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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6월
평점 :


『13계단』이 2005년에 한국에 정식 출간된 이후부터 줄곧 다카노 가즈아키 작가의 팬이었다. 20년 넘게 그를 좋아하고 응원해 온 한국 팬으로서, 2025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지난 6월 22일 열린 작가와의 북토크에 사전 예약해 참석한 뒤 이 서평을 적는다.
가장 최근인 2023년에 『건널목의 유령』이 출간되기까지 무려 11년간의 공백이 있었다. 이번 북토크에서 작가는 신간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에 수록된 단편들이 그 오랜 시간 동안 집필해 온 이야기라고 밝혔다. 독자들과 직접 소통하지 못했던 긴 세월 동안, 그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는지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이번 신간은 그의 대표작인 『13계단』이나 『제노사이드』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본 신간에는 짧은 단편소설 여섯 편이 수록되어 있다. 장편 소설보다 등장인물이 적고, 더욱 빠른 전개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덕분에 복잡한 설정이나 과학적 지식을 알 필요 없이, 훨씬 편하게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
- 시작은 도시 괴담처럼 가볍게 전개되는 <발소리>
- 소설집의 제목이자 대표작인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
- 전생이라는 소재에 추리와 미스터리를 결합한 <세 번째 남자>
- 당장 영화로 제작해도 손색없을 <아마기 산장>
- 학교에서 벌어진 총격전의 긴박한 심리를 그린 <두 개의 총구>
- SF적 요소가 돋보이는 <제로>
이 중에서도 전쟁과 인간의 잔혹성을 잘 보여주는 <아마기 산장>을 가장 추천한다. 『제노사이드』에서 느껴졌던 작가의 반전(反戰)주의가 이 작품에도 깊이 녹아 있다. 전쟁과 인간의 추악함을 여과 없이 드러내어, 이야기의 공포감을 극대화한다. 상상력이 풍부하지만 호러에 약한 독자라면 이 소설을 혼자 읽을 때 진땀을 흘릴 수도 있다. 출간 시기를 노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름에 읽기 딱 좋은 호러 스릴러 소설이다.
소설가이자 영화 각본가였던 다카노 가즈아키는 뛰어난 장면 묘사력으로, 소설의 모든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생생함을 선사한다. 『건널목의 유령』처럼 이번 소설집에서도 망자인 유령이 등장하는 장면이 종종 있는데, 보통 사람이라면 볼 수 없는 망자의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이 이 소설집의 큰 매력 중 하나다.
다카노 가즈아키는 소설을 쓸 때, 망자가 살아 있는 사람 중에서도 선한 이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 자신의 글쓰기 철칙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그의 호러 스릴러 소설은 거부감 없이 읽힌다. 망자인 유령이 무차별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을 저주하거나 위협하는 여타 소설과 달리, 악한 자들에게만 벌을 내리는 권선징악의 구조가 독자에게 통쾌함을 선사하는 포인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13계단』과 『제노사이드』를 읽었던 독자라면, 작가가 이런 새로운 느낌의 글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함께, 한층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작가는 북토크에서 차기작으로 올 하반기 일본에서 출간될 에세이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에도 번역본이 출간된다면 꼭 읽어보고 싶다.
작가의 신간 혹은 기존작의 영화화를 기대하며, 이 서평을 마친다.
※ 본 서평은 황금가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다카노 가즈아키 작가의 오랜 팬임을 알아봐 주시고, 뜻깊은 서평 기회를 마련해주신 황금가지(@goldenbough_books)께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