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에 갇힌 여자 스토리콜렉터 63
로버트 브린자 지음, 서지희 옮김 / 북로드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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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겨울, 런던의 한 박물관 호수에서 젊은 여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희생자는 뉴스 매체에서 헤드라인으로 다툴만한 지체 높은 귀족의 딸 앤드리아 - 더글러스 브라운으로, 아버지 사이먼 더글러스 브라운은 이라크 전쟁 당시 정부의 군수 책임자로 활동했던 내각의 정치적 거물이다. 나흘 전 실종된 그녀는 교살된 흔적을 남긴 채 시체로 돌아왔다. 그녀의 시체가 발견된 지역을 관할하는 루이셤 경찰서의 마쉬 총경은 이 복잡하고 까다로운(?) 사건을 해결할 사람으로 맨체스터 경찰국의 에리카 포스터 경감을 불러 온다.




 

"그의 둘째 딸인 앤드리아 더글러스-브라운이 내 구역에서 실종됐고, 더글러스-브라운 경은 엄청난 압력을 가해 사건 해결을 종용하고 있지. 누굴 고용하고 자를지, 우리 경찰을 손에 쥐고 멋대로 주무를 수 있는 사람이야. 오늘 아침에도 치안감님과 그 빌어먹을 내각 사무처 직원을 차례로 만났는데……."


"그럼 이 일이 총경님 경력에 관련이 있다는 건가요?"


마쉬가 에리카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일단은 그 시신과 용의자의 신원을 파악하게. 지금 당장!"


"네, 총경님. 그런데 왜 저를 택하신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혹시 저를 첫번째 희생양으로 쓰실 생각이십니까?"


에리카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앤드리아의 어머니가 슬로바키아 출신이야. 자네처럼……. 난 그 여자가 동질감을 느낄 만한 부하 직원이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을 뿐이고."

 


힘의 정치랑은 무관한, 오로지 사건 해결을 목표로 삼는 에리카는 앤드리아를 죽인 살인범을 찾기 위해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를 들쑤신다. 그러나 그녀의 수사는 번번히 방해에 부딪치게 된다. 외부에서 온 인사때문에 수사의 지휘권을 빼앗긴 스팍스 경감의 시기부터 동네의 정보망을 담당하는 대가로 경찰들과 협력하고 있는 술집 주인과의 마찰, 상류층의 의문사에 신이 난 언론, 수사 방향이 마음에 안 들면 수시로 상사에게 직통 전화를 날리는 재수없는 금수저 사이먼 경의 진상짓까지... 그녀의 수사가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든 런던 남부의 인간 생태계는 그야말로 권력의 도가니탕이다.


이 사건에 진정 흥미로운 점은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인물들의 대다수가 진실한 그녀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앤드리아를 멋들어진 말로 포장해 새로운 인물로 도출해 진술한다. 그녀의 약혼녀였던 자일스 오스본, 그녀의 부모인 더글러스 부부의 진술이 에리카가 발견하는 앤드리아의 모습과 상반된 묘사가 서술되면서 진정한 앤드리아는 누구인지, 그녀의 인간관계는 어떠했는지에 대한 허상이 폭로된다.




"저는 사람들이 앤드리아를 생전 모습 그대로 기억해주길 바라요. 아름답고, 젊고, 순수하고, 착실하고 앞날이 창창했던 죄 없는 앤드리아를요……." - 약혼자 자일스 오스본의 진술. 


"앤드리아는 예쁜 아이였어요. 그냥 예쁜 걸 넘어서 그 애가 들어오면 방 안이 환해졌습니다. 예쁘고, 연약하고, 또…… 또…….

이제 우리의 삶에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 아버지 사이먼 경의 진술.


"난 앤드리아가 왜 강 건너에까지 간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그 애가 누군가한테 끌려가 죽임을 당하다니, 우리 아기…… 내 아기, 앤드리아가 죽다니!" - 어머니 다이애나의 진술.

217쪽에 달하는 자료에는 풋풋한 열네 살의 앤드리아부터 관능미 넘치는 스물세 살의 여인이 된 앤드리아까지, 구 년여의 기록이 담겨 있었다. 초기에는 다소 수수했던 옷차림이 남자들이 등장한 뒤로는 도발적으로 변했다.  


