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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0월
평점 :
라히리의 소설을 읽고 '이민자 문학'이라 부른 이가 있었다니 내심 놀랍다.
이 소설들은 어느 모로 보나, 비록 인도 출신 미국이민자 가정이 배경으로 등장하기는 해도,
이민자의 생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렵게 분석 같은 거 안 해도
이건 그냥... 인간의 숨은 욕망과 그로부터 빚어지는 오해, 노력, 실패, 비밀에 관한 이야기들인 걸.
첫번째 실린 단편 '일시적인 문제'를 읽으며 또 놀랐다.
대단히 잘 쓴 소설이구나. 정교한, 동시에 불필요한 꾸밈을 깨끗이 지워낸 정갈한 플롯.
두 번째 편 '파르자다 씨가 식사하러 왔을 때'를 읽으며 생각했다.
혹시 이런 게 줌파 라히리의 특기인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 그러나 드러내어 말할 이유는 없어서 결국 죽을 때까지 나만 알고 있어야 할 이야기.
바닥 아래 배관이나 벽 속의 전기선처럼
나의 특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저 '미묘한 감정'이라고 통칭될 뿐
전면에 부각될 일은 없는 숱한 심경의 변화와 경험들.
그러니까 라히리는 이런 그늘진 우리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전문가인가?
가히 '특기'라 할 만하다.
요즘 소설을 잘 읽지 않아서 이런 표현을 쓰는 게 좀 그렇지만
그래, 난 전에 이런 소설 읽은 적이 없다. (예전엔 소설을 많이...들입다...읽었었으니까.)
그리고 세번 째 '질병통역사'까지 읽고
책을 접었다.
줌파 라히리의 특기는 미묘한 감정의 숨은 부위를 들춰내고 거기에 독자들의 시선을 고집스레 고정시키는 것뿐이 아니라
감정의 이면에 도사린 욕망과 허망, 기대했던 것보다 항상 왜소해서 쓸쓸한 '나'라는 사람의 실체,
그 폐부를 찌르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읽는 내가 너무 아팠다.
책 읽을 시간이라곤 딸을 먼저 재우고 난 뒤의 한두 시간, 새벽에 눈을 뜬 한두 시간뿐이데
깊은 밤이나 어스름 새벽의 시간이란 고요하고 안락한 그대로 평안하게 남아 있어도 좋지 않은가.
이렇게까지 깊이 마음을 찔리며 괴로워 하고 싶진 않았다.
놀랄 만큼 잘 쓴 소설이다.
그래도 계속 읽고 싶지는 않았던 소설.
줌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