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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 무라카미 하루키 최초의 연작소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유곤 옮김 / 문학사상 / 2024년 11월
평점 :
1995년은 일본인들에게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 같은 해였을 것 같다.
그해 3월 20일,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를 경악케 한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옴 진리교가 도쿄 지하철 수 곳에서 사린 독가스 테러를 벌였던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 테러 사건의 피해자들과 주범 단체인 옴 진리교의 (테러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전 신자였던 사람들을 인터뷰한 2권의 책이 <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 2-약속된 장소에서>이다.
하지만, 비극은 그 사건만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두 달 전-즉 1995년 1월 17일-우리에게는 ‘고베 대지진’으로 알려진, ‘한신-아와지 대진재’가 일어났다. 진원 깊이 17.9킬로미터, 진도 7.2의 이 대지진으로 발생한 피해는 사망자만 6,300여 명, 부상자 4만여 명, 완파 가옥 10만 채, 파손 가옥 40만 채에 피해 총액은 100조 엔 이상으로 추산되었다(전자책, 115쪽 ‘옮긴이의 말’ 중에서). 이 사건 자체나 이 사건을 모티프로 하는 가상의 사건을 배경으로 트라우마를 겪는 인물이 나오는 일본 영화나 드라마도 몇 편을 본 적이 있을 정도로 일본인들에게 이 대지진은 깊은 고통과 충격이었던 듯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최초의 연작소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는 바로 이 고베 대지진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대지진 속으로 곧바로 뛰어들어 악전고투하는 인물들을 보여주는 방식은 아니다. 이 소설집에 실린 6편의 단편들은 모두 ‘1995년 2월’을 배경으로 하는데, 그 시기는 1월의 대지진과 3월의 독가스 테러 사건 ‘사이’의 공백 같은 시간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바로 그 공백의 시간이다. 그 시간 속에서 6편의 소설들은 대지진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마치 원자핵을 공전하는 전자들처럼 6편의 소설과 그 안의 인물들은 대지진 주위를 돌 뿐이다. 이때 이들을 서로 끌어당기는 인력은 ‘상실감’ 혹은 인물들 속에 있는 어떤 구멍이다.
’당신과의 생활은 마치 공기 덩어리와 함께 살고 있는 것 같아요‘라는 편지 한 장만 남겨두고 아내가 집을 나간 이후 그 말이 ‘알맹이가 없다’라는 뜻이라고 생각하는 고무라, 모닥불을 피우다 울면서 자기는 ’속이 텅텅 비어 있으며’ ‘죽어도 좋다‘는 준코, 자기를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던 귓불이 없는 남자를 지하철에서 우연히 보고 무작정 그 뒤를 쫓으면서도 자신이 뒤쫓고 있는 건 자신이 안고 있는 암흑의 꼬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요시야(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래서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자신은 신주님의 아들이라고 들어온), 태어날 예정이었던 자신의 아이들에게 어떤 짓으로 그것을 무산시킨 남자에게 원망을 품고 있다가 한 노파에게 몸속에 돌이 들어 있다고 듣는 사쓰키 등 이 소설집의 주인공들은 새벽 5시 45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 잠든 시간에 갑작스레 닥쳐온 대지진과 파국적 상황 앞에서 망연자실 넋을 잃고 ‘대체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 물을 수밖에 없는, 절망 속에 빠져 있다.
그러나 그게 이 소설집의 전부는 아니다. 이 소설집에 실린 6편의 소설은 각각이 독립적인 이야기지만 하나의 메시지가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더 이상의 파멸에서 구해야 한다, 더는 한시도 헛되이 할 수 없다는 다짐이다. ‘설사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 해도, 대지가 소리를 내며 갈라진다 해도’(112쪽) 출구를 찾고 구원이 있는, 모두가 꿈꾸며 애타게 기다리는 이야기, 곧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각오다.
나에게 이 책은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을 떠올리게 한 소설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