앤드리아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들은 거의 대부분 초점이 흔들린 파티 사진과 셀카였다. 잘생긴 남자들과 모델 같은 여자들 사진이 수백 장 있었는데, 그 중 같은 사람이 여러 번 등장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클럽들은 사전 예약을 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고, 테이블 위에는 수많은 샴페인 병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파티광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호화로운 삶을 누렸던 모양이다.  


그러나 페이스북상에서 언니 린다와 남동생 데이비드와 교류한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린다와 데이비드가 몇몇 포스팅에 '좋아요'를 누리긴 했다. 하지만 매년 더글러스-브라운 가족이 그리스나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에 있는 빌라로 함께 떠난 휴가 포스팅에 한정됐다.

 

가족조차도 제대로 모르는 앤드리아의 마지막 흔적에 총력을 기울인 에리카는 드디어 지역 내 허름한 술집에서 그녀를 봤다는 목격자를 찾아낸다. 술집의 바텐더인 여자는 앤드리아가 살해된 날 밤 자신이 일하는 술집에서 짙은색 머리 남자와 금발의 여자와 함께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러나 목격자는 상류층 사건의 증언을 거부하고 사라진다. 목격자를 찾기 위해 추적하나 목격자의 흔적조차 사라진다. 이름도, 사는 곳도, 다 가짜였다. 목격자가 범인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영국 내 불법체류자였다. 바텐더가 일한 술집은 불법 체류자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한 혐의와 매춘부의 소굴로 알려진 곳이었다. 그런 곳에 상류층 여성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게 좋을 리가 있나. 앤드리아의 포장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한 윗선의 압력은 결국 에리카를 수사팀에서 쫓겨나게 만든다.


결국 개인적으로 사건을 파헤치는 에리카의 수사는 제한이 생겼지만 보다 자유로웠다. 부검의 아이작으로부터 몰래 앤드리아의 죽음과 비슷한 3건의 살인 사건이 최근 2년 간 벌어졌음을 알게 된 에리카는 그 실마리를 추적한다. 3건의 살인 사건의 피해자는 모두 찢어지게 가난한 동유럽 출신의 매춘부들이었다. 상류층 여성과 비슷한 방식으로 살해된 매춘부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 걸까. 에리카가 그들의 연관성을 찾는 동안, 서서히 그녀에게 뻗어오는 검은 손길도 같이 움직이게 된다.


<얼음에 갇힌 여자>는 진실에 접근할 수록 더 위험해지는 에리카의 위태로운 상황을 사건이 클라이맥스로 치닫도록 빠르게 녹여낸다. 목숨을 건 형사의 직감과 능력이 살인자를 밝혀내는 결정적 단서가 되어 끝끝내 간발의 차이로 진실을 알게 되는 집약된 소설의 구조도 주목할만 하다.



언론에 실린 사망 보도는 대략적이었고, 희생자를 무시하는 것 같기도 했다. 

또 세 여자에 관해 언급한 어느 기사에서는 그들이 오페어(영국에서 아이들을 돌봐주는 대가로 숙식 및 급여를 제공받는 일)로 취업하러 영국에 왔다가 매춘의 길로 '빠지게 됐다.'라고 전했다. 에리카는 정말 그렇게 점진적으로 변했을지 궁금해졌다.


더 나은 삶,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혹해서 영국에 왔던 걸까? 아니면 영어를 배우려고?


에리카 역시 열여덟 살이 되던 해에 오페어 자리를 구하러 슬로바키아를 떠나왔다. 당시에는 영어도 할 줄 몰랐다. 그녀는 으스스한 11월 아침, 브라티슬라바의 버스 정류장을 떠나 영국 맨체스터로 왔다. 


무너지기 일보직전인 브라티슬라바의 버스 터미널과 줄줄이 이어져 있는 버스 승강장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각 승강장마다 녹이 슨 쇠기둥이 끝도 없이 긴 지붕을 받치고 있던 그곳은 상당히 습했다.


