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최전선 -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은유 지음 / 메멘토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의 끝에서 시작해 사람에게 닿다>


- 서평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지음, 메멘토, 2015)




‘다르다.’ 

책을 덮자마자 이 한마디가 떠올랐다. 


한 십여 년 전부터 글쓰기에 관심을 두었다. 나의 관심은, 누에가 실을 뽑듯, 가늘었으나 끊이지 않았다. 글쓰기 강좌에 참여했고, 쓰기를 가르치는 책도 몇 권 샀다. 글쓰기 책들은 공통의 문법을 소유했다. 글의 종류와 성격을 설정하는 방법(수필은 이렇게 사설은 저렇게라든지), 흐름과 구성을 조직하는 방법(도입은 이렇게 맺음은 저렇게라든지), 단어와 문장을 다듬는 방법(생생한 단어를 권장하고 번역 투의 문장을 질타한다든지) 등을 일러주는 식이었다.


이러한 글쓰기 책은 ‘우리는 왜 글을 써야 하는가?’ 정도의 질문으로 동기를 부여하며 시작한다. 반면 이 책은, ‘나(저자)는 왜 쓰기 시작했는가?’ 하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질문이 실존을 건드리는 만큼 답변의 농도도 진하다. “누구나 사노라면 거대한 물살에 떠밀려 가는 느낌이 들게 마련이다. 기를 쓰고 앞을 향해도 옆으로 저만치 밀려나 있기 일쑤다. 왜 내 뜻대로 살아지지가 않을까,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이게 최선이고 전부일까. 그러한 물음에서 나의 글쓰기는 시작되었다.”(5-6)


한마디로 저자의 글쓰기는 삶의 ‘최전선’에서 시작되었다. “삶이 굳고 엉킬 때마다 글을 썼”고, “막힌 삶을 글로 뚫으려고 애썼다.”(9) “지금 여기가 맨 끝”이자 “맨 앞”이라는 시구처럼, 최전선은 끝과 앞의 접점이다. 삶의 끝에서 시작된 글쓰기는 삶의 앞에서 삶을 인도했다. “우리 삶이 불안정해지고 세상이 더 큰 불행으로 나아갈 때 글쓰기는 자꾸만 달아나는 나의 삶에 말 걸고, 사물의 참모습을 붙잡고, 살아 있는 것들을 살게 하고, 인간의 존엄을 사유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23)


책 제목인 <글쓰기의 최전선>은 본래, 저자가 이끄는 글쓰기 수업의 명칭이다. 책 전반에 걸쳐 수업의 풍경이 등장한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합평(合評)한다. 학인(學人)들은 자연스레, 나와는 다른 삶의 이력과 마주하며, 나의 좁은 경계를 넓히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며, 과거의 고통에 직면한다. 결국, 자기의 언어를 갖는 데까지 도달한다. 써먹기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삶 자체를 건드리는 글쓰기. 그것이 <글쓰기의 최전선>이다. 


학인 중 하나는 그 수업을 이렇게 평가했다. “사람에 대해,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187) 그렇다면 ‘사람’과 ‘삶’을 성찰하는 쓰기는 어디에 당도할까? 대답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있다. 인터뷰 쓰기와 르포르타주 쓰기. 이것은, 나를 넘어 너에게 닿는 글쓰기, 너와 나를 연대하게 하는 글쓰기, 너와 내가 사는 세상을 고쳐 읽는 글쓰기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 <글쓰기의 최전선>이다. 게다가, 그 최전선에서 직접 썼던 학인들의 글을 실어 현장감을 더했다. 


정리하면, 이 책에는 ‘글쓰기의 철학’이 짙게 담겼다. 그렇다고 쓰기의 ‘기술’을 빠뜨리지도 않았다. 유려한 글을 위한 비기를 압축해서 전수한다. 그럼에도 다음과 같은 사람은 이 책에 실망할 것이다. 자소서 비법에 갈급한 사람, 글쓰기 책을 자기 계발서처럼 써먹고 싶은 사람, 글쓰기를 발판으로 명성과 돈을 구하는 사람. 반면 이런 사람은 이 책이 반가울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 ‘나’와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 삶의 끝에서 시작하여 사람에게 닿으려는 사람.


한마디만 더 하자. 저자는 부록으로 “글쓰기 수업 시간에 읽은 책들”을 소개해두었다. 시, 소설, 산문, 르포, 인문 등, 다양한 장르에서 60여 권의 책을 추렸다. 목록 자체도 빛나지만, 더 빛나는 것은 책마다 적어둔 서너 줄의 소개글이다. 예를 들어 백석의 시집은 이렇게 소개한다. “읽을수록 뭉클해지는 언어들의 성찬. [중략] 한 편씩 낭독하는 순간, 그곳이 고향이다.” 소개글을 읽으며 연신 인터넷 서점을 뒤졌다. 맛집 리스트를 확보한 사람처럼 달큼한 포만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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