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tella.K >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

장영희 강대 영문과 교수·조선일보 Books 서평위원

 


조교와 함께 연구실을 정리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났다. 조금 남루한 차림새의 여자가 들어오더니 노트를 내밀었다. 노트에는 ‘저는 청각장애인입니다. 최근에 일자리를 잃었고 아이가 백혈병에 걸려 너무 어려워…’ 등등이 적혀 있었다. 만원짜리 하나를 꺼내 주니 공손히 인사를 하고 나갔다. 여자가 나가자 마자 조교가 말했다. “선생님, 저 사람 청각장애인 아니에요. 사칭하는 거예요.” “네가 어떻게 알아?” “요새 저런 사람이 많아서 일부러 열쇠를 떨어뜨려 봤더니 눈동자가 잠깐 제 쪽으로 움직였어요. 선생님도 참, 헛똑똑이시네.”

‘셜록 홈즈가 따로 없네.’ 나는 조교의 명민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탐정 셜록 홈즈―어렸을 때 한 두 번쯤 그 가공할 만한 추리력에 감탄해 탐정이 되는 것을 꿈꾸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베이커가(街) 221B 번지, 깡마른 체격, 승마 모자, 파이프 등, 친구이자 조수격인 왓슨 박사 등, 아직도 생각나는 홈즈 관련 사항들이다.

셜록 홈즈는 안과의사였던 아서 코난 도일(1859~1930)이 개업을 해도 환자가 없어서 호구지책으로 일련의 추리소설을 쓰면서 창조해낸 가상인물이다. ‘빨간머리 연맹’ ‘바스카빌가의 개’ ‘여섯 개의 나폴레옹상’ 등 지금은 추리소설의 고전들이 된 작품들을 쓰면서 코난 도일은 탐정소설을 단순히 범죄소설에서 하나의 장르로 발전시킨 장본인이다. 당시 홈즈의 인기는 대단해서 1893년 ‘마지막 사건’에서 홈즈가 숙적 모리아티 교수와 대결하다가 폭포에 떨어져 죽자 독자들은 출판사에 항의전화는 물론, 홈즈의 죽음을 애도하는 상장을 가슴에 달고 다니기도 했다(후에 독자들의 요청에 못 이겨 ‘셜록 홈즈의 귀환’(1905)에서 부활시켰다).

홈즈는 코난 도일이 공부했던 에든버러 의과대학의 외과 담당 교수 조셉 벨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그는 환자가 진찰실에 들어오면 환자가 말하기도 전에 무슨 병이라는 것을 알 뿐만 아니라 증상에서 지금까지의 생활태도까지도 학생들 앞에서 맞혀 보이곤 했다. 벨 교수는 환자가 들어오면 추상적 이론이나 현학적 지식을 사용하지 말고 ‘눈과 귀와 손과 머리를 직접 써야 한다’고 가르쳤고, 이는 그대로 홈즈의 수사원칙이 되었다.

그렇지만 사실 홈즈의 기발한 사건 해결력은 기록자인 왓슨 박사 때문에 더욱 빛난다. 성실하고 사람 좋지만 ‘박사’라는 칭호가 민망할 정도로 늘 어줍잖은 추리력으로 홈즈를 흉내내다가 홈즈의 ‘똑똑함’에 밀리고 마는 왓슨은 간혹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영국과학발전협회’는 인터넷 투표로 세계에서 가장 재미있는 유머로 다음 이야기를 뽑았다.

명탐정 셜록 홈즈와 닥터 왓슨이 캠핑 여행을 갔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그들은 함께 누워 잠을 잤다. 얼마 후 홈즈가 갑자기 왓슨 박사를 깨웠다. “왓슨, 하늘을 보고 뭘 알 수 있는지 말해 주게.” 왓슨은 잠깐 생각하더니 “수백만 개의 별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천문학적으로 은하계가 수백만 개 있으며 항성이 수십억이 있다는 것, 측시학적으로는 시간이 새벽 3시쯤 되었다는 것, 신학적으로 신은 전능하고 인간은 미미한 존재라는 것, 기후학적으로는 내일 날씨가 청명하리라는 것…. 자네는 무슨 사실을 알 수 있는가?” 한동안 말이 없던 홈즈가 이윽고 말을 꺼냈다. “누군가 우리 텐트를 훔쳐갔다는 걸 알 수 있네….”

‘춤추는 인형’에서 홈즈는 난해한 그림의 암호를 풀고 나서 “사람이 발명한 것은 사람이 풀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나는 살면 살수록 사람이 발명한 것을 사람이 풀 수 없는 경우를 허다하게 본다. 또 하나 그런 케이스를 나는 만원 과외료를 내고 배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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