에리카는 아름다운 조국을 떠나 외국으로 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성공의 길이라 믿는 모든 십 대들의 눈물로 그곳이 습해진 건 아닌지 생각했다. 


그 아이들이 런던에 도착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쩌다 매춘부가 된 걸까?


특히나 요즘 추리 소설에서 계속 등장하는 불법 체류자들, 반 이민 정책에 대한 현실적인 상황들이 사회상으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것이 인상깊다. 브리티쉬 드림을 안고 오는 이민자들이 결국 매춘부로 전락하고, 영국정부의 복지 정책 실패와 그들을 향한 빈번한 탄압이 진행되고, 이민자들과의 경쟁에서 진 영국인들이 느끼는 불안함 등이 소설을 더 정밀하고 역동적으로 만든다. <얼음에 갇힌 여자>가 반영하고 있는 사회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계급사회로 인한 인간 혐오와 경제불황에 맞닿아 있다. 각박하고 우울한 현실이 이 소설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역설적인 이익을 가져다준다니. 오묘한 기분이 든다.

 

원제목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The Girl in the Ice. 북로드 출판사가 원제를 존중해서 그대로 번역했다. 그러나 소설 전반을 이끄는 앤드리아의 사건으로 제목을 정하기엔 제목이 많이 단순한 느낌이 들었다. 살인범과의 연계성도 가려진 건 두 말할 것도 없고. 부제로 녹슨 꿈이나, 허상의 오발탄이라고 붙여 버리면 원작을 많이 파괴하는 걸까. 굉장히 기대할만한 시리즈인데.


오랜만에 문장을 음미하며 읽는 재미를 선사해 준 책이다. 3시간 몰입해서 읽고 누가 잠든 사이 내 목을 조를까봐 무서워서 1시간이나 늦게 자버리게 만든 이야기의 힘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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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사랑한 소년 스토리콜렉터 60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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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만났다, 마르틴 S. 슈나이더. 천재 프로파일러지만 강의 신청은 절대 안 하고 싶은 성질 더러운 우리의 주인공이다.

<지옥이 새겨진 소녀>에서 참 시원하게(?)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확실한 작가로구만.이라고 생각했다.

서양 작가들은 별 다른 원한 없이도 손쉽게 길 가던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아무렇지 않게 묘사한다. 그런 확실함이 사건을 좀 더 쫄깃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만 때론 '쟤는 좀 살려줘도 괜찮을 것 같은데' 하는 인물까지도 죽여버리면 왠지 읽는 내가 다 죄책감이 들 때가 있다. 저 멀리에 계신 안드레아스 그루버가 내 마음 속 이야기를 들은 걸까. <죽음을 사랑한 소년>에서는 그가 좀 더 친절해졌다. 



머리카락이 아치에 묶인 채 죽인 여자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눈알은 시신의 근처를 맴도는 까마귀가 파먹었고, 나체로 훼손된 이 시신은 죽어서도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발견되었다. 이 시신의 주인공은 니콜라 비스. 연방 경찰청장이었던 여자다. 이 사건을 맡아 휴가도 반납하고 스위스 베른까지 온 자바네가 드디어 등장한다. <지옥이 새겨진 소녀>에서 남친 에릭하고 헤어졌다가 다시 결합된 걸로 기억하는데 왜 다시 혼자인걸까. 다른 시리즈를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또 헤어진 건 아니길 빈다. 그녀는 마르틴 S. 슈나이더와 이 끔찍한 사건을 손을 대기 시작한다.


그들이 사건을 본격적으로 해결하기 전에, 아주 중요한 인물이 부상한다. 피트 판 론. 20대 초반의 천재인 그는 5년 전, 스물 두 살 때 머리가 완전히 돌아 5명을 살해한 지적인 범인이다. 그는 5년 전에 슈나이더에게 잡혀 감옥에 수감된 상태였다. 그리고 새로운 등장 인물, 심리치료사인 한나는 피트 판 론이 포함된 3명의 의뢰인의 심리치료를 맡게 되었다.



"홀란더 소장이 피트 판 론을 당신 그룹에 넣어 줬어요?"

