 관통했다. 보이들은 그런 것이다. 좋게 말하면 순수하고, 그게 아니라면 순진한 존재들. 불꽃같은 사랑은 봄날 벚꽃 같음을, 그들은 모른다. 고결한 가치들은 영원의 영역에 속한 것이라 믿으며 살아버린다. 그들은 틀렸다. 모든 고결한 가치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다 대기권과 마찰하여 불타버렸다. 타다 남은 재만이 우리 손에 놓일 따름이다. 그토록 화려하던 사랑이 어느 순간 잿빛으로 발견되는 이유라면 이유다.

 

나는 남자고, 별 수 없이 보이였다. 내 눈에도 사랑은 빛나는 별꽃 같았다. 하늘로 기어오르기만 하면 딸 수 있는 별꽃. 관건은 ‘얼마나 공을 들여 그곳까지 기어오르느냐’였고, 그것만이 내 몫이라 생각했었다. 매번 있는 힘을 다해 기어올랐고, 후회하지 않을 만큼 땀도 흘렸다. 언젠가는 빛나는 꽃을 꺾어 쥔 적도 있었다. 굳은살이 터져 피가 된 손으로 꽃을 쥐었을 때, 여름밤 불꽃이 터지듯 기뻐하고 또 기뻐했다. 그제야 세상에 색깔이 입혀지는 것 같았다. 화려한 그 색들이 옅어지고 바래지리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보이였으니까. 보이에게 사랑은 획득이었으니까.

 

획득을 사랑의 전부로 알던 보이에게 벼락같이 날아든 문장이 바로 이것이다. “사랑이란 생활의 결과로서 경작되는 것이지 결코 갑자기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 나무 열매를 따먹던 원시인들이 곡식을 길러 먹기 시작한 사건을 우리는 신석기혁명이라 부른다. 그렇다, ‘혁명’. 획득에서 경작으로의 움직임은 가히 혁명이었다. 그렇다면 이 문장의 가르침은 왜 혁명이 아닌가? 그 문장은 적어도 이 한 명의 보이가 맨(man)으로 발돋움하는 디딤돌이 되어주었다. (물론 그 보이는 그 후에도 여러 번 혁명에 실패하여 투옥되고 고문당했다고 한다. 이 가련한 보이에게 부디 자비를.......)

 

인간이란, 시간을 살면서 영원을 사는 양 착각하는 존재다. 모든 고귀한 것들은 영원의 것이라 믿기에, 일회 획득 후 영원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오늘의 뜨거움이 내일도 여전하리라 믿는다. 하지만, 영원에서 시간으로 건너온 모든 것들은, 가만 두면 식고 또 바래진다. 어제 희망이었던 마음이 오늘은 절망일 수 있다. 밤새 굳게 믿었던 것들이 터오는 볕과 함께 증발해버릴 수도 있다. 소망도, 믿음도 이렇거늘 사랑이라고 별 수 있겠나. 하물며 구원조차 그럴지도 모른다. 가만 놔두면 흉하게 변할 것들을 곱게 가꿔가는 일, 그것이야말로 뒤틀린 우리 세상에서 은총 입은 인간의 몫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제목에 걸맞게 주옥같은 생각의 결정(結晶)들로 빼곡한 책이다. 저자 신영복 선생께서는 한 달 내내 머릿속으로 문장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가 일필휘지로 엽서에 옮기셨다고 한다. 한 달 혹은 그 이상을 현인의 머릿속에서 숙성된 생각들이어서인지, 깊고도 정갈하다. 굳이 눈비비고 달려들지 않아도 색색의 보석들이 곳곳에 반짝거린다. 단한가지 흠이라면, 책을 읽다가 한 번씩은 하늘을 올려다봐야한다는 점이다. 정신을 때리고 가슴을 울리는 생각들 앞에서, 숨도 고르지 않고 스스로를 돌아보지도 않을 재주 따윈 허락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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