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하는 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8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박인원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몰락하는 자』를 읽으며 "예술 감각이 사라졌을 때 모든 예술 작품은 사멸한다."는 괴테의 격언이 생각났다. 예술가는 독창적인 감각을 스스로 발견하고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자이다. 그러나 그 마술적 감각이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지지 않기에, 예술가는 저마다 타자의 재능에 대한 드러낼 수 없는 열등감을 갖고 있다. 유독 뛰어난 동료를 마주한다면 그 강박 관념은 걷잡을 수 없을 수 없이 부풀어오름과 동시에 자신이 가지지 못한 천재성에 대한 동경, 열망, 시기, 절망이 한데 어우러진 묘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몰락하는 자』의 베르트하이머도 그렇다. 피아노의 대가 글렌 굴드를 만나고부터 그는 점차 파멸의 길을 걷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고 나서 베르트하이머는 동료를 넘어설 수 없음에 절망하고 피아노 인생을 포기한다. 그 후 글렌 굴트가 뇌졸중으로 사망하고 나서 충격에 휩싸인 베르트하이머는 생의 갈림길에서 스스로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베르트하이머에게 글렌 굴트의 사멸은 자신의 예술이 사라짐과 같으며 그로 인한 삶은 더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한 것과 같다.

🔖베르트하이머는 글렌을 그리고 어쩌면 나까지도 증오했을지 모른다. 이런 생각은 수천 번, 아니 수만 번 이상 베르하이머와 글렌과 나 자신까지 관찰해서 얻은 것이다. 나 역시 글렌에 대한 증오심에서 자유롭지 못했지, 글렌을 매 순간 증오하기도 했지만 끝까지 사랑하기도 했지, 난 생각했다. 너무 위대한 나머지 그 위대함으로 우리를 파멸시키고 또 우리로 하여금 그런 파멸 과정을 참고 지켜보게 하다가 결국 인정하게 만드는 그런 위인보다 더 끔찍한 존재는 없으리라. 우리는 오랫동안 이런 파멸 과정을 믿지 않으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 되고 나면 이미 늦어버린다. 베르트하이머와 나는 글렌의 성장에 필요했던 존재들이었고 글렌은 우리를 이용했던 거야, 라고 식당에서 나는 생각했다. 매사를 대할 때 글렌이 보였던 뻔뻔스러움, 이에 비해 병적이었던 베르하이머의 망설임, 무조건 선입견부터 가졌던 내 성격을 생각했다.글렌은 갑자기 글렌 굴드가 되어버렸으며, 베르트하이머와 나를 포함한 모두가 글렌이 글렌 굴드가 되어버린 순간을 놓치고 말았다. - p.82

📌덧붙임 : 화자의 시점은 상이하지만,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으로 예술가의 고뇌를 다루었다는 맥락에서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같이 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베르트하이머가 격정적으로 연주했을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를 찾아 들으며 얼굴 없는 그에게 한없이 젖어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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