"네, 뭐가 잘못됐나요?"

"아니요."

"노벨 심리학상을 받지 않아도 박사님 얼굴 표정을 보면 금방 알 수 있겠는데요. 판 론을 저한테 맡긴 게 어이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시잖아요."

"당신이 심리학을 전공했고 자기가 그렇게 똑똑하다고 생각한다면 피트 판 론과 아무 문제도 없을 거예요."

"문제 생길 일이 뭐가 있겠어요?"


(중간 생략)


"이 시설에 지적인 살인범이 그 남자밖에 없는 건 아니잖아요."

캠펜이 미소 지었다.

"그래요. 하지만 선천성 면역 질환이 있는 살인범은 그가 유일하죠. 그는 어렸을 때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앓았는데,

 의사가 오진해서 갑상선 호르몬 약을 과다 처방했어요. 지금은 금지된 그 '요오드톡스'라는 약은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지능을 향상시켜 주기도 하죠."

한나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켐펜을 쳐다봤다. 의사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궁금했다.

"피트는 4개 국어를 할 줄 알고 책을 하루에 한 권 이상씩 읽어요. 그의 지능은 무척 높아요. 지능 지수가 무려 158이나 되죠. 그래서 당신이 그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피트 판 론은 단순 지능범일까. 심리치료사에게 의뢰인의 범죄 기록을 보여줄 수 없다고 강경하게 나오는 윗선의 태도에 한나는 그가 무엇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직감한다. 그리고 실제로 만난 그는 더 똑똑하고 재치있고 영리한 자였다. 한나는 피트 판 론에 흥미를 가지고 그를 집중적으로 비밀리에 조사하는 위험천만한 일을 진행한다.


<죽음을 사랑한 소년>은 안드레아스 그루버의 전작 때보다 더 잔인하고 더 자비없는 살인이 이루어진다. 심지어 살인을 저지르는 속도마저 속전속결이다. 잠도 자지 않고 유럽 구석구석을 오가며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의 스케줄에 추적하던 자비네도 혀를 내두른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그들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그의 심리를 파고든다. 그녀의 추적으로 알아 낸 기이한 사실은, 살인범에게 죽는 모든 이들이 과거에 슈나이더와 트러블이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걸 밝혀낸다.


왜 살인범은 슈나이더와 척을 졌던 사람들을 차례차례 죽여가는 걸까? 그를 흠모하는 범인인 것일까, 아니면 오히려 그에게 역누명을 씌워 자작극으로 만들려는 수작인 걸까. 사건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그들에게는 사건마다 한 명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5년 전 감옥에 수감된 빌어먹을 천재 피트 판 론을 말이다. 몇 가지의 작은 단서로 집요하게 추적하는 자비네와 슈나이더는 결국 사건의 진상으로 치닫는 최후의 결말을 앞두고 범인의 진상을 알게 된다.


<죽음을 사랑한 소년>은 전작 때보다 살인의 방식이 더 예리해졌지만, 생각해보다 그것을 풀어나가는 슈나이더의 천재성이 흐려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범인이 밝혀지고 슈나이더의 해석이 들어가면 '옳타쿠나!' 라는 감탄이 나와야하는데, 이번 사건은 슈나이더 저 인간도 공범이 아닌가.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살인범에 대한 슈나이더의 침묵이 일을 더 키운 꼴이니. 그 어느 때보다 지능이 뛰어난 범인을 잡아서 카타르시스가 폭발할 뻔했는데 마지막에 다 싸그리 식었다. 다름 아닌 주인공 슈나이더 때문에.


