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음을 사랑한 소년 ㅣ 스토리콜렉터 60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또 만났다, 마르틴 S. 슈나이더. 천재 프로파일러지만 강의 신청은 절대 안 하고 싶은 성질 더러운 우리의 주인공이다.
<지옥이 새겨진 소녀>에서 참 시원하게(?)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확실한 작가로구만.이라고 생각했다.
서양 작가들은 별 다른 원한 없이도 손쉽게 길 가던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아무렇지 않게 묘사한다. 그런 확실함이 사건을 좀 더 쫄깃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만 때론 '쟤는 좀 살려줘도 괜찮을 것 같은데' 하는 인물까지도 죽여버리면 왠지 읽는 내가 다 죄책감이 들 때가 있다. 저 멀리에 계신 안드레아스 그루버가 내 마음 속 이야기를 들은 걸까. <죽음을 사랑한 소년>에서는 그가 좀 더 친절해졌다.
머리카락이 아치에 묶인 채 죽인 여자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눈알은 시신의 근처를 맴도는 까마귀가 파먹었고, 나체로 훼손된 이 시신은 죽어서도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발견되었다. 이 시신의 주인공은 니콜라 비스. 연방 경찰청장이었던 여자다. 이 사건을 맡아 휴가도 반납하고 스위스 베른까지 온 자바네가 드디어 등장한다. <지옥이 새겨진 소녀>에서 남친 에릭하고 헤어졌다가 다시 결합된 걸로 기억하는데 왜 다시 혼자인걸까. 다른 시리즈를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또 헤어진 건 아니길 빈다. 그녀는 마르틴 S. 슈나이더와 이 끔찍한 사건을 손을 대기 시작한다.
그들이 사건을 본격적으로 해결하기 전에, 아주 중요한 인물이 부상한다. 피트 판 론. 20대 초반의 천재인 그는 5년 전, 스물 두 살 때 머리가 완전히 돌아 5명을 살해한 지적인 범인이다. 그는 5년 전에 슈나이더에게 잡혀 감옥에 수감된 상태였다. 그리고 새로운 등장 인물, 심리치료사인 한나는 피트 판 론이 포함된 3명의 의뢰인의 심리치료를 맡게 되었다.
"홀란더 소장이 피트 판 론을 당신 그룹에 넣어 줬어요?"
"네, 뭐가 잘못됐나요?"
"아니요."
"노벨 심리학상을 받지 않아도 박사님 얼굴 표정을 보면 금방 알 수 있겠는데요. 판 론을 저한테 맡긴 게 어이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시잖아요."
"당신이 심리학을 전공했고 자기가 그렇게 똑똑하다고 생각한다면 피트 판 론과 아무 문제도 없을 거예요."
"문제 생길 일이 뭐가 있겠어요?"
(중간 생략)
"이 시설에 지적인 살인범이 그 남자밖에 없는 건 아니잖아요."
캠펜이 미소 지었다.
"그래요. 하지만 선천성 면역 질환이 있는 살인범은 그가 유일하죠. 그는 어렸을 때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앓았는데,
의사가 오진해서 갑상선 호르몬 약을 과다 처방했어요. 지금은 금지된 그 '요오드톡스'라는 약은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지능을 향상시켜 주기도 하죠."
한나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켐펜을 쳐다봤다. 의사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궁금했다.
"피트는 4개 국어를 할 줄 알고 책을 하루에 한 권 이상씩 읽어요. 그의 지능은 무척 높아요. 지능 지수가 무려 158이나 되죠. 그래서 당신이 그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피트 판 론은 단순 지능범일까. 심리치료사에게 의뢰인의 범죄 기록을 보여줄 수 없다고 강경하게 나오는 윗선의 태도에 한나는 그가 무엇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직감한다. 그리고 실제로 만난 그는 더 똑똑하고 재치있고 영리한 자였다. 한나는 피트 판 론에 흥미를 가지고 그를 집중적으로 비밀리에 조사하는 위험천만한 일을 진행한다.
<죽음을 사랑한 소년>은 안드레아스 그루버의 전작 때보다 더 잔인하고 더 자비없는 살인이 이루어진다. 심지어 살인을 저지르는 속도마저 속전속결이다. 잠도 자지 않고 유럽 구석구석을 오가며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의 스케줄에 추적하던 자비네도 혀를 내두른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그들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그의 심리를 파고든다. 그녀의 추적으로 알아 낸 기이한 사실은, 살인범에게 죽는 모든 이들이 과거에 슈나이더와 트러블이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걸 밝혀낸다.
왜 살인범은 슈나이더와 척을 졌던 사람들을 차례차례 죽여가는 걸까? 그를 흠모하는 범인인 것일까, 아니면 오히려 그에게 역누명을 씌워 자작극으로 만들려는 수작인 걸까. 사건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그들에게는 사건마다 한 명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5년 전 감옥에 수감된 빌어먹을 천재 피트 판 론을 말이다. 몇 가지의 작은 단서로 집요하게 추적하는 자비네와 슈나이더는 결국 사건의 진상으로 치닫는 최후의 결말을 앞두고 범인의 진상을 알게 된다.
<죽음을 사랑한 소년>은 전작 때보다 살인의 방식이 더 예리해졌지만, 생각해보다 그것을 풀어나가는 슈나이더의 천재성이 흐려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범인이 밝혀지고 슈나이더의 해석이 들어가면 '옳타쿠나!' 라는 감탄이 나와야하는데, 이번 사건은 슈나이더 저 인간도 공범이 아닌가.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살인범에 대한 슈나이더의 침묵이 일을 더 키운 꼴이니. 그 어느 때보다 지능이 뛰어난 범인을 잡아서 카타르시스가 폭발할 뻔했는데 마지막에 다 싸그리 식었다. 다름 아닌 주인공 슈나이더 때문에.
그 똑똑하고 영리하고 새침했던 주인공 캐릭터가 붕괴하면서 <죽음을 사랑한 소년>이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뛰어난 범인과 겨루는 뛰어난 프로파일러의 균형이 싹 무너지면서 결말에서도 또 한번 갑자기 싸해진 분위기를 견뎌내야 했다. 안드레아스 이 양반 아무래도 자기가 만든 범인의 천재성에 도취해 일을 그르친 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든다. 제약회사에서 시간제로 근무한 경력이 이번 작품에서 빛을 발했다는 찬사와 범죄자 도취로 망가뜨린 결말에 대해서 보상 청구를 하고 싶다는 비판이 동시에 떠오른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