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9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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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영화를 볼 때  오기로 보는 경우가 생긴다. 완독같은 걸 목표로.. 

 중학교 때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은 나에게 그런 책이었다.  대체 무슨 소리를 이렇게 길게 하는 지도 모르겠는걸 반 가까이 읽은 게 아까워 오기로 읽었다.  규모의 경제는 어디나 적용되는 법.

그리고 이제 그 때에 딱 2배의 나이가 되서 다시 읽은 책은 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한 일년 전 쯤 읽은 도스토예프스키 관련 평전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저자가 톨스토이에 대한 책도 최근에 쓰셨는데..) 도 큰 도움이 되었다. 평생 대책 없이 쓰고, 없는 돈은 당겨 쓰고 도박하고, 사치하고, 심지어 골든 벨도 울리셨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실상(?)은 러시아의 대문호에 대한 문학소녀적 판타지에는 해롭지만 책의 소소한 재미를 발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를 테면 백 루블 짜리 지폐에 대한 부분. 

 100루블 짜리 지폐는 제정 러시아에서 가장 큰 단위의 지폐였던 것 같다. 그런데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100루블 짜리 지폐는 꼭 '무지갯빛' 100루블짜리 지폐로 불린다. 지폐가 '무지갯빛'이라니? 파란색이면 파란색, 보라색이면 보라색이지 무지갯빛이라니. 그런데 한 번도 아니고 나올 때마다 무지갯빛이라고 형용하니 처음에는 웃음이 나다가 나중에는 좀 안타까워 진다. 자체적으로 백 루블짜리에서 후광을 보신듯 하다. 

작가는 처음 소설을 시작하면서 삼남인 알료샤가 주인공이라고 하지만 실상 소설의 주인공이자 아마도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이 가장 몰입한 인물은 장남 드미뜨리다. 무엇보다 드미뜨리의 내면에 관한 묘사가 등장 인물 중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가장 입체적이다. 드미뜨리는 겉으로 보기엔 개차반인 인물이다. 사치하고, 폭음하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난동을 피운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런 그의 내면에 누구보다도 고상하고 명예로운 성품에 주목한다. 즉, 그는 스스로의 고상하고 도달하기 어려운 원칙과 양심을 자각하고 있지만, 본인의 심약한 성정으로 인해 매번 쾌락에 지고 만다. 그로 인해 그의 양심은 상처받고, 그는 스스로를 저열한 인간이라 생각하게 되고, 그런 괴롭고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다시 타락하고 터무니없는 일을 저지르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과도하게 발달한 초자아의 폐해라고 볼 만한 이 인물은 도스토예프스키 본인을 상정하고 만든 듯하다. 그리고 그런 상황과 인물의 고뇌가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 인물이 광범위하게 통용될만한 지는 분명 다른 문제라고 본다. 가치관의 대립도 그렇다. 고전의 정의에 'timeless'가 들어간다면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에는 분명 애매한 부분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가치는 '러시아'다. 밀려드는 서구 문물에 대항하는 러시아의 본래적 가치, 러시아적 관념, 민중적 관념은 그 자체로 선이다. 그에 반해, 서구 사상, 코뮤니즘, 무신론은 악이며 지양해야할 것이다. 이런 이분법적 체계가 현재에도 유용한가, 우리에게 생가할만한 화두를 제시하는가? 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겐 좀 식상하고, 철지난 문제로 느껴졌다.   

다음번에 볼 때는 무언가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을까? 모르겠다. 세계 고전 하면 꼭 들어가는 이 책에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것이 내공의 부족인지,  취향의 차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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