그 똑똑하고 영리하고 새침했던 주인공 캐릭터가 붕괴하면서 <죽음을 사랑한 소년>이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뛰어난 범인과 겨루는 뛰어난 프로파일러의 균형이 싹 무너지면서 결말에서도 또 한번 갑자기 싸해진 분위기를 견뎌내야 했다. 안드레아스 이 양반 아무래도 자기가 만든 범인의 천재성에 도취해 일을 그르친 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든다. 제약회사에서 시간제로 근무한 경력이 이번 작품에서 빛을 발했다는 찬사와 범죄자 도취로 망가뜨린 결말에 대해서 보상 청구를 하고 싶다는 비판이 동시에 떠오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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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사람들 - 미스 페레그린이 이상한 아이들을 만나기 전
랜섬 릭스 지음, 조동섭 옮김 / 윌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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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지방에서 사는 내가 서울에서 열리는 팀버튼 전에 참여하기 위해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간 적이 있다. 그 때 느꼈던, 떡잎부터 기괴한 인간들에 놀라워했던 감각이 랜섬 릭스에게도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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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연 토익 어휘 1200 강의노트 유수연 토익
유수연 지음 / 사람in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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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조선시대의 과거 시험에는 세대를 아우르는 수험생이 존재했다. 15살 먹은 파릇파릇한 새싹부터 일흔 살이 넘은 백전노장까지.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오직 등용되기만을 꿈꾸면 몇년, 몇십 년을 낭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때가 있었다. 조선시대 그 버릇이 앞으로도 800년은 더 가려는지 현대에도 무수히 많은 자격증들이 반짝이며 등장한다. 다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 돈 투자해가며 열심히 배운다. 그러나 실제로 도움이 되는 자격증들은 그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라는 걸, 시간을 탈탈 턴 후에야 깨닫게 된다. 그 중에서는 중요했던 것이 그 가치가 옅어지는 것도 있는가 하면, 옛날에는 무시했으나 지금은 중요하게 부각되는 자격증들도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토익 역시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중요하게 부각되는 시험 중 하나로 남아 있다.


토익이라는 제도 자체도 안착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새 신토익으로 바뀌어 또 수험생들을 우왕좌왕하게 만들고 있다. 어쩔 때는 내가 시험관이고 내가 대통령이고 내가 교육부장관이었으면! 하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대통령도 교육부장관도 시험관도 아니니 신토익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 필자보다 먼저 토익을 경험한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토익 어휘는 평소에 쓰지 않는 어휘나 의미가 많아 외우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어렵고 많다. 시험볼 때 이만큼이나 암담한 전제조건이 어디있다 말인가? 그러나 유수연은 달랐다. 나오는 토익 어휘에도 법칙이 있고 그 의미가 있고 반드시 답을 품고 있는 어휘가 존재한다. [유수연의 토익 어휘 1200 강의노트]는 이러한 유수연 강사의 생각을 여지없이 담고 있다.

 

 

 

공부란 건 장기적으로 하면 좋은 것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다수에게 공부란 건 오래할만한 것이 못 된다. 과거 시험도 오래 본 수험생이 경험있다고 붙나? 될놈될 안될놈안될을 보여주는 끝판왕이 과거시험이 아닐런지. 공부란 건 단계적으로 하는 건 도움이 될지라도 장기적으로 하는 건 스트레스를 유발할 뿐더러 성적에도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시험은 빨리 합격하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필자의 말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유수연은 30일 안에 학습할 수 있는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정답어휘, 오답어휘라는 딱 부러진 부제목까지 선정해가며 그녀는 반드시 외워야할 단어만을 외워야 한다고 강조 또 강조한다.

 

 

 위 사진은 그 계획의 연장선이다. 앞으로 보여줄 단어들을 어떻게 공부해야하는지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주고 있다. 어떻게 공부해야할지 전혀 감도 안 온다면 우선 저자의 교육방법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필자도 고등학교땐 저런 거 문제집에 아무리 달아줘도 눈길 한 번 준 적이 없었지만 자격증 시험 준비하면서 달라졌다. 의외로 도움이 많이 되니 꼭 참고해보자!

 

 

[유수연 토익 어휘 1200 강의노트]의 목차이다. 토익에 출제 되어 왔던 어휘 뿐만 아니라 토익 필수 전치사, 동사구, 표제어 List도 들어가 있다. 어휘라는 것이 고유명사처럼 딱 사랑, 영원, 용기, 공부, 교육 등등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운동해왔던 것, 먹다 만 밥, 아직 덜 찬 좌석, 비어져 있는 방 등 미사여구를 넣어 새로운 어휘로 거듭난 경우도 많다. 어떤 어휘가 토익에 잘 나오는지 눈에 불을 켜보자.

