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 - 투쟁과 승리의 별 발도르프 교과과정 시리즈
하인츠 슈폰젤 지음, 정홍섭 옮김 / 푸른씨앗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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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 인물을 다룬 책들은 감동을 주는 고유의 영역이 있다.
허구인 소설이나 작가의 세계관을 유연하게 엿보는 에세이, 자연이나 사회를 주제로 하는 책들과는 구분되는 그만의 뚜렷한 영역.
거기에서 나는 종종 쉴 자리를 발견하곤 한다.
꿈에 부풀었다 죄절하고 스스로 미워지기도 하지만 어느새 희망을 안고 미지의 하루를 개척해가는 나.
책장을 넘기며 '나'와 같은 여러 사람의 다큐멘터리

-인생 그 자체를 숙독하는 즐거움에는 위안이 짙게 묻어난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그래 나도 계속 살아야겠구나, 하는.

사실 이 책 <....코페르니쿠스>를 손에 잡을 때까지
여기에서 그런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곤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
15세기에 태어나 지동설을 주창한 저명한 과학자.
너무 옛날 사람...너무 유명한(그래서 이제는 그저 상식인) 과학이론...내가 기대한 건 감동이 아니라 지적 자극이었다.
지동설과 15세기 문화.과학사라든가...따위 지식을 좀 넓힐 수 있으려나? 정도.



그러나 지금 막 책장을 덮고 난 새벽1시 나의 소감은
"가슴이 먹먹하다."
6백년 전 인물의 이야기를 이만큼 쉽고 생동감있게
거의 소설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만큼 그려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동유럽 코페르니쿠스의 고향 마을의 눈보라와 

대학시절을 보낸 이탈리아 남부 볼로냐의 따뜻한 기후가 피부에 와닿는 것같다.

임종의 순간, 평생의 작품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의 첫 인쇄본을 처음으로 품에 안은
늙고 외로운 수사 코페르니쿠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마지막 장을 덮고 한동안 숨고르기를 해야했다.

책을 펴낸이가 수도권의 자유발도르프학교,
독일어판을 영문으로 처음 옮긴 이도 미국의 발도르프 교사다.
영문 번역자는 어린시절 이 책을 독일어로 여러번 읽으며 빠져들었다고 책 서문에 써있다.
읽고 나니 그 말이 이해가 된다.
이 책을 통해 과학에 대한 식견을 높이기는 어렵다. 천문학 지식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대신 별과 모험을 사랑했던 소년의 일대기가 펼쳐진다.
과학적으로 뛰어났고, 그래서 진실을 측정할 수밖에 없었고, 자신이 밝혀낸 진실을 외면할 수가 없어서 시대의 반역자로 그림자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던 '수사 그리고 과학자' 코페르니쿠스.
실은 읽으면서 내내 헤르만 헤세의 소설들이 떠올랐다.
<크눌프>나 <지와 사랑> <수레바퀴 아래서>의 분위기랄까.
꿈을 꾸고 정신의 영역을 넓혀나가며 앞날의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의지를 단련해가는 청소년기에 이 책은
헤세의 훌륭한 소설들처럼 좋은 벗이 되어줄 것이다.
....난 청소년도 아닌데 왤케 좋아하지 =.=

소장가치가 분명하다.
7, 8년 뒤 엄마 책장을 뒤지던 딸아이의 손에 이 책이 선택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좋은 벗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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