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재미있고, 좀 더 솔직하다. 읽으면서 드라마를 떠올렸는데 역시 드라마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전 한국을 걷다- 을사조약 전야 대한제국 여행기
아손 그렙스트 지음, 김상열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1월
14,800원 → 13,320원(10%할인) / 마일리지 740원(5% 적립)
양탄자배송
5월 27일 (월)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05년 01월 10일에 저장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오늘, 서준식 형제의 삶을 다시 생각해본다

세상에는 많은 경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경전을 안고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도 그런 '경전'과 같은 책이 몇 권 있는데 <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이 그 한 권입니다.

인권운동가 서준식 선생은 일본에서 태어났는데, '조국'을 만나러 왔다가  '유학생 간첩사건'에 연루, 그후 17년을 감옥에 있었습니다. 함께 체포되어 고문 끝에 분신자살을 시도했던, 그래서 지금도 그 흉터를 안고 살아가는 형 서승 선생은 19년을 그곳에서 보낸 뒤 <서승의 옥중 19년>이라는 책을 썼지요.

동생 서경식 씨는 위의 두 권과는 조금 다른 책들로 그들의 삶과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하는데, 오늘 소개하는 <나의 서양미술순례><청춘의 사신>이 그것입니다. 이 두 권은 서경식 씨가 유럽 등의 여행을 통해 만난 그림들을 소개하는 색다른 미술책입니다.

서승과 서준식의 동생이 '유럽 여행에서 만난 그림을 소개하는 책을 썼다'는 것에 많은 분들이 조금 의아해하실 지도 모르겠는데요, 서경식 씨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형님들이 모국인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다가 구속된 것은 1971년, 박정희 군사정권 때였다. 당시 대학 3학년이었던 나는 대학을 졸업하면 형님들처럼 일본 사회를 떠나 한국으로 건너가서 뭔가 진실한 삶을 살아보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건 때문에 그 철없고 막연한 인생설계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두 형님이 옥중에서 죽을 지경에 이르고 있고 자주 고문에 시달리고 있는데,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회사에 취직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구체적인 '생활' 같은 것을 시작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지하실에 처넣어진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 지하실은 어둡고 눅눅하고, 게다가 공기가 점점 희박해져간다. ...나에게 예술은 그 숨막히는 지하실에 뚫린 작은 창문 같은 것이었다.' (<청춘의 사신> 머리말 중에서)

그리하여 1983년 서경식 씨는 처음으로 유럽 여행에 나섭니다. 석 달 간의 유럽 여행,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그림들과 자신의 생각을 주로 엮어 쓴 책이 일본에서 1991년 출간되었던 <나의 서양미술 순례>입니다.

복잡한 심사를 안고 떠난 여행이었던만큼 지은이가 주목하고 감동하는 그림들은 보통의 미술책에 당연히 등장하기 마련인 그림들의 목록과 비껴갑니다. 또 보통의 책들과 달리 지은이는 그림에 대해 애써 설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보고 느끼고 깨닫고 감동합니다. 예를 들어 루브르 박물관에서 미켈란젤로가 만든 두 개의 노예상을 보며 그는 이렇게 말하지요.

'내 형들 중의 하나는 베토벤을 숭상하고 루오를 사랑해서, 필시 차입해준 책의 삽화 같은 데서 보았을 이 '노예'를 예찬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예찬 어쩌고 할 관조적인 얘기가 아니었다. 그는 또 한 형과 함께 투옥되어 이 시점까지 12년을 살았건만 석방될 희망이 없었다. 도대체 예술감상 같은 것과는 멀찍이 격리되어 있었다. 반항을 계속하고 있지만 빈사상태라고 할 수 있다. ...'노예'는 나의 형인 것이다. 나는 그것을 감상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 59~60쪽에서)

<청춘의 사신> 또한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나의 서양미술 순례>에 비해 그림과 화가에 대해 더 찬찬히 설명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띕니다. 제목 '청춘의 사신'은 에곤 실레의 그림 '죽음과 소녀'을 쓴 글의 소제목이기도 한데, 그 그림을 만났을 당시 자신의 상황을 그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 나는 이미 30대 중반을 넘어섰지만, 부모님이 두 분 다 세상을 뜨신 직후였고, 나 자신은 가족도 일정한 직업도 없었다. 나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승리를 기약하기 어려운 지루한 투쟁, 이루지 못한 꿈, 도중에 끝나버린 사랑, 발버둥치면 칠수록 서로 상처밖에 주지 않는 인간관계, 구덩이 밑바닥 같은 고독과 우울, 그런 것 뿐이었다. 내가 너무 보잘것없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시달리면서, 그래도 이 세상에서 무언가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어떻게 살면 좋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든 것이 막연했다. 죽고 싶다고 절실하게 생각한 적은 없지만, 죽음이 항상 내 곁에서 숨쉬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서경식 씨는 글의 곳곳에서 10년 동안 일본과 한국의 오가며 두 형을 옥바라지해야했던, 그러나 끝내 출옥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던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곳곳에서 드러냅니다. 세상이 참으로 어수선한 요즈음... 이들 형제의 어머니가 겪었을 고통을 생각해봅니다. 고 김선일 씨의 어머니가 지금 겪고 계실 고통을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마음의 평안을 얻을 그날이 빨리 오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알라딘 이예린 (yerin@aladin.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