 

어휘의 제일 첫 장이다. 시험문제가 어떻게 나오는지, 해설과 생각의 순서를 통해 그 어휘가 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가의 의미를 이해하게 해준다. 무작정 달달 외우는 것? 할 수만 있다면 나쁘지 않다. 어떤 탐정 만화에 나오는 여자 아이의 능력처럼 한번 보자마자 모든 걸 다 기억할 수 있는 초능력자라면 무작정 달달 외우기 추천한다. 그러나 필자같이 보통 사람이라면 의미 파악이 중요하다. 무슨 어휘가 나와도 눈치껏 때려 맞는 능력을 길러야 하느니.

 

첫 장의 어휘 리스트는 익히 알고 배우던 것이라 안심했다. 그런데 옆에 제시된 해설이 고등학교 때 영어랑 달라도 너무 달랐다. 단어 사전이었다면 어휘 뜻 제공하고 예문 보여주고 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수연 토익 어휘 1200 강의노트]는 출제 포인트를 함께 제시함으로써 그 단어를 해석하는 방법도 함께 제공한다.


토익을 잘한다고 영어 잘하지 않는다는 말은 전에 다른 유수연 시리즈 책으로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는 토익을 넘어서야 하고, 시험에는 분명 의미와 답이 존재한다. 전략적으로 파고들어 반드시 목표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정신이 우리에게 좋은 점수를 가져다 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칼과 방패 없이 전장에 나가는 병사는 없듯이, [유수연 토익 어휘 1200] 강의 노트를 들고 뛰어들어보자. 최소 노하우는 갖춘 수험생이 되어야 시험에 이길 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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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 기사단 추리파일 - 상징과 기호로 봉인된 중세 미스터리 150 추리파일 클래식 시리즈 5
팀 데도풀로스 지음, 임송이 옮김 / 보누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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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가 참신하여 흥미를 끌었던 책이었다. 그러나 소재 못지않게 작가 이름이 눈을 끌어 당황했다. 카카오페이지에서 유명세를 탄 [뇌가 섹시해지는 추리퀴즈]를 낸 장본인이 아닌가.  [뇌가 섹시해지는 추리 퀴즈]는 나도 2권 중간까지 달렸지만, 왜 달렸는가 의문이 들 정도로 허술하고 쓸데없는 트릭과 말도 안되는 해설이 난무해 댓글에서도 어이 없다는 말이 판을 쳤던 책이었다.(심지어 1편의 마지막 트릭은 셜록 홈즈 것을 그대로 가져와서 필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보통은 잘 보지 않는 작가의 이력을 보았더니 인류학 전공자라고만 소개하더라. 이 작가는 이후에 이런 책 내지 말라고 부탁한 바가 있었는데 또 이런 책을 냈다. [템플 기사단 추리파일]이다.


사람은 발전하기 마련이라고, 한 번 실망했으나 계속 책을 내는 데는 또 그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시작했다. [템플기사단 추리파일]은 중세 유럽을 소재로 한 퍼즐 모음집...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중세 유럽의 역사를 기초로 삼았다거나, 신비로운 역사인 템플 기사단과 그들의 일화를 소재로 활용하고 중세 유럽의 여러 사실을 재구성해 퍼즐로 만들었다. 고로 단순히 문제와 답으로 구성된 여타의 퍼즐 책보다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다. 가 이 책의 요지다. 그러나 소개가 무색하게 전작에서 보여졌던 허술한 트릭과 말도 안되는 논리의 여파가 그대로 미쳤다. 아래의 이야기는 템플 기사단의 첫장에 소개되어 있는 <마을의 불명예>라는 에피소드다.



「 어느날 저녁, 마을 어르신들이 젊은 연인들의 품행에 관한 복잡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시장 광장에 모였다.

한 무리의 어르신들은 몹시 화가 나서 그 연인들을 나무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한쪽은 이 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고, 그들을 내버려두길 원했다.

결구 관심이 없던 어르신들은 북새통에 지쳐 자리를 떠났다.


