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극장에는 나랑 그 영화만 있어야 한다. … 이 책의 제목 ‘혼자서 본 영화’가 ‘나 홀로 극장에’라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영화와 나만의 대면, 나만의 느낌, 나만의 해석이다. 나만의 해석. 여기에 방점이 찍힌다”(전자책 5-6쪽).

저자 정희진은 ‘머리말’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그런 만큼 이 책은 ‘정희진’이라는 개인의 정체성과 여성주의/평화 연구자라는 사회정치적 정체성에 기반을 두고 세 개 파트, 스물여덟 개 꼭지에서 서른두 편의 영화와 한 편의 연극 이야기를 풀어낸다.
말하자면 한 편의 영화를 대상으로 서사나 캐릭터, 장면 등을 자세히 분석하는 영화 비평류의 글 모음이 아니라(영화 연구자나 비평가가 아니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그 영화들을 경유/통과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우리 사회의 현실을 분석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미 ‘머리말’에서 자신에게 영화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는 이제 알기 위해 영화를 본다. ’지식을 습득한다‘와 ’안다‘는 것은 다르다. 안다는 것은 깨닫고, 반성하고, 다른 세계로 이동하고, 세상이 넒음을 알고,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과정을 뜻한다. 이것이 인생의 전부 아닐까. 영화는 나의 세계를 확장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9쪽).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저자의 시선이 영화에서 시작해 우리의 현실을 관통할 때 보여주는 통찰력이 빛날 때이다, 예를 들어 다음 문장들처럼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영역은 북한이나 섹슈얼리티가 아니라 가족 담론이다”(13쪽, <가족의 탄생>).
”’필요‘가 ’사랑‘이 되려면 윤리가 필요하다. … 사랑 이전에 윤리. 윤리는 정치학이고 사회 정의다. 윤리는 상대를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한다“(19쪽, <하얀 궁전>).
“우리가 본 영화는 우리의 인생과 붙어 있다. 몸으로 영화를 본다. 영화의 내용은 감독의 ‘연출 의도’가 아니라 관객의 세계관에 달려 있다. 누구나 자기의 삶만큼 보는 것이다”(50쪽, <문라이트>).
“피해자는 죄가 없다는 이 간단한 윤리, 아니 상식이 우리 사회에는 없다.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에게 흔히 사회가 보이는 반응은 ‘당신은 그때 어떻게 했습니까?(평소 네가 어떻게 행동했길래, 그런 일에 휘말리다니, 그 사람이랑 어떤 관계인데……)’이다“(59쪽, <밀양>).
”누가 말하는가보다 누가 듣는가가 중요하다. 이 영화의 경우 내용보다 영화의 효과, 곧 관객의 반응이 ‘진짜’ 정치학이다. <더 스토닝>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대사는 자흐라(쇼레 아그다쉬루 분)의 ‘내 목소리를 가져가라‘이다. 숨겨진 범죄를 세상에 알려 달라는 외침을 들은 사람이 지녀야 할 윤리적 태도는 무엇일까“(79쪽, <더 스토닝>).
“‘침묵당함’은 또 다른 폭력이다. 상처를 숨기는 대신, <거북이도 난다>에서처럼 고통에 대한 설명 불가능성을 향해 돌진하는 것, 자기 상처를 응시하는 것이 평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이 ‘간헐적’ 폭력이라면, 전쟁과 평화의 분리는 우리 삶을 구성하는 일상적 폭력이다. 영화는 피 흘리는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타인에게 말 걸기를 시도한다. 절박하게. 일상적 폭력을 평화라고 믿는, 침묵하는 모든 이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영화다. 참혹함과 아름다움은 양립할 수 있다”(81쪽, <거북이도 난다>).

인용은 이 정도로 했지만 책에는 베끼고 싶은 문장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그만큼 저자의 깊은 고민과 사색이 느껴지는 듯하다.
하지만 좋은, 베끼고 싶은 문장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대 ‘한남’ 현상은 남한 여성들의 비혼과 저출산의 제1원인이다”(93쪽, <강철비>, <의형제>, <용의자>, <공조>).

이 문장을 읽은 나의 반응은 ‘정말?‘이었다. 즉, (특히나 영화와 관련해/영화를 해석하는 데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충분히 이해하고 문제라는 데 동의하지만, 그게 정말로 여타 사회적/경제적/정치적/문화적 문제들을 제치고 ‘제1원인’인가라는 질문. 그 주장을 뒷받칠 근거의 제시 없는 단정이 의아했다. 물론 이 책이 인문/사회 도서가 아니라 에세이에 가까운 책이기에 너무 길고 전문적인 내용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기에 나에게 든 생각은 ‘그러면 저자의 다른 책, 이 문제를 좀더 깊게,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책을 읽어보자’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저자의 생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한 문장으로 이 책을 정리하면서 끝내자면, ‘영화를 거쳐 내 삶과 가치관을 돌아보고, 다시 생각할 기회가 되었던 독서 경험이었다’가 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