건너편에 있던 선술집에서 이와 관련하여 일이 있었다. 회의에 소집한 여인이 무관심한 어르신들 편에 서면,

어른신들의 3분의 2가 남는다.

또는 그 여인이 절친한 친구 2명을 설득해서 3명이 함께 한다면, 회의에 참석한 인원의 2분의 1이 남는다.

양편의 인원은 겹치지 않는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은 몇 명인가?」



답부터 먼저 공개하자면, 18명이다. 3분의 2와 2분의 1의 차이는 6분의 1이다. 회의를 소집한 여인과 절친한 친구 2명이 그 6분의 1이다. 3명이 전체 인원의 6분의 1이라면 모두 3*6= 18명이 모인 것이다. 라는 해설이 있다.

그렇다면 18명을 나누었을 때는 역시 분배가 명확히 되어야 할 것이다.


회의를 소집한 여인이 무관심한 어르신들 편에 설 경우 -> 반대 인원이 3분의 2라는 소리. 반대 인원수에서 여인이 제외가 됨.

반대편이 3분의 2인 상태에서 친구 2명이 또 제외되고 나서 2분의 1로 줄어든 인원에는 당연히 회의를 소집한 여인이 포함이 안 된다.

2명이 제외되고 나서 2분의 1이라는 소리는 2명이 6분의 1이라는 소리다. 여인이 설득해서 3명이 된들 이미 제외된 여인이 또 포함될 이유가 없다. 전제 조건에 "양편의 인원은 겹치지 않는다"라고 답했으니. 3명이 함께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제외된 1명에 2명의 추가 인원이 생성된 것이다. 그려면 전체 인원이 12명이 된다.


다시 설명하자면

처음 무관심 3, 반대 8, 그리고 여인 1명이 있었다.

여인이 무관심 편에 들면 무관심 4, 반대가 8이 된다.

친구를 설득해 2명을 데리고 나오면 무관심 6, 반대 6이 된다. 전체 인원이 12명이란 소리다.


18명으로 나누는 게 해설이 가능하신 분이 있다면 내게도 설명 좀 해달라. 18명 분배가 안되서 지인의 자문을 받아 12명으로 계산했더니 분배가 되더라. 18명으로는 해석이 안되고 12명으로는 해석이 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는 게 첫번째 문제부터다. 물론 뒤에 있는 "영리한 바보"라는 에피소드는 해설에 논리가 전혀 없어 날 더 당황시켰다. 바보가 돈의 가치를 전혀 모르는데 계속 액수가 적은 동전을 매번 선택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더 큰 액수의 동전을 고르면 흥미를 잃고 자신에게 더 돈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나.

중세라는 신비한 소재, 상징과 기호로 봉인된 중세 미스터리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퍼즐의 기초는 숨어 있는 일정한 패턴을 찾아내고, 이를 조건으로 다음 패턴을 예상하는 데에 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수학적 도구를 활용하거나 때때로 직관력에 의지해야 한다. 템플 기사단 추리파일에 실린 문제도 예외는 아니다. 13세기 말, 프랑스의 국왕 필리프 4세와 교황 클레멘스 5세의 파상공세에 자취를 감춘 템플 기사단의 보물을 찾기 위해서는 명확한 근거와 논리적 추론으로 기사단이 남긴 질문에 답해야 한다. 기사단의 흔적과 보물의 행방,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도회의 징표, 프리메이슨과 마녀의 석판 등 템플 기사단의 지적 유산이 독자의 직관과 재치를 시험하고, 수학적 추론 능력을 검증한다. 」

 위의 문단은 출판사 보누스가 출판에 앞서 이 책을 설명하는 문구다. 정말 영혼이 깃든 것 같은 홍보 문구를 보고 있으면 잠시 팀 데도풀로스의 명성(?)을 잊을 수 있을 듯 하다. 휴가철에 너무 심심해서 할 거 없거든 가족끼리 머리 맞대고 이 책을 봐라. 풀면 풀수록 기묘하게 화가 나 가족간의 대화가 얼마나 알차고 진솔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었나 깨닫게 해줄 것이다.


이번엔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팀 데도풀로스의 악명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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